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에 실체가 있다면
"그는 목이 마른 나에게 자꾸만 빵을 준다."
언젠가 만났던 남자친구와의 연애 경험은 10년도 넘게 전에 라디오에서 얼핏 들었던 이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는 늘 목이 말랐고, 그는 목마름을 이해하지 못한 데다가 이해하려고 하지조차 않았다. 대신 그는 물이 절실한 나에게 언제나 빵을 주었다. 자기 가진 빵을 다 주는 것 같았다. 뭐 그것도 어디까지나 연애 직전이나 초기까지의 얘기지만.
그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멋대로 참 열심히도 주었다. 혼자 책을 읽고 싶은 저녁에 억지로 불러내어 밥을 사준다던가, 천천히 걸어가고 싶은 날 굳이 차로 데리러 온다고 우긴다거나 하는 일들. 내가 주문한 음식을 한입 먹어보고는 맛이 없다며 구태여 다른 음식을 새로 주문해주기도 했다. 나는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나에겐 아무런 효용이 없던 이들이 그의 계산에선 모두 '나를 위한 일'들이었다.
자신이 원해서, 자신에 내게 해주고 싶어서 건넸던 그 호의들을 내가 거절하면 - 아무리 정중히 거절해도, 그는 실망하고, 이내 화를 냈다. 우습게도 그런 류의 호의들은 연애 초기의 열정이 식어가는 속도에 맞춰 사그라들었지만.
그가 대놓고 나를 하찮은 취급을 했던가? 꼭 그렇지는 않았다. 아니, 주위 친구들이 볼 때 그는 항상 좋은 사람이었고, 나에게도 더없이 잘해주는 사람으로 비쳤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라면 정말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도 정말 잘했다. 몇몇 함께 아는 친구들은 내가 남자친구와 싸울 때면 "걔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가 너한테 얼마나 잘하는데"라는 말들로 나를 한 번 더 괴롭혔다.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너는 왜 그러는 거야? 대체 뭐가 문제야?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 모든 것들이 너무도 익숙하고도 자연스러운 가스라이팅의 일종이었을까?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자기가 가진 빵을 다 주는 사람에게 늘 갈증을 호소하다니, 내가 너무했어. 나는 정말 나쁜 여자친구야.' 하며 자책하고 미안한 마음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의 워딩을 빌려 나도 나 자신에게 늘 묻고 있었다. "그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데,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데, 나는 왜 늘 부족하다고 느낄까? 나는 뭐가 문제일까? 나는 정말로 어딘가 잘못된걸까?" 나의 연애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질문, 나를, 그리고 나의 고민을 들어준 친구들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질문이다.
나는 대체로 다정한 공감이나 따뜻한 위로를 바랐지만, 애인은 늘 그런 사소한 일에는 무심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나의 말에 조금만 더 귀 기울여줬으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책을 같이 봐주었으면, 비슷하게 느끼진 못할지라도 그저 내가 이걸 왜 좋아하는지 조금만 생각해봐 주었으면, 혹은 내가 분노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같이 화내주었으면, 화까지는 바라지도 않더라도 나의 분노를 황당해하거나 비웃지 않아줬으면, 그것도 아니면 애인의 무심한 장난에 내가 어떻게 상처받는지 조금만 알아줬으면 하고 나는 늘 바랐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소소한 일들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는 대신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 했다. 어딘가에 놀러 가고, 활동적인 일을 함께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함께 보는 것. 그리고 거기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체력이나 몸 상태, 기분 같은 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재미있는 걸 하지 못하면 실망한 티를 그대로 내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가 화를 내거나 기분이 상했을 때는 일테면 이런 것들이다. 그가 나를 위해 작은 생일파티를 준비해뒀는데 내가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집에서 쉬어야 했을 때, 재미있는 걸 하고 싶은데 내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그만두자 했을 때. 나의 기분이나 상태는 그에게 고려대상이 아니라 방해요소였다.
결국 연애를 끝내겠다고 결심한 것은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매일 우느니 헤어진 슬픔에 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늘 나를 사랑한다 말하고, 딴에는 나를 위한 거라며 이런저런 것들을 해주기도 했지만, 그건 실은 나를 위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더 바란 게 아니라, 나와 상관없이 그가 원한 것일 뿐이었다. 지금은 그게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사랑이었다고 해도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아는 것 같다. 아마도. 그가 조금도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게 나에겐 얼마나 커다란 폭력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와 헤어진 직후엔 너무 슬펐고, 시간이 지나자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다니' 하고 자책감에 시달렸다. 스스로에 대한 괴로움이 커졌다가 어느 새부턴가 화가 났다. 그 화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나는 이미 충만한 연애를 몇 차례 거쳐왔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왜 이렇게 화가 날까. 그의 가스라이팅이 너무도 전형적이고, 내가, 내 주위의 여자들이, 아니 세상의 수많은 여성이 그 전형성에 고통받아 왔으며, 그 모든 종합적인 사실이 나를 심리적으로 크게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남자라서 그래, 남자는 원래 표현을 못 해, 남자들은 단순하잖아" 같은 자책을 가장한 비겁한 권력 앞에 속절없이 자아존중감을 갉아먹는다.
이미 지난 일을, 그것도 지난 연애를 다시 떠올려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한다면, 아마도 그렇게 무너졌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을 상기하여 되찾아야만 하기 때문일 거다. 그때 내가 그렇게 괴로웠던 것은 내가 잘못된 사람이어서, 내가 나빠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고. 나는 그저 연애의 관계에서 정당하게 원할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했고, 존중받지 못하면서도 부당하게 가해자로 몰렸을 뿐이라고.
물론 나 역시 나의 우울이나 불행 등을 무기 삼아 인질극을 벌이며 가스라이팅을 시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연애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남성이 말하는 고충, 또 여성이 말하는 고충을 들을 때 나는 어떤 일관성을 본다. '보통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라는 강력한 말 뒤에 숨어 어떤 행동에도 논리가 필요하지 않은 남자들. 작은 것 하나 원할 때에도 논리적인 이유를 강요받고, 강요를 내면화해 논리와 변명과 증명의 과정을 스스로 거치다가 '내가 여자라서 너무 예민한가 봐' 하고 지쳐 포기하고야 마는 여자들.
나의 목마름을 자책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자책하지 않는 일이 자책하는 것보다도 더 아프기도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