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가 주는 공포_SF밀실호러 고전
이벤트 호라이즌(1997)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에는 아마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 무지에 의해 내리는 잘못된 판단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1997년, 정확히 20년 전에 나온 SF 호러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 떠올랐는데 왜라고 정확하게 꼬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공포영화보다 공포소설이나 구술을 통해 듣는 귀신 이야기가 훨씬 무서운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아마 '상상력을 허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내면에 각자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데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귀신, 사후세계(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죽음의 공포), 자신이 저지른 과오 등이 되살아 나 들은 이야기와 융합하며 각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이미지를 새로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이 영화와 샤이닝의 공통점이 그 점인 것 같다. 두 영화는 모두 마치 소설처럼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공포를 극대화한다.
시각적으로도 좀 고어 한 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크루 각자의 트라우마에 기반한 환영들은 하나같이 유혈 낭자, 잔인하고, 중반 이후 변해버린 샘 닐의 몰골은 매우 흉악하여 차마 눈뜨고 보기가 어렵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쥬라기(쥐라기) 공원의 듬직한 그랜트 박사님이...... 미쳐서 사라져버리셨다.
폭설과 지리 상 어려운 접근성으로 고립된 오버룩 호텔이나, 우주라서 고립된 이벤트 호라이즌호나, 밀실 공포 및 기타 유사 장르 영화에는 많은 영감과 영향을 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이 많으실 듯하여 가장 덜 유혈 낭자하고 약한 사진 정도만 넣어봤다. 환영을 보며 미쳐 가다가, 우주선 압력조절장치를 해제하며 자살각으로 가던 어린이.
그러니까 이들은 서기 2040년, 광속보다 빨리 우주를 탐험하다가 실종된 이벤트 호라이즌을 수색하러 가는 길이었다. 해왕성 부근에서 이벤트 호라이즌을 발견하고 생명 신호를 스캔해보지만 마치 우주선 전체가 살아있는 듯 이상한 생명 신호만이 잡힐 뿐이었다. "어려운 방법으로 간다. 덱 바이 덱, 룸 바이 룸." 젊은 시절 모피어스가 간지나게 명령하고, 크루들은 이벤트 호라이즌호를 직접 수색하는데, 이 와중에 이 안에서 모두 각자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며 미쳐간다.
"Hell is just a word. The reality is much, much worse"
지옥은 단지 어휘일 뿐이야. 실체는 더, 더 끔찍하지.
영화 속 이벤트 호라이즌 호는 지옥, 악, 내면의 트라우마처럼 형체 없는 미지의 대상과 최후의 미개척지 우주를 엮어서 '모르는 것이 주는 공포'를 형상화한다. 이렇게나 이런 구조의 호러에 익숙한데도, 세기말, 무려 20년 전에 나온 영화인데도 굉장히 긴장되고 무섭다.
만약 집중해서 본다면 공포도로는 비교할 영화가 드물 만큼 꽤 무서운 영화다. 장면도 유혈 낭자 무섭지만, 미지의 환경에 함께 서서히 노출되게끔 하는 몰입도가 좋고, 무의식 속 내면의 근원적 공포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소설처럼 공백을 남겨 상상하게 만든다.
물론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트라우마들의 비주얼이나 전후 맥락도 굉장히 공포스럽기는 하다. 어리고 감수성 풍부할 때, 흉한 비주얼에 역치가 낮을 때 보면 약간 트라우마 생길 것 같은 비주얼. 놀라게 하는 타이밍과 낚는 타이밍도 매우......고전적이지만 현대에서 보아도 볼 만은 하다.
많은 후대 SF 호러 영화에 영감을 주었을 것 같은 영화. 시공간을 초월하는 워프에 대한 개념 설명 장면은 '인터스텔라'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는 사실 악평도 많이 쏟아졌는데, 결론쯤 가면 약간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기는 한 것 같다.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 이런 장르 영화는 특수효과나 스토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긴장을 고조시키고 어떻게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혹평들에 그리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초반 샘 닐의 면도 신이 주는 긴장감부터 시작해서, 크루들이 서서히 미치기 시작해서 긴장이 절정으로 고조될 때까지, 영리하게 들쭉날쭉 긴장도를 높여간다.
공포를 주는 방식이 샤이닝과 비슷하다. 샤이닝의 원작자이자 다작 킹인 스티븐 킹의 호러소설에 대해 미국의 한 만화에서는 "스탠드가 유령이 되는 식의 공포 이야기"라며 유머러스하게 디스 하기도 했는데, 이 할저씨의 소설은 밤에 방에서 불을 끄고 보면 모든 주변 사물이 유령처럼 보일 여지가 있는, 그런 관점에서 무섭다. 어린아이들이 무한히 황당한 상상력을 펼치듯 익숙한 주변 사물에 무서운 스토리가 얽힐 때. 익숙하고 실체가 있는 것에 실체가 없는 어떤 것을 상상으로 연관시켜 붙여 넣었는데 그 상상이 무의식중에 평소 두려움을 느끼는 어떤 것을 반영할 때, 이미 아는데 정확히 모르는 어떤 것을 두려워할 때.
옛 영화라서 비지엠도 굉장히 교향곡인데, 이것이 그 시대에는 어떤 감성이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고딕풍 우주선과 어우러져 공포감을 굉장히 더 배가시키는 효과를 낸다.
그랜트 박사도 젊디젊은 모피어스도 좋다. 고딕풍 디자인의 우주선도 파격적이다.
누군가 예전에 나에게 이벤트 호라이즌과 블레이드 러너, 메멘토를 안 보았으며 결론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부러움을 표시하며 안 본 뇌를 사고 싶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래 그럴만한 가치가 있구나 싶은 영화였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