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힙생 Apr 28. 2023

스웨덴과 ‘성’

부끄러워하는 내가 부끄럽다

한시적 생활자로서 스웨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오늘도 스웨덴에 있으며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고 거기에 '주관적인 감상'을 한 스푼 더하여 글을 쓰고자 한다.


이번 글의 주제는 '성'이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나라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 그중 하나, 스웨덴이다.

성과 관련해 몇 가지 경험한 것들을 말하면,


1. 홈페이지 가입 시 성별을 묻는 경우, 남*여 외 다른 성별을 선택할 수 있다.

모든 웹사이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모든 스웨덴의 웹사이트는 가입 시 성별을 묻지 않거나(사실 이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3의 성도 선택 가능한 칸이 있다. LGBT 커뮤니티를 포함한 다양한 인종, 성별, 성적 취향의 사람들을 고려한 inclusive web design이다.

이분법적 성의 분리가 아닌 모든 성을 포함한 선택지


2. 화장실에 성별 구분이 없다.

남녀로 성이 나뉘지 않는 만큼 화장실도 같이 쓰자! 는 유니섹스 화장실이 보편화되어 있다. 남녀가 따로 구분된 한국인에게 익숙한 화장실은 스웨덴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남여 픽토그램 대신 변기 픽토그램을 사용한 유니섹스 화장실

한국에서도 종종 허름하면서도 정겨운 식당에서 유니섹스(?) 화장실을 보곤 하지만 과연 성을 남녀로 구분을 짓지 않고 모두를 포함하자는 취지에서 그랬을까? 한국에서는 남녀가 구분된 화장실을 선호하지만 남녀로 구분 짓기에는 건물에 화장실칸이 하나 혹은 화장실 공간이 하나뿐이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여기, 스웨덴은 한국에서 꺼려지는 화장실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사람들은 그런 화장실을 거리낌 없이 이용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불편함을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을 가르는 기준이 성별은 아닌 듯하다. 나의 민감하고 사적인 부분을 이왕 공유할 것이면 같은 성만이 아니라 이분법으로 나눠진 성을 넘어서 모두가 함께 공유하자는 것이다.


3. 수영 스폿, 사우나에서 다 벗은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스웨덴 사람들로부터 꼭 가 보라고 몇 번이나 추천받은 다 벗고 수영하는 누드비치... 아직 안 가봤지만 글쓴이가 직접 목격한 것은 수영스폿 또는 사우나에서 사람들이 옷을 쉽게 갈아입고 몸을 다 보여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남녀탈의실에서 자연스러운 거 아니냐고? 아니, 별도의 탈의시설이 없다. 남녀 구분 없이 쉽게 옷을 벗고 옷 안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봤을 때는 경악스럽고 헛웃음이 나왔지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니 뼛속 저 깊은 곳까지 한국인인 나도 점점 익숙해졌고 무엇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은 지경에 이르고 있다.

물이 있는 곳이라면 곧 수영을 할 수 있는 곳


4. 개인의 성생활, 성적 농담, 성에 대한 진지한(?) 얘기가 일상적이다.

스웨덴 사람들과 조금만 얘기를 하다 보면 성에 관한 얘기를 정말 자연스럽고 아무렇지 않게 공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적 농담부터 자신의 성생활에 대한 얘기까지... 처음 들었을 때는 이 사람들 좀 특이하다 생각했지만 이 집단도 저 집단도 거리낌 없이 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경험하니 아... 여기서 특이한 건 나였구나. 유교문화권의 뿌리 깊은 영향을 받은 나는 경청하는 척 감정을 숨기고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했다.


종합해 보건대, 여기서 경험한 성과 관련한 문화들은 두 가지 특성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첫째, 성에 대해서 포괄적인 동시에 관용적인 태도가 생활에 녹아 있으며 사람들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소수의 성별까지 모두 포함한 웹디자인이라던지 애초에 성별을 구분 짓지 않는 화장실이라던지 보편적인 디자인(universal design)으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 결과물(유니섹스 화장실 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어떻게 다른 성이랑 같이 화장실을 같이 써? 범죄의 위험은 없을까? 하는 질문들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렇지만 누구든 배제하지 않고자 하는 그 유니섹스 화장실의 시작점에는 지지를 하고 싶다.


둘째, 사람들과 문화 전반에 걸쳐 성을 표현하는 데에 부끄럼이 없고 개방되어 있다. 

성은 숨겨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쉽게 이야기하고 보여줄 수 있는 주제이다. 이 특징은 첫 번째 특징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성에 대해 구분을 짓지 않고 관대하다면 굳이 숨겨야 할 이유도 없다. 모두가 '뭐, 어때?'라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덩달아 '뭐, 어때?'라는 태도로 참여하게 되는 최면에 걸리기 쉬운 나라 스웨덴이다. 이렇게 성별의 구분 없이 성에 개방되어 있다면 적어도 포르노를 통해 성을 배울 일은 없겠구나,  '건강한 성상식을 가졌으며 건전한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혼자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스웨덴은 양성평등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LGBT+의 권리가 가장 진보적인 나라 등 객관적인 지표나 관련한 역사들을 고려할 때 성과 관련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진보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숫자나 글로 확인할 수 있었던 스웨덴의 성문화를 스웨덴의 일상 전반에 스며들어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충격의 단계를 너머 그 문화에 녹아있는 인간에 대한 너그러움을 이해하며  점점 동화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웨덴 법정공휴일수가 한국보다 적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