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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23. 2024

<길위에 김대중> 우리는 모두 DJ의 후예라는 자각


“너 김대중 알아? 김대중.. 선생님?”

그 시절 친구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마치 그 이름을 입 밖에 꺼내는 자체가 불온하고 불안한 일인 마냥, 10대 소녀들도 눈치가 빤했다.


나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아빠가 열렬한 지지자였다. 아빠네 회장님이 “(임원들 중에) 혼자 DJ 지지한다며?” 못마땅해 뭐라 했지만 할말 하고 살던 아빠였다. 주변 대기업 임원들이 모두 5공 지지자라는데 오히려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나는 정치인 김대중을 알지 못했다. #길위에_김대중, 현대사에 눈뜬 장님이었다는 걸 깨우쳐준다. 아니아니, 학창시절 현대사를 배워 본 적도 없는 세대였다. 지금은 다를까? 이 영화는 완벽한 역사교과서다. 누군가 지우려 애쓴 역사다. 


섬마을 소년이 탁월한 청년 기업가가 되고, 사람들을 매혹하는 정치인, "김대중 한 사람을 못 당하냐"며 박정희가 짜증을 낼 정도로 유능한 사상가, 죽음의 위협에도 꺾이지 않는 지도자가 되는 이야기는 놀라운 서사다. 근데, 이걸 그의 육성으로 들으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시대의 거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막연하게 알던 것과 다르다. 육성과 영상과 사진자료가 이렇게 충실하게, 심지어 재미있게 정리되다니 그 노고에 기립박수.. 


디테일에 먹먹해지는데, 빽뺵하게 글자로 채운 편지를 부인에게 보내고 또 보내는 세월도 아득하다. 무엇보다 그가 언제나 국민만 바라봤다는 것이 가장 경이롭다.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해야 하고 이미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빨갱이 색깔공세에도 불구, 민주주의에 가장 필사적인 의회주의자였다.


사형수였던 그가 미국으로 건너 가서 1987년 민주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전혀 몰랐다. 777일 중 150회의 강연을 통해 한국에 독재 우방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를 설파하며 세계 지도자들을 구워삶다니.. 그가 귀국할 때 필리핀의 아키노처럼 암살당할까 걱정한 수십명의 해외 인사들이 인간 방패가 되어 함께 공항에 내리는 장면도 절절하다. 역시 잘 몰랐던 장면이다.


1983년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 나이트라인에 출연한 그의 발언도 충격적일 만큼 명쾌하다. 테드 카펠은 남한의 독재정부가 북한에 비해서는 괜찮지 않냐고 물었다. 


"안보문제는 1950~1953년에 가장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우리 국민들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 외에는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수 있었습니다. 지방자치가 있었고, 독자적 사법부와 국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평화시기에 우리 국민들은 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안보 문제가 어떻게 지금의 억압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DJ 재발견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라면 우리 국민의 타고난 기질을 확인하는 것도 또 다른 성과다. 일제 식민지 시절 태극기를 흔든 국민이 있었고, 광복을 뜨겁게 환영하던 국민이 있었다. 가까스로 얻은 해방의 시간이 독재로 넘어가지 않도록 거리로 나선 국민이 있었다. 5.16과 12.12 쿠데타도 상황을 이용한 악당이 있을 지언정 그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늘 국민이었다. 국민의 분노는 정직했고 정당했다. 이걸 자료 화면으로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저 넥타이부대가 우리 사회 가장 진보적 세대였던가? 매번 처참하게 희생된 국민의 모습에도 심장이 아프다.


DJ가 16년 만에 찾은 광주에서 시민들의 환대와 절규, 오열.. 그 장면 만으로도 이 다큐는..음, 명작이다. 근데 87년에서 1부 끝이라니... 2부 언제 나오는거냐. 펀딩 더 필요 없나? 줄서본다. 3부에서는 2009년 그의 오열 장면을 다시 볼텐데...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어떤 역사로 남았는지 외면하지 말자. 위인 DJ 탓에 다른 정치인이 눈에 차지 않는 후유증은 미리 경고. 우리는 위대한 국민이고, 우리는 모두 DJ의 후예라는 자각은 약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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