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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클베리 Sep 19. 2023

3년이나 품었다. 그리고 엉망인 사진을 찍었다.

다섯 번째 사진

사진을 좀 더 오래 좋아하긴 했지만 커피를 좋아해 매일 내려 마신 지도 이제 15년이 다 되어간다. 뭐 하나 진득하니 붙잡고 있질 못하는 내가 그나마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두 가지인 셈이다. 


그런 내게 충무로에 있는 갤러리 카페 '옥키'는 작은 공간이지만 개인적으로 꽤 마음에 드는 곳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주인장 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무엇보다 이곳에서 내는 핸드드립 커피의 맛과 향이 좋다. 나야 이곳을 얼마 전에야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지만, 이곳에서 두 내외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은 양으로나 햇수로나 적지 않았다.


사진을 좋아하는 주인장이 다음 전시를 위한 주제를 낸다. 그리고 함께할 사람을 모집하고 직접 사진들을 선별해 전시할 사진들을 인화지에 프린트한다. 전시한 사진들로 작은 사진집도 발간한다. 돈도 안 되는 이런 작업들을 수년간 꾸준히 할 수 있음은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나 같은 아마추어들을 위해서라도 그들도 카페도 오래도록 남아있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9월 19일, 오늘부터 10월 7일까지 이 충무로의 작은 카페 벽면에 다른 아홉 분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을 전시하게 되었다. 아무나 참가할 수 있는 사진전이지만 그래서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처음 참여하는 마당에 이번 주제가 '결정적 순간'인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꼭 이번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그날'에 대해 아니 그날의 나에 대해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얘기해 줘도 좋을 때가 오면 이번 전시의 결과물 중 하나인 40페이지짜리 작은 사진집을 주면서 들려줄.




첫째가 태어난 날, 그야말로 난생처음 아빠가 된 그날, 난 너무나 미숙했다. 


급한 마음에 카메라 챙길 생각도 못한 건 둘째치고 탯줄을 자르기 위해 분만실에 들어가면서도 혹시라도 묻어있을 균이 공기를 통해 아기에게 옮아갈 것을 걱정하며 핸드폰조차 밖에 두고 맨 손으로 들어갔다. 결국 못난이 아빠는 첫째가 사투를 벌이며 세상에 나온 그 찬란한 순간을 함께 했음에도, 사진 한 장을 못 찍어 줬던 것이다.


첫째야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그것에 관해선 아무런 신경 안 쓸지 모르지만, 난 못내 아쉽고 때때로 후회가 됐다. 그렇게 늘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엔 카메라가 손에 없었다는 사실에 '난 도대체 뭐 하는 놈인가'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러 둘째가 아내의 배를 발로 찰 때쯤 난 제일 먼저 필름을 주문했다. 디지털이 아닌 필름을 선택한 건 나름의 의미부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컬러와 흑백을 두고 고민했고, 분만실의 조명에 대해 알 수 없었던 것을 비롯 이런저런 이유들을 고려해 흑백사진을 찍기로 결정했다. 그다음으로는 콘트라스트와 필름의 표현력을 두고 이런저런 자료와 사용기들을 찾아 읽었다. 결국 제일 마음에 드는 하나의 필름을 골랐고 카메라에 필름을 장전한 채로 고이 모셔뒀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첫째가 태어나고 만 3년에서 한 달쯤 못 미치는 날이었다.

자정이 되기 전 아내는 진통을 시작했고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병원으로 가야 할 때가 왔다. 

미리 모든 걸 준비해 뒀던 난 짐과 카메라를 챙겨 차에 실은 뒤 아내를 태워 병원으로 데려갔다.




분만실에 먼저 들어간 아내의 울부짖음이 수 차례나 문 밖으로 들려왔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아빠 들어오세요'라는 말에 준비해 간 카메라를 들고 분만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내의 사투는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난 더 이상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을 수 없었다. 선반에 카메라를 놓아둔 채 아내의 옆으로 가 손을 꼭 잡았다. 아니 아내가 내 손을 꽉 쥐었다.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고 울음소리와 함께 둘째가 세상에 나왔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난 허겁지겁 선반으로 가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둘째, 기다림


오랜 기다림, 준비, 예쁘게 찍어줘야지 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감정이라기보다 온갖 게 뒤섞인 어떤 상태라고 하는 게 더 나았던 난 카메라를 든 손조차 이미 마음대로 어찌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댔는데 아무것도 안보였다. 아마도 아내의 손을 잡고 있을 때 툭 터져 나왔던 무언가 때문이었을 것이다. 손가락도 허둥댈 뿐 겨우 자리를 잡은 촬영버튼 위에서 달달거리기만 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조급함에 힘을 다 해 누르고는 필름을 재장전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망했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해가며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은 순간이었지만 난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만 보면 망한 사진이고 구도가 흐트러진 것은 물론 노출도 초점도 안 맞는 사진이다. 이래서는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하며 고른 필름의 좋은 특성도 뭐 하나 건진 게 없다. 


하지만, 그런 사진이기에 그날이 더 생생하고 이 사진을 선물해 준 아내와 둘째에게 감사하다.

이 사진엔 이 사진 말고는 담을 수 없었던 나만의 '결정적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날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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