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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 Nov 10. 2024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결혼하면 생기는 일(w. 부부상담)

결혼 3년차 신혼부부의 적나라한 부부상담 후기

다음 주면 10회기의 부부상담이 끝난다. 상담을 받게 된 계기는 퇴사 후 참여했던 국민취업제도 상담 선생님의 권유 덕분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부부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워 하지 못했는데 우리 지역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셔서 곧장 신청하게 되었다.

퇴사 후 경제적인 문제, 시댁 갈등으로 잦은 트러블이 있었던 우리 부부는 그렇게 나란히 상담실에 앉게 되었다. MBC 오은영의 리포트 - 결혼지옥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부부처럼 MMPI-2,  기질 및 성격검사(TCI) 그리고 문장완성 검사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담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이 검사를 통해서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했다. 공통점은 높은 '자기초월성'과 '충동성'이었다. '자기초월성'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 자기가 더 큰 무언가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드넓은 세상, 자연, 우주에서  작은 미물임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남편과는 말하지 않아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생의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일치해서 늘 신기했는데 이 지점이 비슷해서 그랬나보다. 또한 '충동성'은 말 그대로 내가 관심있는 것에 대해서 빠르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둘다 계획적이기 보다 즉흥적인 편이라 일상을 살아가며 합이 잘 맞고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언제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사실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선생님은 이를 이렇게 해석해주셨다. 남편이 이상적인 사람이지만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버티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우울감도 높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사실 나는 남편이 한번도 우울해보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늘 나만 감정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오히려 우울감이 크다는 얘기에 당혹스럽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좀 정신이 들었다. 본인도 이상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현실과 타협해서 살고 있는데 아내는 이상적으로 살겠다고 떠들어대니 얼마나 얄미웠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자책할까봐 선생님은 내가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다. 어릴 적부터 힘든 가정 형편에 물심양면 뒷바라지 하는 부모를 위해 꿈을 이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을 것이고 이를 이루지 못하면 내 가치가 없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늘 내 능력보다 높은 이상을 바라보며 나를 괴롭히며 살았을 것이라 말이다. 선생님은 이런 나에게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발에 땅을 딛고 살아갈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먹고 사는 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라는 뜻이었다.

어찌됐든 현실의 무게에 우울감으로 짓눌린 남편을 똑바로 응시하게 되면서 나도 정신을 좀 차리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남편 어깨의 짐을 내가 나눠가져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면접도 보고 남편이 가져다 준 외주 일도 군소리 없이 해나가기 시작해갔다. 이렇게 땅에 발을 붙이고 살다보면 남편도 나도 각자가 가진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길거라 믿는다.


또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았던 한 가지는 원가족(태어나 자라온 가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해소되었다는 점이다. 착한 며느리병에 걸렸던 나는 산후조리를 하며 어머니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고 그 뒤로 관계가 데면데면해졌다. 남편은 어머니에게 적당히 살갑게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나는 내 서운한 마음만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행동하기를 거부했었다. 어머니 문제로 남편과의 사이가 악화되었고 상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얘기를 꺼냈다. 선생님은 남편이 원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고 했다. 힘든 농사일을 안 하겠다고 서울로 도망쳐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둘째 아들은 그 마음을 갚기 위해 가족에게 조금 더 애틋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배우자 입장에서 오빠의 입장을 이해해 내가 함께 그 마음을 갚아주면 고맙겠다고 생각하니 노력해볼 용기가 났다. 그뒤로는 어머니께 전화가 오면 전처럼 살갑게 받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상담을 통해 내가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알아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 내가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오고 있었다. 남편과의 다툼을 통해서도, 그리고 스스로 관찰해 본 바로도 내 행동은 늘 가정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초첨이 맞춰져있었다. 특히나 육아를 하면서 한정적인 시간 안에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나 들여다보니 거의 대부분 나, 그리고 조금은 아이에 대한 것이었다. 결혼한 내 동생을 보면서도 비교가 됐다. 힘들게 일한 제부를 위해 어떤 저녁을 준비할까, 필요한 옷은 없나 늘 알뜰살뜰 가정을 챙기는 동생을 보며 내가 가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남편이 골프치고 친구만 만나러 다니면 어떨 것 같냐?'는 선생님의 질문에서 내가 어떤 모습인지 객관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9회기의 상담은 내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제 진행한 9회기 상담에서는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나의 자기중심적인 면모에 쪽팔리고 눈물이 나서 '저는 결혼이 안 맞는 것 같아요 차라리 저는 결혼하지 말고 혼자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았어야 했는데'라고 이야기했더니 선생님은 웃으시며 '부부상담 10년을 했지만 결혼이 맞다고 하는 사람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00씨, 뭔가를 이루는 것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에요'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깨달음과 명확함 같은 것이 쫙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저도 노력하면 될까요?'라고 물었고 선생님은 계속 노력하며 맞춰가면 된다고, 두 분은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응원해주셨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너무 미워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일까 자책하다가 밤잠을 설쳤다. 그러다 이 글을 쓰면서 그런 자책은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내가 현실적으로 노력할 부분들을 적어보면서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내 머릿 속 이상을 좇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것들, 2살 된 예쁜 딸과 자기의 몫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남편을 직시하며 우리 세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우선임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자고 정신을 바짝차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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