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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Aug 05. 2024

루틴이란,시간에 닳아가는 모든 것에 저항하기 위한 반복

빔벤더스, 퍼펙트 데이즈



형님, 행복 루틴 좀 공유해 주시렵니까?


빔 벤더스는 '한 번은'이라는 사진집을 낸 적이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함을 남기기 위한 무언가라고, 빔벤더스가 그 책에 썼거나 내가 책을 읽고 어딘가에 글을 쌌던 적어두었던 게 대충 기억난다.


"뭐든 변하지 좀 않을 순 없는 거냐"는 술집 주인의 말. 사람은 시간에 닳아가는 그 모든 것에 저항하는 의미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걸 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 비슷해 보이는 하루들의 모양도 서로 같을 수는 없다. 히라야마가 매일 콧수염을 가위로 다듬지만 전기면도기는 이틀에 한 번 돌리고, 하루 한 개 뽑아먹는 커피가 예측하지 못한 손님이나 갑자기 겪는 피로 때문에 두 개가 되는 것처럼. 딱 그날과 그 시간에만 볼 수 있는 빛그림자(코모레비)처럼, 얼핏 매일 똑같아 보이는 하루도 다시는 똑같을 수 없고 같은 날들의 반복도 길어지면 무언가 사라지고 언젠가 변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의 모양은 같은 장소 같은 나무 아래서도 매일 다르고 어느 날 어느 시의 그 햇살과 나뭇잎 그림자는 다시는 같지 않으니 그는 셔터를 누른다. 


루틴이란 필멸자인 인간이 그 유한함에 저항하기 위한 몸짓인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뿐인 순간들을 아날로그 카메라로 담아 현상하고 박스에 담아 매년 차곡차곡 쌓아두는 히라야마는 어쩌면 무의식 중에 유한함에 저항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 번뿐인 순간을 붙잡아서 저장해 둠으로써 말이다.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의 모양은 같은 장소 같은 나무 아래서도 매일 다르고 어느 날 어느 시의 그 햇살과 나뭇잎 그림자는 다시는 같지 않으니 그는 셔터를 누른다


삶은 언제든 반드시 끝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가 늘 해오던 것을 반복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소멸에 저항하는 무의식적 몸짓 - 죽음아 아무리 네가 피할 수 없이 외길 끝에 서 있다고 해봐라. 내가 그게 두려워서 내 생을 허무하게 보낼 것 같으냐. 나는 반복함으로써 하루를 길게 쓰고, 이 쌓인 반복으로 나를 연마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사라지기 전까지는 매일 나를 업그레이드하며, 마치 이 반복이 영원할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 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종종 루틴에 대해 우습게 여기기 쉽다. 타고난 머리나 재능이 없는 사람들의 전유물 같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공부 좀 했다고 야단스레 떠드는 프로배움러들 중 실제로 무언가를 확실히 쌓아내는 사람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건하게 조금은 집착적으로 자신의 생활방식을 확고히 고수하는 사람을 보면 요즘 나는 경탄한다. 그것은 마치 기간제로 짧고 굵게 살아있는 존재만이 할 수 있는 경건한 의식과도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매일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시간에 닳아 없어지는 어떤 것을 잃는 과정을 서서히 진행되게 해 줌으로써 '영원한 건 없다'는 개념을 삶에서 흐리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매일 회사를 다니면 매일 회사일이 루틴으로 반복되므로 그 회사가 쇠락해서 망하거나 상징적인 무엇이 크게 변하더라도 어떤 루틴은 지속되고 있을 테니 상대적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다가 소식을 듣는 것보다 완충이 될 것이다. 삶의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태어난 아파트촌이 헐리고 삐까번쩍한 새 아파트가 들어오기까지도 루틴이 반복되던 중에 생기면 그렇게까지 갑작스럽지는 않다. 


