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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로 발견한 시골의 기준 5가지

[양평 사람 최승선 048] 서울과의 거리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by 최승선 Feb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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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서울놈들'의 인식을 표현한 유명 지도다. "지방"과 "서울"을 동의어라 생각하는 서울놈들에 대한 분노가 만들어낸 풍자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동남아에도 백화점과 피시방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아프리카에도 슈퍼카가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놀란다. 당장 '광역시'들이 서울 밖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생각하기 전까지는 서울과 멀어지면 '시골'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수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경기도 양평'이 시골인지 도시인지 가늠할 수 없다. 경기도니까 그건 서울이라 쳐야 하는 사람들에게 '여기보단 서울 가기가 훨씬 편하긴 하죠'라고 답하지만 차마 서울이라 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진 못한다. 그래서 행정상 아닌 체감상 도시와 시골을 가르는 기준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밤에 사이드미러가 새까맣다.

대학교 때, 친구가 차로 집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다. 도시 사람인 그 친구는 '어우, 사이드미러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 봐라'하며 기겁했다. 그때 알았다. 도시에선 이럴 일이 없겠구나. 가로등도 많고, 차도 많으니까 빛이 없을 리가 없겠구나. 서울은 새벽 3시 30분에도 가로등이 켜지고, 차도 있으니까. 도로를 운전하는데 사이드미러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면 그곳은 아마 가로등도 없고, 차도 안 다니는 시골일 것이다. 


2. 전조등을 끄고 다닐 실수를 할 수 없다.

칠칠맞고 덜렁거리는 사람으로서 자동차 전조등 auto 기능은 축복 같은 기능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몇 번이나 배터리가 방전됐을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가끔씩 대리운전을 부른다거나 (살면서 1번 불러봄), 주차장에서 정차가 길어져 잠시 꺼뒀다거나 하면 어김없이 전조등 켜기를 까먹고 도로의 암살자가 되어 나간다. 세 차례쯤 쌍라이트 경고를 받기도, 신호 걸렸을 때 옆 차선 운전자님의 육성 훈계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 부끄러움과 함께 약간의 억울함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니, 세상이 이렇게 밝으면 내가 어떻게 알고 켜!'


시골에 간다면 억울할 일이 없다. 전조등으로도 부족하다. 하이라이트를 켜야만 운전이 가능한 길들이 있다. 10km 넘는 도로에 가로등 하나, 간판 하나 없는 그곳이 바로 시골이다. 가로등이 있더라도 그 밀도가 도시와는 확연히 다르다. 오죽하면 서울 도로를 달리다 보면 '2개 중에 하나씩만 뽑아서 양평에 심고 싶다'라는 생각을 10년째 하고 있을까. 전조등을 켜지 않아도 달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최소 '번화가'다.


3. 인도가 없다.

위 두 가지 기준이 운전자 기준이라면, 뚜벅이가 체감하는 가장 큰 기준은 인도다. 연 나이 30살이 된 나는 아직도 집 가는 길에 인도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것은 도로에 차가 없으므로 도로를 인도처럼 다닌 덕이기도, 인도를 걸어본 경험이 현저히 적은 탓이기도 하다. 


중고등학생 때는 지나가는 운전자들에게 혼난 적도 있다. 이렇게 어두운데 위험하게 플래시도 안 켜고 걸으면 어쩌냐고 혼났다. 누군가는 나의 생명에 대한 강한 우려였고, 누군가는 억울하게 사고를 낼뻔한 원인제공자에 대한 컴플레인이었다. 정말 어쩌라고 싶었다. 또 혼나면 기분이 안 좋으니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휘적휘적 팔을 휘저으며 걸었지만 도로에 가로등이 없는 것도, 인도가 없어서 갓길로 걷는 것도 내 잘못이 아닌데 왜 자기들이 조심을 안 하고 나한테 뭐라 하는 거지?


운전자가 되어보니 정말 식겁할 일이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중앙선이 있는 차도에서 유유히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깜짝이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는 그의 길을 걷는데, 나는 그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난날의 억울했던 나에게 '혼날만했다' 소리가 나올 만큼.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한다. 인도가 없고, 대중교통 인프라가 처참한 시골에선 갓길을 걷는 사람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4. 12시가 지나면 문 열린 편의점을 찾아야 한다.

밤 10시까지 문을 열어주기만 해도 '오! 늦게까지 한다!' 하는 시골에서 24시간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편의점은 얘기가 다르다. 편의점은 마치 그 이름이 24시간 영업 중이라는 뜻을 내포한 것처럼 문을 닫을 거라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골이라면 편의점을 '24시간'이 아니라 '슈퍼'로 대치해야 한다. 시대가 좋아져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그것이 편도 30분, 어쩌면 1시간이라 하더라도) 슈퍼가 생겼구나- 생각해야 한다.


밤 12시만 돼도 불 꺼진 편의점들을 찾기 쉽다. 세븐일레븐은 이름 그대로 7시에 문 열고 11시에 닫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새벽에 편의점을 가고 싶다면, 차에 시동을 걸고 몇 개의 편의점을 순회할 각오를 해야 한다. 참고로 나는 지난 명절 양평'읍'에서 3번의 시도만에 새벽 2시 편의점 입성에 성공했다.


5. '시내'에 '건강원'이 있다.

도시재생 용역사에 다니며 7곳 정도의 도시재생지를 다녀왔다. 그리고 그곳에선 공통적으로 '건강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시재생 지역은 한때 번화했으나, 어떤 변화들로 다시 예전과 같은 영광을 되찾고 싶은 지역들이 선정될 수 있다. 한 번도 번화한 적 없었던 곳들은 '개발'의 영역이지 '재생'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그곳들은 예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매장들과 고객들이 있고, 그들의 접점 중 하나가 건강원인 것이다.


'도시'에서 건강원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25년도에 흑염소탕이라든지, 토끼탕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공공연하게 판매되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는 도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선 건강원이 약국보다 많다. 그것은 아무 데나 있는 게 아니다. 나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있다. 온 김에 들릴만한 곳. 그러니까 '시내'에 '건강원'이 있는 그곳, 그곳이 시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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