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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21. 2024

<땅에 쓰는 시> 호호할머니가 주인공인 다큐, 아름답다

5주를 꽉 채운 자영업자, 오늘 드디어 교대근무로 쉬었다. 오후 5시에 출근하라고. 그런데 어제도 오전에 늦게 나오라고 했지만, 덕분에 빨래하고 마트 다녀오고 하여간에 그게 노는건 아니잖은가?


내게 휴식이란. 일단 어이없지만 #마냐밥상. 간만 샐러드에 힘줬다. Joo Young Choi 쌤의 겸사겸사 키친에서 여섯살 멸치액젓을 내놓았다. 맛이 깊어진 액젓은 샐러드 드레싱에 괜찮은데 이제야 시도. 올리브오일에 액젓, 발사믹.. 훌륭했다. 묵은지닭찜도 있었지만ㅎㅎ 애들과 버섯 올린 샐러드를 나눠먹으니 뭔가 기분이 좋더라.

쉬는 날이라니, 이 시간이 귀한 걸 새삼 깨달은 내가 갈 곳은? 한종호 선배의 #땅에쓰는시 감상에 홀라당 넘어간 덕분에 극장으로 달려갔다.


휴식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때, 내게 주는 선물로서 의미 있다. 따릉이 타고 극장 가서 자리에 앉았더니 5주 노동의 댓가로 얻은 휴식이 달콤했다. 정작 무슨 영화인지 전혀 몰랐는데, 어라, 선유도공원이 저렇게 아름다웠나? 조경 전문가 정영선 쌤의 다큐라 꽃과 나무, 공원이 계속 나오는데, 마치 공원에 앉아서 멍 때리는 기분이다. 이보다 더 멋진 휴식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근사했다.


선유도공원에 이어 양평 집을 돌보는 할머니가 나온다. 나는 조경하는 정영선이라는 분의 어머님인가 했다. 이 착각이 무례했음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41년생, 83세인 정영선 쌤은 새벽 5시부터 3시간 집의 뜰을 돌보고 출근한다. 아니, 호호 할머니가 주인공인 다큐였어? 그런 작품이 있었던가? 배우 유해진을 닮은 할머니 이야기가 2시간 가까이 이어지는데 모든 장면 경이롭다. 그 시절 조경을 공부한 1세대인데 여성. 그의 조경은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올림픽공원, 선유도공원,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용인 호암미술관 희원,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과 제주 오설록 등. 알고보니 다 한 사람의 시선에서 나왔다? 가장 한국적인 꽃과 나무와 함께 자연의 순리대로 그의 손 끝에서 공간이 달라진다. 마법이다. 그가 그려낸 공간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간다. 그게 상상 이상 멋지다.


아이가 뛰노는 걸 보면 공원은 세심하게 설계하고 공들여 안배한 공간이다. 병원의 나무 많은 뜰은, 누군가 설움과 불안을 달래는 품이 된다. 그냥 꽃과 나무를 줄지어 심는게 조경이 아니다. 자연을 살리고, 자연의 품에 사람을 연결해 함께 사는 삶의 바탕이다. 아름다움에 좋아라 기뻐하는 마음,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마음이 만들어낸 조화다. 땅과 사람을 고루 아끼는 어른의 마음. 어느새 정영선 쌤의 말과 행동에 홀렸다.


‘검이불루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 소박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한국의 미를 말하는 쌤의 인터뷰를 봤다. 아는 만큼 달라진다고, 꽃과 나무를 알면 사는 세상이 바뀐다는 걸 나는 K온니에게 배웠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더니, 정말 볼수록 달라진다. 쌤이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으로 꽃과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이 시가 되어 흐른다. 하아... 이 다큐 놓치면 당신 손해다. #마냐뷰


글 올리지마자 친구의 제보. 마침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영선쌤 전시가!!! 언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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