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힙생 Aug 12. 2023

스웨덴과 '돈'

당신은 남들보다 잘나지 않았다

스웨덴의 '성'에 대한 포스트에 이어 이번에는 스웨덴과 '돈'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스웨덴의 화폐단위는 크로나(Krona)이며 국제 통화 코드는 SEK이다. 2023.8월 기준 1 크로나는 126원 정도이다. 스웨덴의 물가는 다른 북유럽 국가가 그렇듯 높은 편이지만 덴마크, 노르웨이와 비교했을 때는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스웨덴 사람들의 돈에 대한 가치와 인식은 어떨까? 그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관찰한 바와 사실을 공유하고자 한다.


1. 돈과 성공에 대한 얘기를 잘 나누지 않는다.

옆집 사는 중국인 친구와 나는 돈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 자주 얘기를 하곤 한다. 이런 쪽으로 젬병인 나는 옆집 친구를 만나면 부동산에 대한 정보와 여러 직업 또는 문화권의 봉급 정보, 마트에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한참 얘기를 듣는다. 한국에서도 사람들과 만나면 돈과 관련한 주제로 이야기가 자주 흘러가곤 했다. 적은 월급으로 고물가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에게 이런 주제의 이야기는 당연하면서도 꼭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돈과 성공에 대한 얘기를 잘 나누지 않는다. 집에 들쥐가 든 이야기, 애완동물 이야기, 주말에 자전거 탄 이야기, 오늘 먹은 요리의 레시피...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고 길게 이야기를 어찌나 잘 이어가는지 스몰톡이 어려운 내향형 인간으로서 가끔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돈과 관련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몰톡의 잠깐의 얘깃거리가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주제에 몰두하지 않으며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는다. 스웨덴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현실에서 벗어난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현실의 사소하거나 또는 큰 일상적인 일에 대해 얘기하지만 현실적인 먹고사는 일에 대한 고민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먹고 먼저 이슈로 꺼내지 않는 이상은 하기가 힘들다.


2. 다른 사람의 자산 정보를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에 대해 얘기는 잘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자산 정보는 알 수 있다. 스웨덴은 매년 납세자들의 소득규모, 자산규모 등을 세금달력(Taxeringskanlendern)이라는 이름의 책자를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하며 343kr, 우리 돈으로 약 42,000원 정도를 내면 집으로 배달받아 볼 수 있다(사이트: taxeringskalendern.se). 책을 주문하지 않고 ratsit.se 및 lonekollen.se 사이트에서 간단하게 검색도 가능하다.

내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무섭게도 구독하지 않아도 이름, 생년월일, 주소 심지어 별자리까지 알 수 있었고 따로 이름을 검색하지 않아도 한 두 번의 클릭으로 우리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정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월 구독료로 약 59kr, 우리 돈으로 약 7,000원 정도를 내면 매월 본인이 지정한 10명에 대한 월급 정보와 전화번호, 생년월일, 결혼 여부, 동거인 생년월일과 전화번호, 보유 차량의 차종 및 연식,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 집 크기, 자가 및 월세 여부 등을 알 수 있다. 익명이기 때문에 내 신분은 드러나지 않는다.


3. 명품 소비는 케바케다.

유모차, 가방, 옷 등 명품을 걸친 사람들을 공원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살짝만 눈을 돌리면 정말 고무줄이 다 늘어지고 티셔츠의 프린터가 다 지워진 옷을 입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또한 즐비하다. 한 번은 운동을 같이 하는 친구의 양말이 구멍이 적어도 5개 이상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어?!라고 놀란 동시에 저 정도의 구멍이면 모르고 신은 건 절대 아니라는 생각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던 적이 있다. 화장을 하든 안 하든, 명품을 입든 안 입든, 구멍이 여러 개 난 양말을 신든 안 신든 그의 선택이며 이에 대해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중요한 이 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성''이라는 글에서 말했지만 다수가 ‘뭐 어때’라고 하면 개인이 덩달아 ‘뭐 어때’라고 되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 그래서 본래는 패션에 관심이 없지만 한국에서 사회적 눈치를 챙기며 정기적으로 쇼핑을 하던 나도 요즘은 뭐 어때라는 태도로 후줄근함을 즐기고 있다.


4. 국가에서 학생들에게 용돈을 준다.

운동을 같이 하는 스웨덴 고등학생과 얘기를 하다가 '국가에서 주는 용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 스치듯 했다. 잠깐... 국가에서 용돈을 준다고?

사실이다. 스웨덴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학업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성인이 될 때까지 국가로부터 용돈을 받는다. 16세 이전의 스웨덴에 살면서 부모와 함께 스웨덴 보험에 등록된 아동이라면 ‘아동 수당’을 받는다. 아동수당을 받다가 16세 이상이 되면 CSN(Centrala studiestödsnämnden)에서 '학생수당'을 받을 수 있다.

