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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ung Lee Dec 15. 2016

La Chasse(사냥)

좌절 속에서 커지는 용기와 의지


La Chasse

Margaux Othats

Edition Magnani

32 pages 

288 x 159 mm 

2014


La Chasse는 한국말로 "사냥"입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작가 Margaux othats의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글 없는 그림책은 대략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하나는 단순한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표현한 경우입니다. 독자의 열린 해석도 가능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잔잔한 울림 또한 다른 그림책 못지않게 클 수 있지요. 대체적으로 철학적이고 시적인 내용을 전달하기에 좋은 수단인 것 같습니다. 글 없이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할 경우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림이 얼마나 내용을 잘 전달하는지, 이야기를 끌고 가기에 흡입력 있는 구도와 리듬을 가지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만화 형식을 채용한 경우입니다. 숀텐의 유명한 그림책 "도착", 구오징의 "혼자가 아닌 날"의 경우도 텍스트는 없지만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상황 등을 잘게 쪼개진 화면을 통해 '이야기하는' 반면 풍경과 전경 묘사는 큰 화면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림책의 서사성과 리듬을 훌륭하게 충족시켜주지요. 



La Chasse 그림책 이야기 또한 아주 단순하지만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작은 바위와 돌들이 퍼져있고 두 남자가 총을 들고 등장합니다. 아마 이 두 남자는 이유는 모르지만 돌을 쏴서 깨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빨간 옷을 입은 소녀는 그 돌들을 모아서 무언가를 만듭니다. 하지만 열심히 돌을 쌓아서 만들려고 하면 두 남자가 등장해 소녀의 작품을 파괴합니다. 소녀는 또다시 돌을 모아 쌓고 두 남자는 또다시 총을 쏘고, 소녀는 또다시 만들고 두 남자는 또다시 파괴합니다. 이 반복 속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마음의 몹시 불편해집니다. 일곱 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왕눈이 개구리를 보는 듯한 안쓰러움이 점점 커지지요. 두 남자가 미워지고 소녀의 용기과 의지에 감동받습니다. 소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가 돌을 쌓아 만든 커다란 개가 완성된 순간, 두 남자가 다시 등장해 총을 겨눕니다. 그때 이 커다란 개는 마법처럼 움직여 두 남자를 위협하지요. 두 남자는 허겁지겁 도망갑니다. 개는 사정없이 물고 쫓아가지요. 이 개 등에는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마치 잔다르크 같습니다. 

솜결같이 부드러운 질감으로 이미지는 상당히 정적이고 시적인 분위기 꿈속의 장면 같은 인상을 줍니다. 단순화된 인물들과 돌의 묘사로 그래픽적 느낌이 강합니다. 인물들은 표정은 없고 행동만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행동과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점진적으로 진행됨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켜주지요. 이 반복 덕분에 텍스트가 없이 이미지만으로도 독자는 맥락, 상황에 대한 이해,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또렷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 소녀는 힘없는, 하지만 꿈과 의지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리고 두 남자는 무력으로, 강압적으로 소녀의 꿈과 노력을 짓밟아버리는 외부의 힘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안될 때, 상황과 운이 따라주지 않을 때, 우리가 느끼는 좌절감과 의욕상실, 왜 나는 안 되는 가에 대한 질문들, 계속해야 하나? 하는 의문들.. 등이 소녀를 통해 떠올랐습니다. '아.. 이렇게 해도 안되는구나.. 나는 안 되는 건가?' 하지만 소녀는 계속합니다. 총을 빵빵 쏘며 파괴하는 두 남자는 매번 소녀에게 시련을 주지만 결국 소녀는 해냅니다. 책의 말미에서 커다란 개가 두 남자를 쫓아 혼내주는 장면은 너무 통쾌합니다. 힘없이 당하기만 하던 소녀는 결국 무력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 승리의 깃발을 쥔 셈이지요. 꾸준하게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했을 때, 언젠가는 끝은 오고, 이때까지의 좌절과 실패는 우리의 노력과 흘린 땀으로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혹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힘없는 개인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공권력, 결국에는 승리하는 쪽은 파괴가 아닌 창조라는 점, 상상력으로 힘을 키워가는 아이들 세계와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어른들 세계의 대비 등등 독자는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이 책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소녀가 처음부터 돌을 가지고 만들려고 했던 것은 개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에는 토끼 같기도 했고, 중반부는 오리 같기도 했습니다. 아마  남자가 매번 총으로 파괴할 때마다 소녀의 용기와 의지도 커지고, 조각상도 더 사납고 힘 센 무언가로 변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여하튼, 개인적으로 지금 저의 상황과 잘 맞는 부분이 있어 더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그림책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 오늘도, 저 또한 이 소녀처럼 열심히 제가 그리는 조각상을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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