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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 Jul 24. 2024

[D+504] 남들에게만 좋은 사람인 나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폭우를 뚫고 국민취업제도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심리안정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말 그대로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 구직활동과 관련한 내 심리를 알아보고 도움받는 시간이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내가 '죄책감'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님은 내가 그림책 수업에 다니며 적성에 맞아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보냄과 동시에 그 기쁜 감정 때문에 굉장히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가 꿈을 위해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미뤄두고 본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00씨는 정말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견딜 수가 없어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그만둔 것이고, 새 길을 찾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노력 중인건데 그게 왜 죄책감을 느낄 일이냐고 되물으셨다. 그말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최선을 다해 버티다 죽지 못해 회사를 나온 건데 그때를 까먹은 내 자신이 의아하기도 했고, 힘든 시간을 버티고 또 다른 길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나를 응원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그린 내 모습

생각해보면 나를 늘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인 것 같다. 어제 눈물을 쏟고 앞으로도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남의 의견과 입장을 너무나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생각이 굉장히 분명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러내지는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해'라는 이름으로 어떤 의견이든 수용하고 받아들이려고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넓히는 것이 내 생각만 하는 것보다 늘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른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만 살다보니 어느 순간 내 입장은 사라지고 자기 말만 만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의 입장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 같다. 

이번 퇴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퇴사 후 내 입장이 죄책감이란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했다면 남편 역시도 나의 행보를 당당하게 바라봐줬을 것이다. 내 입장은 잊어버리고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늘 생각으로 가득찬 나는 옆에 있는 남편에게만큼은 자신감 없는 나를 모두 표현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나를 위해, 남편을 위해 이제는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예로는 브런치 악플이 있다. '남편이 저랑 살기 힘들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갔다. 지금 살펴보니 136개의 하트와 42개의 댓글이 달렸다. 소소한 구독자 분들을 대상으로 글을 써오던 나는 처음으로 겪어보는 관심에 놀라웠고, 줄지은 악플에 좌절하기 시작했다. 처음 달린 댓글이 부정적이라 그랬는지 그 뒤로도 댓글을 가장한 인신공격이 계속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 악플들을 읽으면 그 모든 이야기들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수용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지만 마음 아픈 댓글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댓글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에 답글을 달기도 했다. '본성이 이기적이다' '자존감이 낮다'와 같은 댓글을 곱씹으며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인가? 흔들리기도 했다. 누구나 사람은 이기적인 면이 있고 자존감이 낮은 부분이 있는 건데 나를 '이기적' '자존감 낮은 사람' 두 단어로 매몰시킬 뻔했다.

내 글이 왜 그렇게 사람들을 화나게 했을까, 그리고 그러한 무례한 댓글까지 달게 만들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나의 태도에 있었던 것 같다. 그 글은 남편을 이해하고, 시어머니를 이해하려는 내 노력이 잔뜩 담긴 글이었고 나의 입장은 조금도 들어가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기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해심 많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정작 내 입장은 스스로 외면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모든 것을 지나치게 이해하려 노력하는 또 다른 이유는 늘 지금보다 이해심 넓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나만의 내적 수련이랄까. 최근 아파트 헬스장에서 관리소장의 갑질로 부득이하게 트레이너 선생님이 연차를 8일간 이어서 써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2주간 운동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열변을 토하며 갑질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함께 듣는 수강생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는 운동 못해서 어떡하냐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안 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이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선생님의 입장도 꽤나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나도 언제든지 그런 상황이 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해주는 것이 함께 사는 이유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중요한 가치관인 것 같다. 이런 태도는 엄마에게서 배운 영향이 크다. 딱 이 정도의 이해심이 건강한 이해심인 것 같다.

마지막 이유가 문제다. 나는 내 입장을 고수했을 때 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퇴사'를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가 이를 말리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 잘 들었기 때문이다. 애 키우며 다니기 괜찮은 직장이라는 객관적인 사실 앞에 회사에서 지독하게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를 자꾸만 외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결국 나의 힘듦을 바라봐주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고 나의 결정으로 이 시간을 얻었다는 사실이 기특하다. 


나를 이해하지 않으면서 남만 이해해보려는 나의 태도 때문에 그동안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문제든 정답은 없는 것이니 내 의견에 대한 자신감 있는 태도로 살아가는 노력을 하고 싶다. 무시하던 내 목소리를 듣는 일이 정말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동안은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누군가 말해줄 것 같아 남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이젠 내 입장에서 나온 내 의견이 나에게는 가장 현명한 결론임을 기억해야겠다. 내 이쁜 딸이 이런 나의 모습을 닮으면 안 되니 부지런히 노력해야지, 자신감 있게 살아가보기로 마음 먹는다. 최근 들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특히나 임신하고 고민많은 분들이 내 브런치를 구독하는 것 같다.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는 태교가 아니라 진짜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나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되고 싶다 (다소 극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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