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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상 Nov 22. 2018

카가와현 여행-1/3

'한 입 먹어 보는 순간 미안해졌다, 몰라봐서.'

그러고 보니 혼자서 떠나는 일본은 오랜만이다. '14 ACL 세레소오사카vs포항스틸러스 원정 응원 간  마지막이다. 바보 같이 여권 만료된  뒤늦게 알아차려 갱신하는 사이 경기를 놓쳐 버렸다. 혼자 덴포잔 대관람차 안에서 오사카의 야경을 보며 이불킥을 했더랬다. 중요한 경기가 있다고 이번  번만 가게 해달라고 요구했던(당연히 거절 당함) 인천공항 사무실에서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자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일요일 아침이라 인천공항은 한산했다. 마치 지구에서 공룡이 멸종한 것처럼,   차서 떠들던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살짝 신기해하며 빠르게 게이트를 빠져나가 에어서울 좌석에 앉았다. 좌석이 널찍하고 깨끗해서 만족스러웠다. 저가항공이라 기내식이 안 나오는  흠이지만, 괜찮다.  우동으로 배를 채운다.
한참 자다 깨어 보니 비행기는 벌써 세토내해 위를 지나고 있다. 화면에서 에어서울 홍보 영상이 나오는 중이었다. 생각 없이 보다가 모델로 나오는 승무원들의 연기가 무척이나 낯간지러워서 '어우 이거 뭐지' 연발하며 손발을 비벼댔다.

극강의 오글거림



다카마쓰 공항을 나오니 오후 3시 반이었다. 출국장을 나오면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지방 공항이다. 리무진버스 창 밖으로 수확을 마친 밀밭이 펼쳐졌다. 사누끼 우동이 시작되는 무대다. 저 흙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그러다 흙냄새를 맡고 있는 내 모습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개를 저었다

호텔에 도착했는데 프런트의 직원이 영어를 할 줄 몰랐다.(응?) 체크인이 끝나고 우동투어 신청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당황을 한다. 작고 가녀린 그녀에게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곧 다른 직원이 와서 나랑 몇 마디 나누고 우동투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도와줬다. 무척이나 작은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일본어를 알아 들을 순 없지만 가벼운 예약을 하는데도 서로가 엄청나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대화를 하는 게 느껴졌다.

짐을 풀고 나왔다. 날도 제법 어둑어둑해졌다. 소도시라 그런지 일찍 문닫는 가게들이 많았다. 도착하면 가려던 몇 군데의 우동집이 있었다. 갔더니 문이 닫혀 있다. 어라? 다음 가게로 가니 그 곳도 역시 영업이 끝났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오후 2시면 문 닫는 가게들이 많다고 한다. 배가 고파서 살짝 현기증이 났다. 대충 걷다가 손님이 많아 보이는 술집에 그냥 들어갔다.

내가 간 곳은 후루사토(ふるさと)라는 곳이었다. 바에 앉아서 우선 나마비루와 함께 오징어사시미를 먼저 시켰다. 딱 봐도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다들 닭요리를 먹는 것 같길래 저것도 추가해 달라고 주문했다. 호네츠키도리(이 지역의 소울푸드라 불리는 닭요리다). 맥주를 홀짝이며 가게 내부를 둘러 보니 직원들의 R&R이 명확했다. 가게 앞에 서서 호객을 하는 할머니, 서빙을 받는 젊은 아가씨, 주방에서 설거지 및 보조를 하는 아저씨 그리고 닭을 굽는 (아마도 이 곳의 대장인 듯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중

'나 소싯적부터 이것만 구웠어'

라고 말할 것 같은 인상의 할아버지는 손놀림이 아주 자신감이 넘쳤는데 오래 전 읽은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이 생각날 정도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이윽고 주문한 호네츠키도리가 나왔다. 한 입 먹어보는 순간, 미안해졌다, 몰라봐서. 대단한 맛이었다. 무슨 양념을 뿌린 거지? 동네 사람들이 죄다 시켜 먹는 이유가 있었다.
난 주로 어떤 지역을 가면 그 지역의 대표음식을 먹는다. 가령 백암에 가서 순대를 먹지, 중국집을 찾진 않는다. 천성이 인색해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동만 먹으려던 내 계획이 초장부터 깨졌다.

뭐, 괜찮네.

닭 굽는 냄새와, 담배 연기와, 웃음기가 섞인 일본어로 가득찬 선술집을 빠져 나오니 밤이 깊었다. 인적 없는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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