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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가난> 귀한 기록, 잘 쓰기까지

by 마냐 정혜승 Jan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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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나는 분명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기자가 됐는데, 만나는 이는 대부분 사회의 강자, 권력자들이었다. 이제 보니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친구조차 대체로 엘리트들? 계급이라는 단어는 낡은 느낌인데, 현실은 사다리가 무너진 폐허다. 나는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모르더라. 사회적 약자가 투명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건 괜찮을까? 끼리끼리 어울리며 ‘관점의 사각지대’를 놓치는 건 아닐까? 질문을 오래 품어왔지만, 답은 찾지 못했는데,


<일인칭 가난>은 귀한 기록이다. 심지어 진짜 잘 썼다ㅠ 올해 27살. 스물둘까지 20여년 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였던 안온 작가. 가난을 대표할 수도 없어서 철저히 일인칭. 부제가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일인칭이지만 가난은 더, 계속 말해져야 한다고. 부자 되려는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책을 쓰고 팔고 사는데, 가난이라고 못 팔아먹을까. 더 쓰이고 더 팔려야 할 것은 가난!  더 떠들어야,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진다.


가난의 풍경은, 재난이다.

기름값 아끼려고 겨울에 보일러 온수를 포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쥐와 바퀴벌레랑 동거하는 삶을 누군들 원할까?
가난의 규격도 빡빡하다. “감히 자동차까지 소유한 집은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쿠팡플렉스 등 자차 배송으로 생계 유지하면, 차량가액의 50%가 재산으로 인정되는데, 워낙 자동차가 비싸다보니.. 수급 탈락한다고)


저자의 엄마는 기필코 돈을 그러모아 저자를 학원에 보냈다. 기초수급자가 돈을 모아 감히 학원에? 하지만 달리 탈출할 수 있을까?


원한 적 없는 가짜 동정이 모르는 손길과 함께 느닷없이 찾아오기도 했다. 친구들과 주공아파트 놀이터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던 어느날, 스피커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아파트 대로변으로 나갔다. 트럭 한 대가 우리 앞에 서더니 남자 두어 명과 박근혜가 내렸다. 그는 덥석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밝 게 자라는 아이여서 고맙다고 했다. 이후로도 종종 자신을 정치하는 아저씨 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다가와 내 머리를 함부로 쓰다듬고는 했다. 지금도 나는 재해 지역이나 쪽방촌에서 생수며 연탄, 반찬 등을 나르는 정치인들의 사진을 보면 끔찍하다. 새것이어서 유난히 빨간 목장갑과 일부러 묻힌 듯 재가 거뭇거뭇한 기름진 얼굴들. 그들이 동정마저 전시하는 동안 가난한 이들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
 
가난도 부끄러웠지만 (아닌척, 평범한척) 애쓰는 자신도 부끄러웠다고. 가난한 이들은 불운과 수치, 숙명에 묶인다고.. 그러다 만난 시.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1941)’.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정신 승리라도 하지 않으면 어찌 버틸까. 삶은 고해다. 특히 청춘은 더 그렇다.

 
20대는 왜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을까. 돈이 부족해도 마음은 충만해야 하고, 최저임금을 받아도 사서 고생을 해야 하며, 학점에 취업 걱정을 하면서 연애도 해야 하고, 마른 지갑을 쥐어짜서 애인과의 기념일도 챙겨야 하고.. 차라리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알게 된 편이 낫다


기초생활수급자 가구에 배급되는 멸균우유가 누군가에게는 사람 살리는 생명줄이고, 가난한 사람도 아프면 치료받고  먹을  있게 해준 의료 복지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의료민영화를 쉽게 떠들지만, 국민이 건강할 권리를 각자도생으로 맡겨버린 미국 식은 끔찍하다는 것을 모두 안다. 편의점에서 셀프 치아 레진을 파는 나라를 닮고 싶은가.

한국의 복지는 철저한 신청주의. 각자 처한 상황에 어떤 제도적 도움이 가능한지, 주무부처는 어딘지 꼼꼼하게 적극적으로 챙기는 이만 혜택이 가능하다. 몰라서  받는 이들을 알아서 챙겨주는 일은 거의 없다.  얇은 책의 말미에는 부록처럼 꼼꼼한 팁이 정리되어 있다. 소득에 따라 지원받는 급여제도를 비롯해 의료급여 1 수급자는 1 병원 본인 부담 진료비가 1000, 약값 500원이다. 이동통신요금, TV 수신료, 전기요금, 도시가스 요금, 지역난방 요금도 감면받는 제도가 있고, 저자는 연간 5만원 혜택을 받았지만 2022년부터  11만원으로 늘어난 문화누리카드로 도서, 전시, 공연, 영화, 스포츠 관람이 가능하다. EBS 교재는 무상 지원되며, 온갖 종류의 장학금, 전세임대 지원, 무료심리상담까지.. 저자가 학원 강사, 과외 알바 하면서 석사까지 수료할  있었던 모든 걸음마다 국가가 있기는 있었다.


대충이라도, 이렇게 기록하는 건.. 진짜 좋은 책이라 그렇다. 잘쓴 책이라 그렇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나 문제 해결에만 쫓기며 달려온 그가 이제 좀 안온하기를 바란다. 언젠가 만나면 꼭 안아주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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