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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Aug 19. 2024

마지막 잘못

말복

여름 두 달 동안 몇 번의 담금질을 겪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담금질을 당했는지.

고기압에서는 말할 새도 없이 화가 터져 나오다가

저기압에서는 꼭 물속에서 숨을 쉴 때처럼, 심장이 목 끝까지 힘을 내주어야 겨우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여름에 달궈진 땅 위에서 살면서 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매일 실감했다. 밀가루 반죽처럼 뭉쳐지고 펴지고 뭉개지고 치대면서 내 몸에 따라 정신이 혹은 이 정신머리에 따라 내 몸이 바뀌기를, 어쩌면 내가 아닌 어떤 다른 상태가 되기를 계속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모르겠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참아오던 목요일도 역시 당신이 틀렸잖아, 틀렸잖아, 틀렸잖아, 하다가

정말 갑자기. 갑자기! 그런 말을 하던 내 입에서 치익 하고 한 순간에 열기가 식었고 

뭔가 머리를 꽝! 하고 내려친 것 같았다. 그게 통증이나 진동보다는, 소리로. 느닷없이 경고음이 귓청을 때릴때 번쩍 정신이 들던 기분이. 그러고는 내가 당신더러 틀렸다, 틀렸다 하던 것이 사실은 내가 맞길 바란게 아니라, 당신이 틀리기를 바랐다는 것을. 당신은 영원히 틀리고 나의 길 잃은 잘못도 당신 탓이 되기를 바랐다는 것이 사이렌처럼 울려서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갑자기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거실이 적막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아무 잘잘못도 따지지 않기로 했다. 내 속에 오랫동안 무심하게 들던 생각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하던 말 역시 이 잘잘못에서 온 걸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되었지만 마지막 화력에 잠시 숨죽인 날, 나에게 마지막 싸울 기회를 주었다. 내가 즐겨하는 잘잘못을 따지고 싸움을 거는 일을 마지막으로 할 수 있게 불을 지펴주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여태까지 하던 실수를 똑같이 똑같은 시간에 또 했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뭔가 변한 것 같아" 





(삼복은 절기가 아니라고 한다.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이 말복이다. 2024년은 8월 14일)

복날은 가을철의 기운이 대지로 내려오다가 아직 여름철의 기운이 강렬하여 일어서지 못하고 복종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일 년 중 무더위가 가장 극심한 시기로 가을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다가 이 기간 동안 더위 앞에 잠시 엎드려 있는다고 해 '엎드릴 복(伏)을 사용, 복날이라고 하며 이때의 더위를 '삼복더위'라 부른다.

(출처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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