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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Mar 08. 2023

울라고 눈 찌르는데 울어야지, 뭐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사람은 기억으로 산다


원래는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는데 <더 웨일> GV 갔다가 민용준 기자님께서 이 영화에 대해 쓰신 글을 읽고 호기심이 발동해 관람하게 되었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의외로, 일본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조용하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데, 관람층의 대부분이 십대라는 것이다. 글을 보다가 든 생각은 아 정말, 사랑이 궁금하고 실은 가장 사랑의 본질에 가까운 날것의 사랑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있는 지금 사람들이 볼 영화나 드라마가 정말 없긴 없겠구나.


주인공이 외계인이거나 도깨비이거나 시간 여행을 하고 있어서 사랑에 제약이 있거나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미디어에서 접할 기회가 이들에게 생각보다 흔치 않구나. 


넷플릭스를 켜면 저 멀리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나라까지 가서 각종 약물 범죄를 저지르는 아저씨들과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는 사이코 변태나, 근육 키워서 힘자랑하거나 전혀 이입되거나 설레지 않을지도 모를 연애를 전시하는 나이 든 일반인만이 등장하는데 십대 입장에서는 사랑을 글이나 영화로 배우는 일도 쉽지 않을 실정이다. 아, 물론 이 영화에도 말도 안 되는 설정은 등장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감상적이거나 오글대는 것이 점점 용인되지 않고 낭만을 옛날 아저씨들의 전유물 취급하는 쿨한 세상에 가끔가다 세속에 찌든 마음 식힐 지고지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물이 한 두 개쯤은 있어줘야 하지 않느냔 말이야. 그렇다고 이 영화가 뭐 그런 면에서 엄청 훌륭한 영화라고 볼 수도 없기는 하지만 뭐, 울라고 눈을 찌르다 못해 꼬집고 쑤셔 파는데 뭐 울어야지 별 다른 방도가 없기는 했다. 



여기, 잠들었다 깨어나면 3년 전 사고 이후에 생성된 모든 기억이 포맷되는 여자가 있다.

(영화 유튜버 식 두서......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자고 나면 전날의 기억에 대해 잊는 '선행성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는 마오리는 자신에게 고백해 온 토루와 장난스럽게 전시 연애를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서로에 대한 마음이 짙어지면서 지워지는 기억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까 두려워하게 되고, 관계에 슬픔이 찾아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는 하루로 휘발될 기억일지라도, 오늘 하루 상대에게 행복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기 때문에 상대가 좋아하던 머리핀을 사고, 예쁜 말을 건네는 노력이 난무한데, 나는 역으로 사람의 사랑은 기억이 전제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구나,라는 생각만 했다. 물론 그래서 사람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필수적인 '기억'메커니즘에 장애를 입게 된 상황이 된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게 더 슬펐고, 나중에 함께 있던 이미지들(기억)에서 죽은 토루가 지워져 가는 일차원적인 장면에서는 '이런 치트키를 쓰다니......' 하며 영화관 의자가 들썩이지 않도록 숨을 참았다.  


사람은 기억으로 산다. 기억으로 사랑하고 기억으로 슬퍼하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괴물로 남고 싶지 않아 이별할 때 착한 척하고 누군가의 기억에 남기 위해 오늘 열심히 공부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아도 그 사람의 기억을 언제든 재생하며 그 사람이 나에게 준 영향력 아래 있다면 아주 미약한 일정 부분 여전히 같이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누군가와 육체적으로 함께 있는데 그 사람과의 기억이 없다면 호감이 있다 해도 매일이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잖아. 정려원(삼순이 현남친의 전여친)은 '추억은 아무 힘이 없다'라고 했는데, 추억은 힘 그 자체인 거라고.

약물과 사기와 선정성으로 무장한 넷플릭스를 비롯, 사랑을 꿈꾸게 놔두지 않는 미디어 속에서 그나마 명맥을 이으려고 애쓰는 로맨스 영화 속에는 간직할 수 없는 추억과 희귀병과 비인간(도깨비, 외계인 등) 같은, 사랑의 제약이 가득하다. 그냥 평범한 남녀가 만나서 위대하게 사랑하고 행복해지고 자아발전을 하는 이야기에서는 말할 에피소드가 없으니까?제약 속에서도 꽃피는 사랑의 위대함을 말하고 싶으니까?

로맨스물 속에서도 요즘 유행하는 양자역학 설정들에 따르면(로맨스물이야말로 양자역학과 궁합이 찰떡이다. 내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루지 못한 어려운 현실세계의 사랑을, 어느 우주에서의 나는 제약을 극복하여 이루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싶은 마음은 많으니까) 어딘가에서 토루와 마오리는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토루가 엄마의 병을 이어받지 않기 위해 건강검진과 운동을 꾸준히 했다거나 마오리가 어떤 나비효과와 우연으로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면 두 사람이 만나지 않았을 우주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상당 부분이 기억에서 기인하는 거라고 한다면, 고통스러운 이별 후에는 그 기억만 없으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거 아닌가 하는 면에서는 <이터널 선샤인>도 연상된다. 이터널 선샤인과 이 영화에 모두 나오는 비슷한 개념은 '절차기억'이라고 불리는 체득과 습관 같은 건데, 뇌가 잊은 대신 몸이 기억(그것도 운동능력을 관장하는 뇌의 어떤 부분이겠지만, 다친 뇌의 부위와 다른 곳인 것 같다)하는 어떤 본능적인 부분인 거다. 영화에서 보통 이것은 이론적이고 후천적 노력 같은 부분인 기억 대신 좀 더 본능적이고 사랑의 본질에 가까운 무엇처럼 그려진다. 그런 맥락에서 삼순이 현남친의 전여친은 "추억은 아무 힘이 없어"라고 했을 거고.


완벽하게 성료되고, 잘 기록되어야 진짜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진 진짜 사랑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단 하루, 내일이면 상대의 기억에 남지 않을 걸 알면서도 오늘 이 사람이 좋아할 꽃을 사고, 밤하늘을 수놓는 꽃을 보러 나서는 것, 본능적인 게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깝고 리워드나 쌓여가는 무엇이 없어도 그냥 지금의 이 어떤 것, 그거면 됐다는 게 진짜 마음인 거라는 걸 십대놈들은 더 잘 느낄 수 있나 보다. 웃음을 참으며 내려간 입꼬리로 다정하고 해사하게 피식거리며 무조건 늘 눈앞에 있어주려고 하는 깡마른 남자아이를 꿈꾸게 해주는 이런 영화도 그래서 요즘 세상에는 필요한 게 아닌지.  

 

모든 관계는 권태기에 접어든다. 익숙함에 당연해지고 쌓인 기억의 무게만큼 무덤덤해지는 게 상대방의 매력인데, 켜켜이 쌓인 기억의 흙탕물 안에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본다거나 물에 비친 하늘 속 별을 찾는 그런 작은 행동들이, 매일 포맷되는 불행을 피한 대신 늙고 오래된 우리가 기울여야 할 노력일까 싶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영화였는데, 사고도 당하지 않고 기억력이 희미해져 더 이상은 무리다요. 일기장에 글을 가득 적고 벽에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놓은 채 잠드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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