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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대학생은 MT를 걸어서 갔다

[양평 사람 최승선 040] 술 없는 MT, 버스 없는 MT

by 최승선

병설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양평에서 다녔다- 라고 하면 대학을 양평에서 통학한 거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양평의 유일한 대학교를 졸업했다. 양평에 살면서도 어디 있는지 전혀 몰랐던 대학교. 마치 절처럼 산 중턱에 위치한 대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온 모든 외부 강사님들이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곳에서 지내고 계시네요'라는 말을 해주는 곳이었다.


그 대학교 화장실에는 학과별 소식지가 매주 붙었었다. 어느 날에는"햇살 아래 남한강에 비치는 윤슬처럼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로 시작하는 우리 과 소식지 문구가 붙었다. '햇살 아래 남한강에 비치는 윤슬의 아름다움'에 모두가 발길음 멈춰봤을 거라고, 감탄에 입을 다물지 못해 봤을 거라고, 어쩔 수 없이 핸드폰 카메라를 켰을 거라는 믿음으로 적힌 문장이었다.


IMG_3087.JPG 그 시절 필터, 그 시절 양평


역까지 걸어서 30분이 걸리는 학교였다. 그 길이 남한강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셔틀을 보내고 걸어가길 선택했다. 한여름이 고되고, 한겨울이 괴로운 길이었지만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날엔 30분의 길이 아쉬웠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 우리의 단골 MT 장소인 '아신연수원'이 있었다.


휴학했던 해까지 총 5번의 MT를 갔다. 그 5번의 MT는 모두 아신연수원에서 했다. 사장님과의 협상으로 얼마까지 깎을 수 있는지가 학생회 비공식 인수인계에서 중요한 내용이기도 했다. 1~3만 원의 참가비가 부담이 되어 못 오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들과 선배들의 후원을 받아도 돈은 없었기 때문에 사장님에게 염치불고하고 읍소했다.


MT의 스케줄은 이랬다. 목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나면 1학년 과대가 학교 앞으로 1학년 학생들을 모아놓는다. 그러면 학생회 임원 중 한두 명이 그들을 인솔하여 20분 도보 거리의 연수원으로 이동한다. 이미 경험이 있는 2-4학년은 알아서들 시간 맞춰 걸어온다. MT에 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오직 장보기팀뿐이다.


우리 학교는 무려 '신학대학교'다. 음주 금지가 학칙인 학교의 학생들은 고기와 콜라를 원 없이 먹는다. 그리고 짧은 예배(학과별로 긴 예배가 진행되기도 한다.), 레크레이션. 각자 교회에서 한 따까리(?)씩 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레크레이션 할 맛이 난다. 벌칙에 걸려 춤을 추라고 해도 원하는 노래가 정확히 있고, 도입부부터 멋지게 들어갈 수 있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술 마셔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술게임인 랜덤게임의 랠리가 대단한 친구들이었다.


맥주 한 잔 없는 MT여도 다음날 아침은 괴롭다. 해 뜰 때까지 랜덤게임이나 마피아를 한 팀과 수다를 떤 팀으로 나뉘어 거실(?)과 방에서 깨지 못하는 아침을 맞이한다. 체력 부족 이슈로 일찍 잠든 사람들이 학생회 임원들을 도와 뒷정리를 도와줄 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대체로 수다를 떨다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는 편이었고 임원이었으나 못 일어나는 편이었다.


요즘 양평에서 교육 문화를 만드는 기획팀으로 같이 회의를 하고 있는 팀이 있다. 작년 말부터 몇 번의 회의와 춘천과 남양주에서의 두 번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게 의아했던 건 MT의 기억 때문일 것 같다. 양평은 MT를 '오는' 곳이고, 워크숍을 '오는' 곳인데 양평 사람들이 워크숍을 다른 지역으로 '간다'라는 게 새로웠다. 뭐랄까. 마치 강릉 사람들이 속초 해수욕장을 가는 기분? 경주 사람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가는 기분?


코로나 시기에 맞물려 우리의 '아신 연수원'은 사라졌다. 인근에 다른 연수원이 생긴 것 같은데, 학생 수가 적어졌다는 우리 학교는 요즘 어떤 MT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신 연수원에서 MT를 마치고, 금요일 수업 없는 사람들끼리 먹는 '옥천 감자탕'의 뼈해장국이 참맛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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