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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Aug 28. 2024

신주쿠역. 경찰

읽다

1. 길을 잃다

도쿄에 있는 3일 동안 신주쿠역에 두 번 갔다. 갈 때마다 역사 안에서 각각 1시간, 30분을 헤맸다. 단지 출구를 못 찾아 못 나가서!

신주쿠역은 JR 노선이 16개라 환승 통로도 많아 출구가 159개라고도 하고 200개가 넘는다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먼저 동, 남, 서쪽으로 나뉘어 있고 거기서 각각 1, 2, 3, 4…. A1, A2, A3, B1, B2… 출구 안내판이 끝이 없다.  


구글 이미지 캡처
구글 이미지 캡처

오자마자 길을 잃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NEX(Narita Express) 열차를 타고 신주쿠역에 리자마자. 공항에서 도쿄 도심으로 가는 방법 중에 돈을 조금 끼는 방법이 있었지만, 초행길에 복잡하기로 소문난 전철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신주쿠역으로 곧장 가는 3 원짜리 급행열차를 타고 1시간 만에 내려서는 역사 안에 있는 렌터카 사무실을 찾는  1시간이 걸렸다. 참나. 그리고  렌터카로 후지산을 다녀온 다음  친구들을 만나러 다시 신주쿠역으로 갔을 때도, 버스 정류장이 있는 출구를  찾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분명  출구는 A9이라고 하는데. 수많은 출구  분명 나만의 화살표를 찾았는데. 화살표를 쫓아 계단을 내려가고 기둥을 돌면 어느새 화살표가 사라졌다. . 다시 처음부터. 광장으로 돌아가 다시 A9 찾아가면 이번에는 다른 전철 노선을 타는 통로가 나온다. 행인에게 물어봐도 모른다. 아마 그들도  많은 길에서 자신의 길만 외우고 다닐 것이다. 화살표가  사라지냐고! 일단 나가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아직 지하인데! 기가 막힌 일이다. 관자놀이가 핑핑 돌고 숨이 가빠왔다.  번째 돌아간 광장에서는 어쩔  없이 역내 경찰서로 갔다.  같은 이에게 길을 손가락으로 짚어주던 경찰 옆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나의 A9 들은 경찰은 잠시 생각하더니 외운 듯한 유창한 영어 문장으로 여기 출구가 많아서 힘드시죠. 저를 따라오세요.” 했다.


아까 내가 수많은 숫자와 글자를 띄운 전광판 앞에서 눈으로 내 화살표를 찾고 이게 맞나 두리번거리느라 주춤주춤 하던 자리에서 경찰은 거침없이 전광판 게이트를 통과했다. 허리춤에 무겁게 달린 경찰봉, 총, 무전기, 또 무언가 검은색 둔탁한 기기들이 내는 덜그럭 소리와 따각따각 광나는 구두 굽 소리가 무척 묵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경찰은 뛰어서 도둑을 잡는 경찰은 아니겠구나.


신주쿠역에서는 도둑맞는 이보다 길을 잃는 이가 훨씬 많을 것이다. 여기서 경찰은 길을 찾아주는 이다. 첩첩이 쌓인 출구 전광판에 섞여 있는 히라가나, 가타카나, 알파벳, 한자, 한글 5가지의 문자. 이 문자와 숫자가 만들어내는 수백 개의 조합을 해석해 실제 길을 찾는 사람이다.


2. 전광판. 문자의 규칙

한자 <동, 남, 서, 중> 4개, 알파벳 <A, B, C> 세 개, 숫자 1부터 0까지 10개, 이 간단한 기호로 159개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창의력. 그러나 A와 9 두 글자가 어떤 암호길래 내가 해독해야 하는 거지? 159개의 출구를 두고도 내가 역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데 대체 이 기호가 실제 길이랑 무슨 상관이지? 이쯤 되니 저 숫자와 출구 그러니까 숫자와 실제 세상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였다.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159개 화살표 앞에서 나는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다.


출구 전광판이 꼭 주식거래소 전광판 같다. 우리는 양극과 음극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눈으로 본 적도 없고, 그 양극을 만드는 대지의 광물을 캐본 적도 없으면서, 뉴스 속 숫자와 낱말을 조합하고 빨강 파랑 화살표를 해석해 내 통장의 숫자를 어딘가로 보낸다. 코로나 주식시장에 남들 따라 증권계좌를 만들었다가 2년 만에 열어본 성적표는 -98%. 하하. 웃음만 나오는 숫자이다. 어떤 이들은 양극의 에너지에 투자해 시그니엘에 입주했다는데 내 숫자는 왜 -로 갔지? 그들은 시장에서 무엇을 읽었길래 그 종목을 선택한 거지?


작년 초, 건너 건너 알게 된 분의 10강짜리 경제 강의를 들었고, 이어서 경제 기사를 스크랩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그렇게 365일 중 평일 200일 넘게 경제 기사를 읽는 사이 물 흐르듯이 함께 경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그들이 날라다 주는 더 많은 문서를 읽고 있다. 이제야 조금씩 눈치채는 문자를 조합하는 규칙. 일간지에 어떤 지표들이 나오면 어떤 산업이 흥하고 망하는지 알겠고, 한 산업에서 어떤 2차 산업이 나오는지, 다른 어떤 산업과 왜 연관이 있는지 이어볼 수 있게 됐다.


3. 길을 읽다.

신주쿠역을 검색하면 출구 찾는 법이 가장 먼저 나온다. 나같이 헤매는 사람이 많나 보다. 이 글을 쓰려고 출구 순서가 정해지는 규칙을 찾아봤더니 이제야 출구 이름 읽는 법을 알겠다. 먼저 ‘동서남북’으로 신주쿠 역사를 크게 방향으로 나눴다는 의미를 읽는다. ‘ABC’는 그 방향안에서 나눈 작은 구획이고, ‘1, 2, 3, 4…’ 숫자는 출구의 돌아나가는 방향임을 읽는다. 보통은 상행 기준으로 맨 앞 오른쪽 출구를 1번으로 기준하여 시계방향으로 돌아나간다. 상행은 도심 방향 혹은 서쪽이나 북쪽을 뜻한다. 이렇게 문자가 조합되는 규칙을 읽을 수 있으면 방향을 유추할 수 있다. 방향을 알면 출구로 나갈 수 있다.


누군가에게 따라오세요라고   있는 사람이 그렇다. 그들은 다년간  자리를 쏘다니며 체득한 몸의 감각으로 눈에 보이는 지표 속에 보이지 않는 신호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 누가 어떻게 가요?”라고 물을  머릿속에 현실의 길을 그릴  있다.



내가 이거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어봤던 많은 분이 떠오른다. 어떤 리더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제시했고, 어떤 리더는  위치에서 당장 시작해야 하는 것과, 결국에 도달하면 좋을 풍경을 보여주셨다. 다음번  막힐  찾아가면 스승님은 여전히  자리에 계셨다. 거기서 다시, 그다음 출구로 나를 데려다주셨다. 그러면 나는 거기서부터 다시 걸어 나갔다.


리더의 일은 지하에서  잃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다. 뭔가 해보겠다고 집을 나선 사람들이 길을 잃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그리고 찾아온 사람들을 자신의 영역 안에서 돕는다. 택시처럼  목적지까지가 아니라 출구까지만 안내한다. 그들이 세상으로 나가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것을 알기 때문에.



아참. 그렇게 경찰이 데려다준 출구는 틀린 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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