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절생존본능도마뱀색
작년 여름, 필리핀 모알보알에 갔을 때입니다.
햇살이 가득한 정오 무렵, 숙소 벽과 나뭇가지, 식당에서 벽에 붙어 재빠르게 기어 다니는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도마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이들은 "귀여워!, 무서워!"를 외쳤고, 가족 모두가 그 움직임에 흥미로워하며 한참을 쳐다보았지요. 작고 투명한 피부, 연한 갈색에 햇살을 머금은 듯한 윤기. 그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도마뱀 찾기로 관찰력이 좋아진 것 같아요.
햇살 가득한 바위 위를 스르륵 기어가는 작은 도마뱀. 그 몸은 자연 그대로 빌려온 듯, 녹색과 갈색, 때로는 청색의 얼룩이 반짝이며 빛납니다. 이들의 몸빛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위장 수단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경고의 메시지가 되기도 합니다.
도마뱀은 주로 주변 환경과 비슷한 색을 띱니다. 갈색 흙 위에선 갈색 등, 초록 수풀에선 녹색빛을 띠는 것은 자신을 감추기 위한 ‘위장’의 색입니다. 어떤 종은 꼬리만 유난히 파랗거나 붉은데, 이는 포식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장치입니다. 몸 대신 꼬리를 공격하게 만들어, 그 순간 도망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도마뱀은 바로 ‘한국도마뱀'(Takydromus amurensis)입니다. 이 도마뱀은 몸길이가 약 20cm 내외이며, 꼬리가 길고 가늘며 움직임이 매우 빠릅니다.
어린 개체는 꼬리가 선명한 파란색을 띠는데, 이는 포식자의 주의를 끌어 몸통을 보호하는 생존 전략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꼬리의 푸른빛은 점차 사라지고, 몸 전체가 녹갈색 또는 회갈색 계열로 변합니다. 이 색 변화는 성장과 함께 위장 효과를 높이기 위한 진화적 적응입니다.
도마뱀은 햇빛, 온도, 호르몬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기분, 환경, 스트레스 수준에 따라도 색이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포식자에게 잡힐 위기에 처하면 꼬리를 스스로 끊는 능력, ‘자가절단(自切)‘사용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꼬리가 아무 때나 잘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매우 정밀하게 조절된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미국 뉴욕대 아부다비 캠퍼스의 송용억 교수 연구진은 도마뱀 꼬리의 자절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밝혔습니다. 도마뱀 꼬리는 마디마다 끊어지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는데, 각 마디의 단면 둘레에 여덟 개의 원뿔 모양 쐐기 구조가 있으며, 이는 마치 퍼즐 조각처럼 앞마디의 구멍에 정교하게 끼워져 있습니다. 천적을 만나 급박한 상황이 되면 쐐기들이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면서 꼬리가 잘리게 되는 것이지요.
쐐기 표면에는 버섯 모양의 미세 돌기들이 무수히 분포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돌기들이 맞물리는 홈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고정된다고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홈 없이도 접착력과 해제력을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로 인해 도마뱀은 위기 상황에서는 빠르게 꼬리를 자르고, 평소에는 단단히 붙잡고 있는 꼬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셈입니다.
꼬리는 도마뱀 몸에서 떨어진 후에도 일정 시간 꿈틀거립니다. 이 움직임은 마치 ‘가짜 생명’처럼 포식자의 관심을 끌고, 도마뱀 본체는 그 틈에 재빨리 도망칠 수 있습니다. 기이한 생존 본능은 한순간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생명을 지키는 데 집중하는 전략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무언가를 버려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것은 관계일 수도, 실패한 꿈일 수도, 혹은 지나간 나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도마뱀이 꼬리를 남기고 도망치듯, 때로는 과감한 이별이 생존의 지혜가 됩니다.
작고 귀엽지만, 놀라면 너무나도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도마뱀. 아이들의 눈에는 장난감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위협을 감지하면 망설이지 않고 자기 일부를 던져버리는 지혜.
그 모습은 마치 우리 삶의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생존은 때때로 손실을 선택하는 일이다.
살아남는 자가 결국 이긴다. - 무명의 지혜 -
도마뱀이 알려줍니다.
생존은 두려움 속의 도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용기라고.
당신은 지금 어떤 색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위장을 위한 갈색인가요,
혹은 경고를 위한 푸른 꼬리인가요?
도마뱀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모든 색은 생존의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오늘도 자연에서 생존의 색을 배웁니다.
그리고 때때로 남기고 가야 할 지혜를 묵묵히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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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및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