루틴은 인간의 유한함을 달래준다. 시간에 닳는 것들을 목격함으로써 죽음에 가까이 가는 체감을, 매일 되풀이 되는 것들(너무 길게 되풀이되면 마치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을 대신 보여줘 둔화시켜 준다. 루틴은 매일을 똑같이 만들어, 내일 눈을 뜨면 죽음 대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소멸'이라는 개념을 흐리게 지워준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 삶에서 난폭하게 소멸해가는 소중한 것에 대한 상실감에 도무지 저항할 도리가 없게 될 것이다.


수면 중의 잔상과 강물에 반사되는 네온사인은 '밤의 코모레비'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지점은 밤윤슬과 밤의 잔상이다. 


밤윤슬은 그냥 내가 붙인 이름인데, 이 영화에서 성심껏 보여주는 밤의 코모레비라고 해야겠다. "코모레비는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밤의 장면들에서 강물에 반짝반짝 일렁이며 반사되는 네온사인은 지나치게 길게 강조되는데,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코모레비'가 밤에도 다른 형태로 지속됨을 표현하려던 의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이 돌아다니며 활동할 때 보게 되는 이 밤과 낮의 코모레비뿐 아니라, 신체의 전원을 끄고 눈을 감는 순간 감은 눈 안쪽으로 어룽지는 낮의 시청각 정보들 역시 무의식 세계에서 펼쳐지는 코모레비처럼 보인다. 하루동안 본 정보들 중 필요 없는 정보가 수면 중에 씻겨나가고 치유되는 과정들도 인간의 중요한 루틴이다. 수면 중의 코모레비. 놓치고 싶지 않아도 떠내려가는 기억과,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도 모두 동등하게 잊히는 이러한 밤과 무의식의 과정을 이 영화는 참 아름답게 그려냈다. 무슨 일인지 세상의 중심부에서 태어났던 것 같은 히라야마가 자신이 난 곳을 의식적으로 떠나 전혀 다른 단순한 일과를 매일 반복하는 것은, 이렇게 매일매일 필요 없는 것을 그저 떠내려 보내기 위함이기도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아름다운 순간을 캡처해 두는 행위와 반대로.     


속세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그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다른 사람에게 우악스럽게 다가가지 않고 거리를 지켜주는 매너, 하지만 사실 여러 차례 보여주는 다정함 등을 보며 대충 그의 전사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행복루틴 아재의 하루는 이렇게 달콤하게 완벽하다. 가끔 속세에 두고 온 것들이 찾아오기는 하지만(서사가 거의 표현되지 않음에도 배우들 표정만 보고 같이 울었다. 이렇게 여백을 남기는 표현이 너무 좋고 나는 이럴 때가 마치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들이 보여주는 순간들 같음) 현관문을 나서기 전 집어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정해둔 작은 규칙들을 지키며 하루의 과업을 하고 돌아와 좋아하는 것을 읽다 잠드는 일과. 


형님, 행복 루틴 좀 공유해 주시렵니까?



이렇게 적당히 본척만척 모른 척하다가 딱 살 때만 친절하고 딱 필요한 주제로만 얘기하는 사장님. 내향인을 자주 상대하시는 업종에 계신 사장님들께서 필히 보셔야 한다.
대국이 시작되었습니다.
누워서 책 보다 무너지는 팔 각도에 깼다가 까무룩 다시 잠들다 또 깼다 에라이 하고 책 내던지고 불 끄는 공통 루틴도 국룰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덧. 너무 오랜만에 듣는 루리드의 퍼펙트 데이, 부블레 말고 니나 시모네의 필링 굿, OST의 적재적소 사용도 가슴을 울릴 만 하다. 동 시기에 개봉한 영화 중 Feeling good 이 엔딩곡인 영화가 신기하게도 한 편 더 있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 번째 날'도 필링 굿으로 끝난다. 음악이 아주 중요한 가중치를 차지하는 내용으로. 후자는 마이클 부블레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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