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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에게 "치킨"을 권할 용기

[양평 사람 최승선 047] 여행엔 레트로가 있어야 제맛

by 최승선 Feb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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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엔 세 개의 치킨집이 유명하다. 양평 시장의 '대명치킨', 양평 내에 유독 많이 분포한 프랜차이즈 '치킨 신드롬', 그리고 개군면의 '비바랜드'. 모두 양평 사람 3인 이상에게 쌍따봉을 받은 치킨집들이다. 급작스런 한줄평으로 시작하자면, <대명치킨>은 염지의 맛으로 로컬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고 <치킨 신드롬>은 떡과 '데리/핫/쏘핫' 소스로 사람들을 미치게 했으며 <비바랜드 치킨>은 레트로와 로컬의 무드를 정확하게 담고 있는 매장 분위기와 양, 구성이 있다.


그중 나의 원픽은 비바랜드다. 여주 가는 길, 이포보와 파사산 코스와 함께라면 더없이 좋은 비바랜드는 초등학생 때 배달로 먹던 곳이었다. 당시 비바랜드에서 치킨을 시키면 껌을 같이 줬는데 치킨보다 그 껌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살이 됐을 때, 첫 비바랜드 매장 입성을 하게 된다. 양평읍에서 모임을 마치고 야식 메뉴를 고민하다가, 나보다 평균 10살 정도 많았던 멤버들이 '비바?', '비바!' 외치기 시작했다.


개군을 '찾아' 가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개군할머니 토종순댓국이라는 걸출한 양평 맛집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개군으로 찾아오게 하는 매장이 또 있다니! 그렇지만, 그래봐야 치킨집이지-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따라갔다. 그들은 익숙하게 후라이드 치킨과 닭똥집 튀김을 시켰다. 입맛이 까다롭고, 낯선 음식은 먹지 않는 나로서는 달갑지 않은 주문이었다. 똥집..? 튀김...?


비바랜드치킨의 BEST 메뉴 : 후라이드 치킨, 닭똥집 튀김 (4~6인 권장)비바랜드치킨의 BEST 메뉴 : 후라이드 치킨, 닭똥집 튀김 (4~6인 권장)

그런데 웬걸. 산처럼 쌓인 후라이드 치킨과 닭똥집 튀김의 비주얼이 남달랐다. 처음 '비바' 이름을 외쳤을 때부터 줄곧 웃상이었던 그들은 이제 뿌듯함으로 바뀐 얼굴로 나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권했다. 후라이드 치킨을 먼저 집었다. 그래봐야 치킨이지,라고 생각했는데 십여 년 만에 다시 먹은 그 치킨은 거슬릴 게 없었다. '이게 병아리야, 비둘기야' 싶은 치킨들을 보다가 누가 봐도 '닭'인 크기와, 촉촉하고 부드러운 고기에 균일하고 고소한 튀김옷. 거기에 클래식한 양념.


이어 닭똥집 튀김 권유를 피치 못해 한 조각 집어보았다. '원래 이렇게 큰가?' 싶은 한 조각을 집고 5개의 소스 앞에 잠시 방황했다. 소금후추, 겨자, 양념치킨 소스, 일식간장(?), 기름마늘(?) 그중에 무엇이 '클래식'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제일 심심해 보이는 친구들부터 하나씩 찍어보기 시작했다. 무난한 소금후추 '얌', 양념소스 '냠', 그리고 일식간장에서 '어라?', 겨자소스 '오?!', 기름마늘 '엥???' 어떻게 소스도 거를 타선이 없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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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을. 대접에 나오는 샐러드와 리필 요청에 5배로 화답하신 사장님을 기억하며 기록.

로컬 치킨집의 '킥'인 케요네즈 양배추 샐러드도 빼먹을 수 없다. 사장님께서는 케첩과 마요네즈, 그리고 설탕의 조화로 완성되는 양배추 샐러드와 치킨 무를 아낌없이 내주셨다. 대접으로 주는 샐러드를 다 먹고 '사장님, 샐러드 좀 더 주세요~'하면 인당 1 접시로 화답해 주셨다. (언제부턴가 처음부터 인당 1 접시를 세팅해 주셨다.) 아주 레트로한 인테리어에 20세기 인심과 구성으로 완성되는 완벽한 로컬 맛집이었다.


그러니 양평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 감히 치킨을 권할 용기가 생긴다. 그대들이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 이 맛을, 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냐고. 레트로의 느낌을 내기 위한 뜨내기들과 달리 창문에 다 벗겨진 시트지로 OB 맥주가 그려져 있는 곳에서 몇십 년을 지키신 사장님들의 역사와 분위기를 느껴보라고, 자신 있게 치킨집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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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실물론 본 적 없는 전설 속의 OB 맥주 (우) 2016년엔 97년생까지 술 못 판다는 경고문이 붙어있는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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