CSN 스웨덴의 국립 장학금 및 학자금 기관으로 스웨덴 내에서 학생들에 장학금 및 학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스웨덴의 중고등기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친척 어른을 만날 때 받곤 하는 용돈처럼 소액을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가능할 만큼 충분한 금액을 지원해 준다. 예를 들면, 만약 고등학교에서 풀타임으로 공부를 하는 16세 이상 학생이면 한 달에 1,250kr (약 15만 4천 원) 수당을 받는다. 전액 학자금 대출이 있는 풀타임 대학생을 위한 학자금 지원 금액은 한 달 3,652kr (약 45만 원)이며 더해서 한 달 8,400kr(약 100만 원)의 대출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고등학교, 대학기관, 직업기술교육기관 등 어느 기관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제도와 혜택 정도, 요건이 다르지만 종합적으로 이 제도는 '스웨덴 국적의 젊은 학생'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조건만 충족한다면 '스웨덴에서 거주하는 모든 학생'(외국인 포함, 연령 제한 없음)에게 열려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5. 중고샵의 인기가 높다.

구글맵에 second hand shop을 검색하면 주변 중고샵 매장이 여기저기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각 매장의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중고샵을 가면 그릇, 장난감, 책, 옷과 더불어 별의별 물건들을 만날 수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한시적 생활자로서 비싼 물건을 사기 부담스러운 나도 자주 이용하곤 하는데 꽤 쓸만한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어 매우 만족하고 있다.

중고샵이 아니더라도 LOPPIS라고 하는 중고 장터도 지역 곳곳에서 자주 열린다. 미리 장소를 예약하면 나의 물건을 들고 와 팔 수도 있다.

중고 장터(Loppis)에서 자신의 자동차에 물건을 전시해 팔고 있다.

온라인 중고 장터도 인기가 많다. Blocket (www.blocket.se)이나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 등 우리나라 당근마켓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들이 인기가 높고 거래량이 많으며, sellpy(https://www.sellpy.se/)라는 사이트에서는 물건을 대량으로 보내기만 하면 대신 물건을 광고해 주고 팔아준다.

 


얀테의 법칙

얀테의 법칙(Jantelagen)은 스웨덴과 다른 북유럽 국가의 사회적 규범이나 태도에 영향을 끼친 10가지 법칙으로, 개인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10가지 법칙은

1. 당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Du skall inte tro att du är något)
2.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Du skall inte tro att du är lika god som vi)
3.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Du skall inte tro att du är klokare än vi)
4.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Du skall inte inbilla dig att du är bättre än vi)
5.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Du skall inte tro att du vet mer än vi)
6.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Du skall inte tro att du är förmer än vi)
7.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Du skall inte tro att du duger till något)
8. 남들을 비웃지 마라 (Du skall inte skratta åt oss)
9. 누군가 당신을 걱정한다고 생각하지 마라(Du skall inte tro att någon bryr sig om dig)
10.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Du skall inte tro att du kan lära oss något)

얀테의 법칙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자신을 과시하는 것을 꺼리는 북유럽 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오래된 법칙이다. 자신의 개성을 감추고 자아를 억압할 수 있다는 면에서 비판을 받으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법칙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공평해야 한다는 복지국가의 철학과 맞닿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북유럽의 복지정책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벌고 잘 살지 않는다는 개념을 근간으로 해서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살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해 왔다.


남의 집 창문 훔쳐보기 좋은 나라

말 그대로 거리를 걷다 보면 실제로 큰 창문으로 사람들이 집 안에서 어떻게 생활이 정말 잘 보인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돈에 있어서도 남의 집 창문을 훔쳐보기 좋은 나라, 즉 사회적으로 감시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나라이다. 북유럽의 바이킹은 바다로 나가 각종 보물들을 약탈한 후 돌아와서는 약탈에 함께 참여했던 자들에게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공평하게 분배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보물을 약탈하거나 따로 챙기지 않는지 서로 감시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바이킹의 후손들은 공평하게 자산을 분배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를 하고, 그 과정에서 탈세를 방지하고 세금납부에 대한 사회적 감시를 강화하였다. 즉 공동체 구성원 간의 상호 감시를 통해 복지사회의 가장 큰 적인 무임승차자를 가려내고, 재원의 효율적 배분을 도모하는 것이다.


돈보다는 삶

스웨덴의 중고매장은 절약과 더불어 환경 보호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대부분의 스웨덴인에게 있어서 환경과 자연은 종교와 같이 여겨질 정도로 소중한 것이다. 중고 시장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환경보호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웨덴 사람들을 자극했다. 소비자로서 또는 판매자로서 중고 시장의 이용은 돈을 아낄 수도 있고 환경보호를 한다는 만족감도 줄 수 있는 현명한 소비 방법이다.

스웨덴에는 바가 아닌 이상 6시 이후로 문을 연 매장을 찾기 힘들고 공휴일에는 외식을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인데, 이도 개인이 즐기고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여 삶에서 중요한 가치(예를 들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를 실현하고자 하는 스웨덴 사장님들의 마인드들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냉소적으로 보면 높은 세금과 누진세율로 극소수의 극부유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비슷한 경제 수준으로 살아가므로 돈에 대한 욕심이 절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돈보다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가치 있는 일에 소비를 하는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음을 스웨덴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바이다.



+주관적 견해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으며 여러 요인에 의해 다를 수 있는 면들을 거시적 관점에서 보았다는 점을 밝힙니다.

 


함께 읽기 좋은 글


참조

아동수당 https://www.forsakringskassan.se/english/parents/child-allowance

CSN https://www.csn.se

매거진의 이전글 스웨덴과 ‘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