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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아이들은 할 수 있고, 어른들은 불가능한

[양평 사람 최승선 051] 그걸 어떻게 걸어가!

by 최승선 Feb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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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까, 선생님과 다 같이 파사산을 올랐다. 어렸으니 헐떡거리는 숨소리보다 각자의 궁시렁으로 채우는 등산길이었다. 800미터(해발고도가 아니다)의 길지 않은 산길을 거의 다 오를 때쯤, 리코더 소리가 났다. 그럴 수가 없는 곳이다. 사람보다 동물을 마주치기 더 쉬운 곳에서 목관악기라니? 궁시렁 소리가 웅성거림으로 바뀔 때쯤 산성 바닥에 음악책을 펼쳐놓고 리코더 수업 중인 동년배를 만났다.


그중 아는 얼굴이 있었다. 마침 얼마 전 우리 학원에 등록한 친구였다. 한 반뿐인 학교였으므로 전교생의 얼굴을 다 아는데 처음 본 얼굴의 그 친구는 여주 초등학교를 다니는 친구였다. 어쩌다 학원차를 놓치게 된 탓에 친해져 만나면 반가운 사이가 됐는데, 산성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이렇게까지 반가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또 마냥 반가워하기 그랬다. 그들은 리코더를 불고 있었다. 모두 입에 리코더를 물고, 손은 리코더를 잡고, 바닥에 앉아있었다. 앞엔 그들의 담임 선생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계셨다. 8명~10명쯤 되는 아이들이 오붓하게 수업을 하던 그들의 교실에 무려 26명이 우르르 지나가며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반가움에 인사하고 싶은 마음과 모른 척해주는 게 예의일까 하는 마음으로 갈등했다. 아주 작게 손 인사를 했던 것 같다.


15년도 훌쩍 지난 이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파사산을 오르던 우리도, 그 산길에서 만난 그들도, 심지어 음악 수업을 하던 그 반도, 양평 초등학생과 여주 초등학생이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던 것도. 이 기억들이 생생함에도 모든 것이 기억 왜곡인가.. 싶어지는 것은 가장 비현실적인 기억이 하나 있어서다. 리코더를 불던 그 반과 산길을 오르던 우리 반이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가에 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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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지도

우리 초등학교와 리코더를 불던 초등학교로부터 파사산까지의 도보 거리다. 각 3.7km, 2.4km다. 이전 글에서 말했다시피, 시골은 인도가 없다. 현장체험학습도 아니었고, 일반 수업이었으므로 보조교사나 학부모님이 따라올 일도 없었다. 현장체험학습이 아니었으므로 버스를 대절할 일도 없었다. 승용차를 타는 선생님이 몇 차례에 걸쳐 라이딩을 해줬을 리도 없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 선생님 혼자 26명을, 10명을 데리고 차도 갓길을 따라 2.5~3.7km를 걸어갔다?


얼마 전에 인천에서 친구들이 놀러 왔다. 뚜벅이로 양평에 2박 3일 여행을 온 친구들과 일정상 하루 저녁만 놀고, 종종 여행 일정을 물어본 나는 매번 '네? 그걸 걸어 다녔어요?'라고 답했다. 양평터미널에서 양평역을 들렸다가, 갈산공원 산책을 하고, 버스를 타고 용문에 왔다는 동선을 듣고 나처럼 말하지 않을 양평 사람이 있을까? 터미널에서 역까지 15분, 역에서 갈산공원까지 또 15분, 공원에서 정류장까지 또 15분, 여기에 산책 거리는 별도. 


생각해 보면 1시간 정도 걷는 건데, 그걸 그렇게 기함하는 이유는 그 길이 '차로 갈 거리'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산책 1시간과 이동 1시간은 피로도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는 점, 여행 짐을 이고 지고 걷는 건 그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는 점까지 감안한 점도 있다. 그런 면에서 파사산은 걸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파사산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이포보뿐이다. 근데 그걸 초등학생이 걸어?


이 기억만 있었으면 말을 안 한다. 개군은 4월이면 산수유축제를 한다. 지금은 레포츠공원에서도 하니 학교에서 걸어갈 만 하지만(중학교에서 22분 걸린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내리/주읍리/향리에서 했다. 그래도 갔다. 어떻게 갔을까? 이건 파사산 갈 때보다 더 어렸을 때 같은데, 기억을 그대로 꺼내보자. 토요일, 여느 때와 같이 등교를 했다. 학교에서 다 같이 내리로 갔다. 도착 직후, 자유롭게 구경하다 집에 가라는 선생님의 종례가 있었다. '기껏 와놓고 그냥 집에 가라고요?' 생각했다.


산수유축제 꿀팁! 내비게이션은 정보화마을을 찍으세요! 축제 때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세요!산수유축제 꿀팁! 내비게이션은 정보화마을을 찍으세요! 축제 때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세요!


심지어 내리는 집에 가는 버스도 없다. 다시 개군면으로 나가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정류장까지 가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린 이제까지 걸어왔으니까 더욱! 그래서 하얀 트럭을 탔다. 공식 셔틀은 아닌 것 같고, 마을에서 봉사하는 아저씨의 일종의 민간 셔틀 같았다. 그 트럭에서 난생처음 '아빠 이름이 뭐야? 처음 듣는데? 내가 양평 사람 다 아는데~'를 들었다.


아무쪼록, 선생님은 무슨 배짱으로 초등학생 26명을 데리고 도로 갓길을 따라 1시간을 걸을 생각을 하셨을까? 그 정도쯤은 도보 거리라고 생각하신 걸까? 그때의 나는 걸었는데, 왜 지금의 나는 고작 30분만 걷는대도 '그걸 걸어갔어???' 하게 됐을까. 지금도 시골의 어린이들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1시간 걷기 이벤트를 하고 있을까? 버스를 놓치면 1시간 걷기를 선택하기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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