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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16. 2022

이별고자의 괴로움

나 이거 못하겠다, 난 도저히 못하겠다, 하고 길바닥에 드러눕고 싶다.

내 기억 속에 똑똑히 남아있는 첫 번째 드라마는 ‘가을동화’이다. 초등학교 때 가을동화의 2화를 보고 받은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3화가 되기까지 일주일을 온종일 그 생각만 했다. 그 드라마가 유독 내 기억에 박혀있는 까닭은 은서가 원래의 가족들과 헤어질 때 머리가 아프도록 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할 때, 그래서 그 누구와도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할 때, 나는 문근영과 송혜교보다 많이 울면서 공감했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별고자가 될 조짐이 보인 것은.


나는 유독 헤어짐에 약하다.      

첫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네 시간을 내리 울어서 친구가 보다가 너는 참 눈물도 많다며 감탄을 했다. 그 이후로도 몇 날 며칠을 밥 먹다가 울고, 길 가다가 울고, 수업을 듣다가도 울어서 엄마에게 나라라도 잃은 거냐고 혼까지 났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슬프지만 내가 유독 약한 것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친구들과는 전학을 가고 사는 곳이 달라져 헤어지게 되어도 다시 연락을 하면 되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헤어질 때 안 운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어릴 적 친구들과도 모두 연락을 하는 편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친구들을 내 인생에서 놓아줄(?) 생각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남자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헤어지면 이제 그는 내 인생에서 OUT인 것이다. 다시는 볼 수 없고, 연락도 하기 힘들다. 내 인생에 있던 누군가가 이제 사라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     


최근 이토록 이별고자인 나의 인생에 또다시 이별 퀘스트가 등장했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바로 가르치던 아이들과의 헤어짐이다. 학원을 옮기게 되었고 1년간 가르친 아이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맙소사.

몇 년 전에는 고작 두 달이었는데도 그렇게 슬퍼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1년이나 가르쳤고 게다가 내가 정식으로 가르친 첫 아이들이다.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계속 회피해왔다. 학원을 바꾸지 않는 방법으로. 하지만 도저히 학원을 계속 다닐 수가 없어서 결국 그만두게 되었고 필수 불가결하게도 아이들과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처음 말을 꺼내기 전에는 정말로 길에 냅다 누워버리고 싶더라. 나 이거 못하겠다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내가 떠난다고 하니 엉엉 우는 아이도 있고, 선생님 때문에 다닌 거라며 이제 학원을 관둔다는 아이들도 몇 명 있다. 고맙고 뿌듯하고 감동이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슬프단 말이다. 이 아이들과 다시 언제 만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너무도 슬프게 한다. 일주일째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있다. 마치 처음 이별을 경험했던 그날들처럼.


우는 아이를 따라 나도 같이 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학원 밖에 나와서 혼자 질질 짰다. 아이들과 헤어지다 보니 나와 친했던 아이들일수록 당연히 더 타격이 크고, 나이로 치자면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가장 타격이 다. 고학년 아이들은 잘 울지 않는다. 는 아마도 아홉 살에 정신연령이 멈춘 사람인가 보다. 이렇게 내내 눈물이 나는 걸 보니.


세상에는 왜 이별이 있는 건지.

그냥 나무처럼 태어난 그 자리에서 아무와도 헤어지지 않고 계속 살면 안 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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