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와 문자메시지의 공통점은?
살면서 엘리베이터를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몇 명 정도 있을까? 어쩌면 태어나면서 산부인과를 나오는 순간부터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는 나같이 조금이라도 덜 걷고 싶어 하는 귀차니즘에게 너무 유용한 발명품이다. 계단 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어쩌다가 다리를 다친다면?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는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한 훌륭한 대체 수단이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 덕분에 유모차를 끄는 사람도, 짐이 많은 사람도, 어린이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지체장애인도 모두가 편리하고 빠르게 상하이동을 할 수 있다.
문자메시지는 어떤가? 매체에서 아이유가 통화에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는 ‘콜 포비아’가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전화 대신 문자가 편해진 세상에서 증가한 공포증이라고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하면 전화가 어색한 사람들에게 문자메시지는 참 유용한 도구이다. 메시지 기능은 청각장애인에게도 의사소통을 매우 용이하게 하고 접근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뿐만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음성메시지 기능이 추가되어 손으로 타이핑이 힘든 경우에도 쉽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샴푸를 하다가 거품이 손에 묻은 채 문자를 보내고 싶은 사람도, 소근육 기능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음성메시지 기능을 사용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메시지 기능의 발달로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이고도 쉽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받고 싶은 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상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된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한다. 제품, 환경, 시스템 등을 노년층, 장애인, 임산부, 어린이, 다양한 문화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편의와 접근성을 제공하기 위한 디자인 철학이다.
과거에는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설명할 때 왼쪽과 같이 계단식의 그림이 사용되곤 했다. 가장 밑 계단에 장애인이, 가장 윗계단에 비장애인이 있으며 가장 밑 계단부터 모든 계단에 있는 사람들의 능력과 요구를 고려하여 접근가능하고 사용가능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의미의 그림이다. 하지만 한 개인이 다양한 능력과 요구를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단식으로 능력과 요구를 표현한 것은 자칫 사람의 능력과 요구를 높고 낮음으로 나눌 수 있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사회에 모여 있는 오른쪽의 그림이 유니버설 디자인을 표현하기에 더 적절할 듯하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의 Ronald Mace가 처음 만든 개념으로, 그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실천하기 위한 7가지 원칙과 지침을 제시하였다.
원칙 1. 공평한 사용 (Equitable use)
지침
1a. 모든 사용자에게 동일한 사용 방법을 제공한다.(가능한 경우 동일하게 제공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동등한 방법으로 제공한다.)
1b. 어떤 사용자도 분리되거나 낙인찍혀서는 안 된다.
1c. 개인 정보, 보안 및 안전을 위한 조치는 모든 사용자에게 동등하게 제공한다.
1d. 디자인을 모든 사용자에게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공평하게 사용가능하게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그들이 사용할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장애인 저상버스를 생각해 보자. 장애인 저상버스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좋은 발명품일지 모르지만, 막상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저상 버스 이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발판이 내려오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며, 발판이 내려올 때 경고음이 매우 커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이용하는 사람을 뻘쭘하게 한다. 물론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조건이 잘 갖춰진 정류장도 많지만 쓰레기통과 턱 등 장애물로 인해 저상 버스 이용 자체가 불가능한 정류장도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예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을 분리시키며, 버스를 다른 사람들과 공평하게 사용하지 못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원칙 1을 위배하고 있다. 반면 무턱의 자동문은 문을 열 힘이 부족한 사람도, 휠체어 이용자도 눈치 보지 않고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칙 1을 지키고 있다.
원칙 2. 사용의 유용성 (Flexibility in use)
지침
2a. 사용 방법에 있어 선택을 제공한다.
2b. 오른손 또는 왼손잡이 모두 접근과 사용이 가능하도록 한다.
2c. 사용자가 정확하고 정밀하게 사용하도록 한다.
2d. 사용자의 (다양한) 속도에 맞추어 제공되도록 한다.
사용자의 능력과 선호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사용 가능하게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원칙 1이 디자인을 사용하는 데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면, 원칙 2는 다양한 능력에 의해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날이 양쪽으로 있고 좌우 대칭인 양손잡이용 가위는 왼손과 오른손 어느 쪽으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칙 2를 지킨 사례이다.
원칙 3.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 (Simple and intuitive)
지침
3a. 필요 없는 복잡성을 제거한다.
