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하고 확신에 차기보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게 된다.
생각이
한창 젊었을 때보다
조금 무뎌진듯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30대 썼던 글들을 보면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예리하고 날카롭다.
40대 후반을 향하는 지금
글들은 많이 무뎌졌다.
머리가 나빠지거나
생각이 흐려진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해
새롭게 정의 내리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대문이 아닐까?
이전 보다
무뎌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좀 더 부드럽고
온유해졌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에게 쉽지 않은 과제이고
삶이 내게 요구하는 것들은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며
살아갈수록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더 늘어가는
그런 상태이긴 하지만,
삶 자체가 이런
‘명확하지 않고 흐리멍덩한’
상태라는 것을
조금은 받아들이게 되었다랄까나.
야생마처럼 날뛰던
2-30대 때와는 달리
40 후반이 되어가는 지점에서는
나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진 것 같다.
혹자는 이것을 가리켜
‘지혜’라고 불렀던 것 같다.
한 때는
내 속에
모순적인 양가감정이
솟구치는 것에 대해
인정도 안될 뿐더러
답답함과 좌절,
질책과 죄책감으로
가득했던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양가감정은
내 안의 욕구나 욕망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보니,
내가 옳다 믿었던 가치들과
어긋나는 욕망이나 욕구들이
들끓을 때면
자신에 대한 실망과 죄책에
끊임없이 시달리곤 했다.
그렇게 살고 또 살아가다 보니
‘사람’이라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
‘관계’라는 것이
‘욕망’이라는 것이
‘원래가’그런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존재가 사람임을
깊게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질책과 죄책, 좌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2-30대 때와는 다르게
나 자신의 온전치 못함에 대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가끔은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확신에 찬 어조로
당차고 날카롭게 말하곤 했던
젊은 시절의 내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때를 떠올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같으니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지.
진짜 맞는 말이다.
삶을 알면 알수록
뭔가 콕 찍어서, 자신 있게
이게 진리야!라고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다소 무딘 감이 있는,
그리 확신에 차지 못한 어조로
뱉어내는 내 글들이,
아주 못나 보이진 않는다.
언젠가 나이가 더 들어
지금의 글을 읽어보면
그때는 또 그때대로
지금의 나를
애송이 취급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