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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Jun 09. 2022

내가 그리웠던 건

그곳에 있던 온기

여름밤에 화장실 가기 무섭다며 징징 거리며 할머니 손을 잡고 나가서 문을 활짝 열고 소변을 보던 그 화장실,

빨랫줄 위에 앉아있는 가을 잠자리를 잡고 놀던 감나무에 아직도 묶여 있는 빨랫줄.

차가운 겨울밤 공기를 마시며 시커먼 하늘 속 별빛을 바라보며 즐기던 마루,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깔아놓은 두툼한 이불 밑으로 들어가 한겨울에도 땀을 흘리며 잤던 작은 방.

놀러 오면 매일같이 집에 있던 뗏목을 태우며 놀던 아궁이.


그 아궁이 위쪽은 벽 한쪽이 무너져내려 빈 공간이 생겼고 무너진 벽을 타고 시선이 위로 향하니 그 오랜 세월 동안 온기를 지폈던 새카만 흔적이 무섭기까지 했다.

마당에 우리 아들 키만큼 자라난 무성한 잡초들과 외삼촌이 버리듯 쌓아놓은 비료 더미와 물탱크.


시선이 닿는 곳마다 현실과 20여 년 전을 빠르게 오가며 추억과 현실의 서글픔이 맞닿았다.  

유학 가 있는 동안 종종 꿈꾸며 그리던 할머니 집.

이곳에 다시 오면 그 추억이 반갑게 기다려줄 것만 같았다.

그저 그 장소에 가보는 것만으로도 가고 싶던 여행지를 가는 것 마냥 즐거울 줄 알았다.


할머니 집 문을 들어서면서 없는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내 기억 속에서는 "아이고~~ 장미 왔나!!" 하며 내게 다가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내 눈에는 무성히 자란 잡초와 굳게 닫혀있는 할머니 집이,

이내 바라고 바라던 장소에 도착한 내게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오게 하였다.


이모와 엄마는 가끔 오면서도 정리도 제대로 안 하는 오빠를 구시렁거리며 욕하면서 마루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엄마 고향 친구와 만나 잠시 이야기를 하고 이내 잠겨있는 문을 열지 못해 큰 집으로 이동하고는 내게 남은 짐을 챙겨 오라고 했다.


혼자 남아 할머니의 온기를 느껴보려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그곳에 홀로 서서 여기저리를 돌아볼수록 빗방울에 젖은 다리부터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눈에 담으려 이곳저곳을 훑어보고,

잊지 않으려 추억을 다시 곰곰이 상기시켜보고는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발걸음이 내 떨어지지 않아서 한번 지켜보고 한발,

다시 한번 둘러보고 또 한발,


그렇게 대문 쪽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데 뒷집 할머니가 엄마 이름을 부르며 더 젊어졌다며 말을 걸어왔다.

산 사람에 의해 그나마 대문 밖으로 종종 걸어 나와 이야기를 하고는 또 뒤돌아보고 있자니

이번에 옆집 할머니가 말을 걸어주셨다.

그 집 딸내미 하나 있지 않나 하고

"우리 집에 아들 하나 있어요~!" 하자

의아한 표정으로 아닌데 딸인데 라는 눈빛을 보내셨다.

이내 나를 가리켜 의미한 말임을 깨닫고

"그 딸내미가 저입니다.^^ 놀러 왔는데 아무래도 못 있을 것 같아 큰집으로 가려고요."

"ㅎㅎㅎ 그래 잘 컸다. "


누가 봐도 똑 닮은 엄마의 모습을 하고는 간신히 빠져나온 추억의 늪 앞에 서서 한동안 내리는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차에 시동을 걸고 언제나 마중 나와서 용돈을 주시던 그 모퉁이를 돌아 큰집으로 운전해갔다.


그리고는 큰집 앞에 잠시 멈춘 차 안에서 비와 같이 눈물을 흘리고는

나는 할머니와 놀던 그 집이 아닌, 할머니가 그리웠던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시선이 닿은 곳에 있는 어릴 적 나와 할머니 같은 현재의 모습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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