3b. 사용자의 (다양한) 기대와 직관에 대해 일관성이 유지되도록 한다.
3c. 다양한 문해력과 언어 기술을 고려하도록 한다.
3d. 중요성에 따라서 정보를 정렬시킨다.
3e. 작업 완료 중 또는 이후에 효과적인 반응과 피드백을 제공한다.
사용자의 경험, 지식, 언어 수준, 집중 정도, 교육 정도와 상관없이 사용 가능하게 디자인되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픽토그램은 간단한 이미지를 제공하여 글자를 읽지 못하거나 시각적 정보 습득에 강점이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원칙 3을 따르고 있다.
원칙 4.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정보 (Perceptible information)
지침
4a. 핵심 정보를 다양한 모드(그림, 언어, 촉각)로 제공한다.
4b. 핵심 정보와 배경 정보 사이에 적절한 대조를 제공한다.
4c. 핵심 정보를 가독성을 최대화한다.
4d. 지시나 안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요소를 구별한다.
4e. 감각적 제한이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기술이나 장치와 호환되도록 제공한다.
환경적 조건과 감각적 제한에 상관없이 쉽게 있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원칙 3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기 쉽고 직관적으로 만드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 원칙 4는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픽토그램은 간단한 그림을 사용하여 인지 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원칙 3을 따르지만, 촉각정보, 언어 정보와 함께 제공되거나 배경과 그림이 명백히 색의 대조를 이루는 픽토그램은 다양한 감각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핵심 정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원칙 4를 따르기도 한다.
원칙 5. 사고방지와 오작동에 대한 포용 (Tolerance for error)
지침
5a. 위험과 오류를 최소화하도록 요소들을 배치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요소들을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에 배치하고, 위험한 요소들은 제거, 격리, 또는 보호한다.)
5b. 위험과 오류에 대한 경고를 제공한다.
5c. 안전장치를 제공한다.
5d. 주의가 필요한 작업에서 무의식적인 동작을 억제한다.
실수를 최소화하고 비의도적이거나 우연한 동작에 의해 작동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면, 컴퓨터나 휴대폰의 뒤로 가기 버튼은 잘못된 동작을 되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원칙 5를 따르고 있다. 아래 사진과 같이 롤러가 있는 커터칼은 실수로 삐끗하더라도 다칠 위험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원칙 6. 최소한의 신체적 노력 (Low physical effort)
지침
6a. 사용자가 중립적인 몸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6b. 적당한 힘을 사용하여 작동되도록 한다.
6c. 반복적인 동작을 최소화시킨다.
6d. 지속적인 신체적 노력을 최소화시킨다.
최소한의 피로로 효과적이고 편안하게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누르는 손잡이는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어 돌리는 노력을 해야 했던 과거의 둥근 손잡이에 비해 훨씬 적은 신체적 노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원칙 7.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크기와 공간 (Size and space for approach and use)
지침
7a. 앉아서도 서서도 중요한 요소들을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
7b. 앉아서도 서서도 모든 요소들에 편하게 접근 수 있도록 한다.
7c. 다양한 손의 크기와 악력에 의해 작동되도록 한다.
7d. 보조 장치와 개인적 도움의 사용에 대해서 적절한 공간을 제공한다.
사용자의 신체 사이즈, 자세, 이동성에 상관없이 접근, 조작할 수 있는 크기와 공간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높낮이가 다른 손잡이를 제공하는 것은 키가 크건 작건, 휠체어에 앉아있건 아니건 사용가능하다. 휠체어가 들어가도록 충분히 넓은 지하철 개찰구도 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좋은 예이다.
한 예시가 원칙 하나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원칙들이 정확하게 구분되어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러한 원칙을 가능한 모두 고려하여 좀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공평하게 인공물을 사용하도록 하여 좋은 디자인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전 글에서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대해서 고민하며 모두가 포함될 수 있는 포용적인 사회(Inclusive society)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상과 하, 흑과 백,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눠지지 않는, 어디 한 구석 이상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어울려 살 수 있는 포용적인 사회를 위한 한 걸음이 모두가 자신의 능력과 요구에 상관없이 제품, 환경,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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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원칙 및 지침 출처: https://universaldesign.ie/what-is-universal-design/the-7-principles/#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