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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크래프터 Sep 19. 2024

매일 직장 안팎을 들락거립니다


다사다난한 커리어 방황기


6년간 4번의 이직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부단히 애쓴 인생이다.


대학 졸업을 할 때까지 아무런 취업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스펙 쌓고 인턴 경험도 했어야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마땅히 없지만 취업은 해야 하니까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기술이 영어 정도인데, 이것만으로 취업할 수는 없을까 찾아보다가 공공기관 해외 인턴자리가 눈에 띄었다.


'영어 가능자 우대'라는 조건 하나만 보고 해외 인턴에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도피하듯 카타르라는 낯선 곳으로 떠났다. 해외 인턴 생활을 하며 해방감을 느낀 지 6개월,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력서에 인턴 경험한 줄 채우고 다시 취업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전공을 살려보겠다고 5인 미만의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로지 직무만 보고 회사에 들어갔는데, 당시에는 커리어 개발이나 근무 조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심리척도를 바탕으로 기업 교육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처음에는 재밌었다. 몇 개월 지나고 알게 된 건 이 회사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당혹스러운 사실. 주어진 교육기획 업무 외에도 회사 매출을 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회사를 살리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밖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점에 탈출을 도모했다. 몸값을 올리려고 대학원에 진학했건만, 몸에 이상이 생겼다. 이전 회사에서 무리를 해서였을까. 허리 디스크가 발생했다. 앉아 있으면 통증이 더 심한 이 몹쓸 병 때문에 한 학기만에 휴학을 하게 되었다.


백수로 3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매일 걷고 쉬기를 반복하면서 자책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왜 난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괴로운 걸까. 더 이상 나 자신을 괴롭힐 수 없겠다는 상황이 되어서야 다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면접을 보러 다녔고, 다행히 이전 경력을 활용해서 외국계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기쁨도 잠시, 계약 당시 업무와는 상당히 다른 일을 해야 했다. 분명 교육기획 업무를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회사에서는 영업 매출 증대에 대한 아이디어를 원했다. 과도한 보고 문화, 사내 정치 등 업무 외적으로도 괴로운 일이 많아 이번 이직도 실패한 듯했다.


몇 번의 커리어 방황을 겪으며, 이제 커리어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적인 회사를 찾아 교직원에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모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도망치듯 이전 회사를 나왔다.


공공기관 인턴으로 시작해서 중소기업, 대학원을 거쳐 외국계 회사까지.


누군가는 어떻게 이직을 그렇게 잘하냐고 묻기도 했지만, 사실 알고 있다.


이 커리어 여정은 전문성 따위는 포기한 물경력의 기록일 뿐이라도.


자신의 강점을 살리고 연봉을 높여가는 이직은 성공적인 변화의 여정이지만 나같이 닥치는 대로 수평으로 옮기는 경우는 소모적인 이동일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해왔지만, 인생 전반의 계획은 부족했던 걸까.


커리어라는 여정에서 나는 주인공 아니라 조연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직장 밖에서는 잘 될 줄 알았다


정년 보장이 되는 회사에서 드디어 마음을 놓았다. 이전 커리어 방황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격렬하게 워라밸을 찾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해결하고 퇴근해서는 오로지 휴식을 하는 삶. 일과 삶은 다른 영역이고 명확하게 구분해서 나를 만족시키려고 했다.


처음에는 이런 삶의 태도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휴식과 위안을 추구하는 삶에서 금씩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 목표가 빠른 퇴근이고 휴가를 항상 기대하는 내 모습에서 공허함이 느껴졌다. 아직 살 날이 많은 청년이 꿈도 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맞는 걸까.


변화를 만들고 싶어서 무작정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한 가지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자본 없이 창업하는 방법이 있다고. 누구나 자신의 지식과 노하우를 SNS에 공유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정보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독서를 많이 해서였는지 몰라도 괜히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그동안 터득한 업무 노하우와 이직 방법이 있으니 이걸 나눠보면 되겠구나.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글을 쓰면서 어색하기도 했지만, 곧 적응이 되었다.


생산자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정말 기쁜 시기였다. 내가 쓴 글의 키워드로 모르는 사람이 검색해서 들어오고, 그에 따라 조회수가 나온다니. 곧이어 작지만 광고 수익도 받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구나. 그런 감격스러운 마음에 슬며시 작가를 꿈꿨다.


다음으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글을 쓸 수 있는 작가 타이틀을 얻었다. 몇 개월의 연재를 하며 네 번의 이직을 하며 직접 터득한 업무 노하우와 이직 방법을 엮어서 브런치 북을 발행했다. 심혈을 기울여서 글을 쓴 덕분일까. 난생처음으로 작은 기업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브런치 북을 보고 회사와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계속 글에 집중했으면 좋았을 텐데, 글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영상에 도전했다. 난생처음으로 내가 말하는 걸 촬영해 봤다. 답답하지만 편집도 배워가면서 영상 하나를 만들고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영상을 만드는 시간은 글을 쓰는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들지만, 언젠가 유튜브도 수익화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에 꾸역꾸역 유튜브도 같이 운영했다.


블로그, 브런치, 유튜브라는 세 개의 채널을 운영하며 정말 많은 아웃풋을 만들었다. 커리어라는 주제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내용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다른 주제도 다뤘다. 자기 계발, 독서 투자, 살림, 육아 등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다.


4년 간의 열정적인 도전의 결과는 어땠을까.


수많은 글과 영상이 남았지만, 자신감은 더 떨어졌다. 중간중간 콘텐츠 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부업이나 투자에도 기웃거리면서 방향성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제는 뭘 해도 힘들기만 하고 결과는 안 나올 것 같아 무기력에 빠져버렸다.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 이상 회사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상태가 되었다.


처음 시작했던 회사 밖에서의 도전과 열정은 사그라들고, 답답함이 남았다.


아 이제 나는 회사 밖에서도 성공할 수 없는 존재구나.


경계선에 선 주변인이 목적을 찾다


이제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직장 안에서는 애매한 커리어가

직장 에서는 실패한 도전이 남았다.


직장 안에서의 경험은 이제 다 나눈 것 같은데, 여기서 더 뭘 해야 하는 걸까

직장 밖에서의 성공 노하우는 마땅히 없는데. 실패 기록이라도 이야기해야 하는 건가

이런 답답함이 극에 달했을 때 묘안이 하나 떠올랐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면, 양쪽을 함께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


최근 유행하는 경제적 자유라는 키워드는 많은 직장인들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회사 안은 답이 없고 회사 밖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매력적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를 내려두고 투자나 SNS, 부업 등에 매진했다.


SNS에서 직장 안과 밖 모두 성공한 직장인들을 더 자주 보게 되지만, 현실적으로 어떤가. 성공한 사람은 소수다. 직장 밖은커녕 직장에 자리 잡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양극화 속에서 직장인은 행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관점을 바꿔보고 싶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실천할 수 있는 성장법이 있다.


직장에서의 안정감을 유지하면서, 괴롭지 않게 회사 밖 도전을 할 수 있다.


회사를 활용하면서 꾸준한 성장을 만들 수 있다.


숱한 커리어 방황과 직장 밖의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며 찾은 나만의 사명이다.  


매일 직장 안과 밖을 들락거리며, 현실적인 기회를 만드는 여정을 나눠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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