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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알유 Nov 18. 2020

소녀-3

이복형제들은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그중 큰 오빠와 나의 나이차는 15살이나 난다.

큰 오빠는 6번의 낙방 끝에

칠수를 했을 때 아버지가 만족할만한 대학을 들어가기 힘들었고

결국 모 대학의 운동장을 지원해주면서 입학했다.

소위 말하는 잔디 깔고 대학 간 셈이다. 

오래 공부한 만큼 내 기억에 계속 공부하고 있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입김으로 중앙부처에서 관료로 일을 했다.

관세 관련된 일을 하고 있던 오빠에게 이제는 어엿한 과일 가게 사장이 된 

우리 집 뒷문과 맞닿아 살던 그 소녀가 오빠를 찾아왔다.

오빠와 소녀의 남편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시골에서 인근에 하나밖에 없는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것 이상으로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낸 죽마고우였다.

그가 그렇게 힘없이 관으로 돌아왔을 때, 

삼수를 하고 있던 오빠 역시 매우 슬퍼했고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 없는

자신을 비참하게 여겼다.


5급 관료가 된 오빠는 스스로 과일 장사를 해서 가게까지 차린

이 친구의 부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먼저 간 친구에 대한 마음을 전달하려 했다.

해외 열대 과일 수입 업체를 소개해주고 필요한 번역가,

관세 관련된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똑똑한 후배에게 부탁을 했다.

소개받은 사람들을 통해 복잡한 농식품 검역 서류를 도와줬다.

결국 몇 년에 걸친 계약을 통해서 이복오빠의 도움을 통해 그녀는 마침내 주요 열대 과일 수입권을 얻었다.

이제는 단순한 과일을 사람들한테 파는 것이 아닌

해외에서 과일을 수입해 와서 여러 소매상들에게 장사를 하는 대부가 되었다.


나의 친구이자 그녀의 첫째 아들인 동영은 90년대 부동산 투자를 성공으로 

강남에 회사 빌딩을 세우게 되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열대 과일의 50% 이상을 다루는 유통 상사가 되는

말 그대로 정말인지 기적적인 일을 생겼다. 

어엿한 한 기업의 회장이 되었지만 수많은 과일을 머리에 이고, 경찰을 피해 뛰고

섞지 않게 하려고 감싸고 하는 수많은 인고의 시간들이 

그녀를 걷지 못하게 했다.

자식들 뿐만 아니라 친척들과 손자, 손녀에게까지 경제적 여유를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냈지만 정작 그녀 본인은

노년을 휠체어에서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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