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설로 읽는 경제학', 신현호님 오티움 북클럽 덕분에 제인 오스틴의 명작을 이제 읽었다. 이른바 명작들을 탐독한 건 10대 시절이라, 그때 봤는지 여부도 기억나지 않는다. 북클럽 멤버인 ㄱㅇㅇ님은 "서양 철학은 죄다 플라톤의 각주라는 말처럼 모든 로맨틱 코메디는 다 오만과 편견의 각주였다는 깨달음에 감탄하면서 봤다"고 했다.
1813년 출간 이후 200년 이상 사랑받다니 고전의 힘이란. 재치 있는 입담에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 기본 미덕.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인류 보편적 욕망과 딜레마가 유효한 것도 놀랍다.
딸만 다섯인 베넷 가문의 이웃에 괜찮은 신랑감 빙리가 오면서 텐션이 달라지는 시절. 똑똑한 둘째 엘리자베타는 미녀 언니 제인과 빙리를 응원하고, 빙리의 잘난 친구 다아시를 오만하다고 생각했는데...하여간에 모든 여자들의 인생 목표는 좋은 남자. 특히 속물로 그려지는 엄마는 안달복달이다. 두어번 만나서 말 섞으면 바로 결혼까지 가냐 마냐 쌩난리다. 무도회든 차담회든 이 신흥 부르주아들은 별 일 없이 모여서 잡담하다가 짝 찾는게 일이다.
북클럽 멤버 ㄱㅅㅎ님이 챗지피티에게 물어본 바, 베넷 가문의 연 소득 2000파운드는 당시 1파운드가 오늘날 약 100만~150만원 구매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기 떄문에 약 20억원 수준. 부유한 지주로 알려진 다아시는 귀족은 아니지만 연간 수입이 1만 파운드. 대략 100억~150억원이 땅에서 나오는 셈이다. 이쯤되면 ㄱㅅㅎ님 말마따나 타워팰리스 사는 집안과 준재벌 연애담인거 맞지? 소설을 읽다보면 베넷 가문 엄마는 왜 저리 찌질하게 딸들 결혼에 목을 매나 싶은데, 알고보니 쫌 사는 집안. 그러나 역시 다아시네보다 기운다. 곳곳에서 집안 친인척이 나서서 격이 안맞는다고 여자에게 매몰차게 떨어지라고 요구하는 아침드라마 풍경은 동서고금 닮았다.
게다가 딸만 다섯이기 때문에 베넷 가문의 재산은 가장인 베넷씨 사후에 '남자 친척'에게 돌아가게 된다. 만약 아버지가 사망한다면 당장 부인과 딸이 저택에서 쫓겨날 처지란 얘기다. 그 시절의 법리는 딸들에게 괜찮은 결혼 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로또처럼 재산을 물려받게 될 남자의 선처와 보상도 결혼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신현호님은 당시 한정상속(Entailment)과 장자상속(Primogeniture)의 세가지 잘못된 믿음을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는 명작소설을 통해 경제학을 탐구하는 북클럽이다ㅋ)
Myth #1 : Women could not own property.
Myth #2 : The Law of Primogeniture requires that estates always go to the eldest son.
Myth #3 : All land is entailed and must go to the nearst male relative.
비슷한 수준끼리 결혼하는 동류혼(Assortative Mating)은 현대 사회라고 다르지 않다. <폭싹 속았수다>의 양금명 에피소드는 오히려 고전적이다. 끼리끼리 좋은 대학에 가고, 끼리끼리 연애하는 시대에 개천 용은 존재 자체가 희귀하다. 신현호님이 소개한 NYT 보도.
Equality in Marriages Grows, and So Does Class Divide
상위 10% 남성이 상위 10% 여성과 결혼하는 확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단다. 이런 동류혼 관행 대신 랜덤으로 결혼한다면 지니계수가 0.43에서 0.34로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다는 2005년 조사도 있다고. 랜덤 대신 과거 방식 결혼도 0.35.
무튼, 조건만 보고, 적령기 남녀가 결혼을 얘기하는 시절. 주인공 엘리자베타는 사랑을 탐색한다. 이것은 그 나름의 도덕성. 오만한 남자는 맘에 안드는데, 알고보면 다 편견인 사연은 대체.. 그리고 오만이 뭔가. 원제는 <Pride and Prejudice>. pride 라는 단어에 부정적 뉘앙스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보기에 오만은 가장 흔한 결함이야.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사실 아주 일반적이고,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쉬우며,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 가운데 거의 없다고 봐야 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지만 서로 달라. 허영심이 없으면서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고, 허영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느냐의 문제거든.”
좀 많이 가진 남자는, 조건 좋으면 좀 오만해도 되는 건지 또 설왕설래. 가문이니 재산이니 모든 것을 다 갖춘 젊은이는 오만할 권리가 있다고? 오만과 편견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데 걸림돌일까, 혹은 스스로를 설득하는 방패일까. 엘리자베타와 다아시의 티키타카만 즐겨도 되는 것을..
신현호 쌤이 가져오신 100년(?) 전 판본.
삽화 재미있고
첫 문장.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re must be in want of a w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