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며 그때의 나를 보고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위로
딸의 어린이집 등원시간이 조금 늦어지는 날이면 항상 아파트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를 뵙게 된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안녕하세요!' 인사하면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나와 딸을 보고 반갑게 인사해주신다. 오늘은 특별하게 딸과 함께 한번, 내 짐을 챙기러 다시 집에 들르며 아주머니를 2번이나 뵙게 되었다.
가방과 노트북을 챙겨 나오는 나를 보며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애기 어린이집에 데려다놓고 출근하는 거예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머쓱한 얼굴로 '네......'라고 답했다. 그러자 '아이구 기특하네! 기특해!' 하시며, 나도 얼마나 힘든지 잘 알지 그런 마음이 우러난 표정으로 위로를 건네주셨다. 괜시리 민망스러워 '헷,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말하며 급하게 뒤를 돌았는데 그순간 왠지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불안과 책임이라는 단어에 갇혀 매일 채찍질만 하고 있던 나에게 아주머니의 말씀은 마데카솔 연고 같았다.
그러고보니 뜻밖의 위로를 지난 주에도 받았었다.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퇴사 얘기를 듣더니 '잘 때려쳤어요! 이제 인생 시작인데 뭐!'라며 기운찬 말씀을 건네주셨다. 벌써 서른 둘,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생각이 들던 찰나 인생이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이토록 달콤한 말인 줄 선생님 덕분에 알았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20년 넘게 어린이집하면서 이렇게 아기 반찬도 잘 챙기고 마음 써가면서 케어하는 엄마는 없었다고, 씩씩하게 사는 게 보기 좋다며 선생님들끼리 기특하다고 모여서 칭찬한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00 엄마는 뭘 하든 잘 될거라는 말에 주눅들 때마다 날 응원해주던 엄마 목소리가 떠올라 울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두 분의 말씀이 위로가 되었던 이유는 지금 내가 겪는 시간을 겪어내신 분들의 진심이 담긴 위로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위로는 그 시절 본인에게 건네는 위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간을 겪어낼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그러고보니 이분들이 내게 건네는 위로가 무슨 의미인지 조금 알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주말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며 느낀 감정이다. 대학교 방송국 생활을 함께 했던 친구 세명이 딸을 보고 싶다며 우리집으로 놀러왔다. 모두 기혼자로 나보다 2개월 빨리 결혼한 친구 한 명, 내가 임신 7개월째에 결혼한 친구 한 명, 딸이 9개월 됐을 때 친구 한명이다. 귀여운 토끼가 그려진 돌반지와 각기 다른 선물을 또 들고온 친구들에게 고마우면서도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각자 사는 것도 바쁠텐데, 내게 마음과 시간을 써줬다는 사실이 뭉클했다.
친구들은 계속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를 걱정하면서 좀 앉아 쉬라고 얘기해주었지만 나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의 사는 얘기를 들으며 아이 낳기 전, 일에 초점이 맞춰져 살던 내 일상이 그려지며 그때의 고민과 기분이 한번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히려 애 낳기 전보다 걱정 많던 그 시절, 친구들은 바쁜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미래를 그리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한참을 아이와 놀다 친구 한 명이 나를 향해 물었다. '넌 공허한 느낌은 없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아이를 낳고 공허함이 많이 사라졌기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아 난 야근하고 지하철 타고 집 가면 공허함이 확 밀려오더라 이게 맞나 그런 마음도 들고' 솔직한 감정을 내비치는 친구의 이야기에 속으로 꽤나 놀랐다. 이런 감정은 감성적이고 내면 세계가 복잡한 나만 느끼는 건 줄 알았는데, 발랄하고 씩씩한 친구도 공허함을 느낀다니 이상하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왜 공허함을 느낄까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의 공허함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간 세상이 정해준 코스대로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잡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모든 과정이 눈물나게 힘들었지만 적어도 나를 위한 일이었으므로,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하는 일이었으므로 적어도 낙오되지는 않게 헉헉거리며 따라왔다. 자연스럽게 그 다음을 찾는 것은 관성 때문일까. 우리는 다음 이정표를 찾지만 이제 더이상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태어나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는 이제서야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한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질문 앞에 너무 심각해지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이렇게 공허한 감정이 달갑지 않아서 고개를 저으며 다음 이정표를 그리는 데에 집중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친구들과 같은 기혼자에게는 임신, 출산이 포함된 육아의 이정표가 하나 더 남아있다. 그 길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코스이므로 선뜻 발걸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말이다. 애만 낳았지 친구들과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찌됐든 그 고민의 지점을 떠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 만남을 통해 느꼈다.
아침에 만난 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듯 나 역시 이정표 앞에서 고민이 많을 친구들을 기특하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허함을 느끼며 또 다음 인생의 퀘스트를 깰 마음을 먹고 있을 그녀들에게 응원을 건네고 싶어
나도 모르게 계속 '너네 참 돈 버느라 고생 많다! 대단하다!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적으며 아주머니와 원장 선생님의 위로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더 큰 위로가 된다. 이분들 외에도 임신했을 때 나이 지극하신 심리상담 선생님께 포옹과 깊은 말씀으로 응원을 받았던 것, 출산하고 구안와사가 왔을 때 본인 일처럼 걱정하고 방법을 제안해주시던 작가님의 메시지 등 위로와 이해의 마음을 받았던 순간이 빼곡하다.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절대 받을 수 없었던 귀한 마음이다.
불현 듯 퇴근 길 마을 버스에서 앉아 사람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다들 하루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다 혼자 읊조리던 그날이 떠오른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이며 살아가는 것이 사는 이유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화이팅 외치고 싶은 월요일이다! 힘내세요! 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