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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Nov 13. 2023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사람은 참 자기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고 살아가는 게 신기하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내가 아닌 것이 나는 내가 아닌 건가?

내가 나라면 나를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꼭 스투트가르트대학 수학과 입문 첫 시간에 1+1=2를 증명하는 문제와 비슷한 난관에 봉착한 느낌이다.


나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의 눈이라는 거울에 비쳤을 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알기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내 케케묵은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부드러운 언어를 통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혹은 집에 설치해 놓은 비디오를 돌려보는 판독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알아채기 어려운 것 같다.


남의 허물은 쉽게 보이는데 왜 나의 허물은 지적을 당해도 알아채기 어려운 것인지

나 스스로도 그렇겠지만 같이 사는 사람을 보며 더더욱 강하게 느낀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농담 삼아했던 이야기가 있다.

"장미야, 얼굴에 더러운 먼지가 묻은 사람하고, 깨끗한 사람하고 둘만 있다면 둘 중에 누가 씻으러 갈 것 같아?"

"당연히 더러운 사람이 씻으러 가는 거 아니야?"

"땡! 깨끗한 사람이지~!"

"왜??"

"서로를 보고 깨끗한 사람은 내 얼굴에도 먼지가 묻었나 하고 씻으러 가고, 먼지가 묻은 사람은 오히려 본인이 깨끗한 줄 알고 씻으러 가지 않지~! 그러니까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고 나 자신을 살필 수 있어."

라고 말이다.

 

그때 당시에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던 이야기가

최근 들어 인간에게는 서로가 거울이 되는구나를 배워가고 있다.


어제 오랜만에 남편이 차 안에서 뱃속부터 나오는 소리를 질렀다.

오랜만에 발생한 쓸데없는 감정싸움이었다.

내용은 별것 아니었다. 나중에 뒤돌아 보면 분명 "그냥 말로 그냥 하면 될 것을,,"이라고 생각할만한 건수였다. 그 모든 사소한 싸움들이 그렇듯이..


내 안에 쌓여있는 케케묵은 오랜 감정과 무의식 저편에 쌓여있는 내 안의 어떠한 감정이 피곤한 몸과 투사시킬 대상을 통해 여과 없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본인은 그저 내가 말을 들어주지 않고 어떠한 지시적인 말투가 본인을 화나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는 모습은 이전부터 억눌려온 지시적인 말투의 혐오가 인생 30년 중반즈음에 만난 나에게 몰려 지시적인 말투를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본인은 그것을 모르는 듯했다.


나 또한 그랬다. 딴에는 오해를 풀려고 내 의견은 그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하다고 설명을 했다고는 하지만 남편이 보는 나의 모습에는 거만한 자세와 태도가 묻어있다고 했다. 곱게 커서 어디 가서 져본 적 없는 콧대 높은 오이디푸스기의 딸내미정도, 딱 심리상담 선생님이 짚어준 그 내용 그대로를 나에게 적용시킨 듯했다.

인정하는 부분이라 몇 차례 사과하긴 했지만 그 사과 또한 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애써 이해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상관계에 있어서 나는 할 도리를 하고 마쳤으니, 그 상황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상대의 몫이다.


그렇게 찝찝한 사과를 마치고 차에서 내려 집에 오니 역시나 남편은 기분이 태도가 되어 나나 아들에게 싸늘한 공기를 마구 뿜어댔고 언제나 그렇듯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밖으로 나가거나 방 한 구석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아들 케어와 집안일은 나의 몫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아이 어릴 때부터 남편은 기분이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아 가족에게 뿜어내기 일쑤였고 나는 그것을 티 나지 않게 보호막을 치듯 속으로는 부글부글 용암이 끓고 있어도 언제나 더 밝은 모습으로 아들을 대하다 보면 어쩔 때는 아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그 용암이 식고는 했다. 이미 몸이 피곤해서 드러눕고 싶어도 전시상황처럼 그런 싸한 분위기의 집안에서는 오히려 에너지를 더 끌어내게 되었다.


날이 너무 추워 다른 방에서 자려는 남편에게 그래도 들어가 안방에서 같이 자자고 하니 남편이 됐다고 했다.

"너와 아들 사이에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여.."라며 쭈글쭈글해져서는 외롭다고 했다. 본인이 밖에 나가 환기시킬 동안에 개어놓은 빨래를 저 구석에 밀어놓고 누워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동안 서러움이 물밀듯 쳐 밀려왔다.

그동안 열받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자신의 기분이나 삭인 동안 그 속에 끓는 듯한 용암을 참고 나머지 집안일과 육아를 쳐냈던 내 모습은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임이 확실하구나!

나는 그렇게 싸우고 나서 기계처럼 기분이 방실방실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본인의 서러움밖에는 안보인 것일까? 예상대로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고 확신을 내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면에서 나오는 그러한 마음들이 스스로를 많이 불편하게 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짠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들어가서 해결해 주기는 힘든 부분이었다. 특히나 강한 투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배우자라는 역할이 말이다. 기다려주는 것이 옳아 보였다.


나의 입장을 겨우겨우 감정을 배제한 언어로 표현하고는 자리로 돌아와서 이제는 정말 그 누구에게도 기대를 하지 않아야 내가 행복하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내면이 성숙한 배우자, 너그러운 부모, 믿음직한 남편, 더 나아가서는 우리 부모나 내 주변의 친밀한 인격체에게 내가 기대를 하는 순간 바라게 되고, 그것이 어그러질 때의 실망감은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참 본인이 여태껏 어떻게 해왔는지는 모른 채 남탓하기 쉬운 존재임을 다시금 느꼈다.  나 또한 그렇지 않은지 다시금 찬찬히 스스로를 살피며 그 누구에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보상구조를 단단하게 세워나가야 하겠다.


남의 똥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묻은 똥을 닦아주고 내 겨를 털어낼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해 보자.




#다른사람과같이사는것은참힘들어  

#그래도남편아잘살아보자

#내가똥묻은개가아니길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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