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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Mar 19. 2018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접촉의 심리치료 61 |  마음의 틀 다시 짜기


허벅지에서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을 느낀다던 내담자는 세션후에 그 느낌을 이야기하면서 좀더 깊은 자극을 느끼게 되었다면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발로 차버리고 싶었군요."


그 느낌에 머물게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과 만날 수 있도록 해보았다. 발을 움직여 차는 동작과 함께.


"초등학교 때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가는데 졸았어요. 그런데 옆에 대학생인 듯한 남자가 내 허벅지를 만지고 있는 걸 느꼈지요. 지금 뭐하는 거에요. 크게 소리 내지는 못하고 노려보다가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버렸어요. 그때 느물거리며 씨익 웃고 있던 그 놈을 발로 차버리고 싶었는데."


행동으로 옮겨(acting out) 마음속의 그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되지 않은 채 담아두고 있으면 몸은 그 마음의 흔적을 그때 그 체험의 시점에서 그대로 보듬고 있게 된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Every contact leaves a trace.


경찰청이 '수사는 과학이다'라고 내거는 캐치 프레이즈에 따라가는 이 말을 보면서 나는 다른 차원에서 공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의 모든 차원에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근거로 이렇게 풀어볼 수 있다.
"삶에서 모든 접촉은 우리의 몸과 마음, 성격에 흔적을 남긴다."


우리의 몸에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정서적 응어리들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통증, 불편함,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기능의 문제, 특정 자세나 반복적인 행동들이 그러한 신호와 연관되어 있다. 신체심리치료란 그러한 미해결 과제들을 말과 말이 아닌 신체접촉으로 풀어가는 다차원적인 접근법이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접촉의 흔적들을 바라보면서 '나'와 근원에서 만나고 또 바라본다. 내가 쓴 책 <닿는 순간 행복이 된다>(예담)에선 자기 안에 남아있는 접촉의 흔적을 이렇게 풀어내고 있다.


생애 초기, ‘자기’의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 결정적인 시점에 가장 가까운 양육자의 접촉이 결핍된 상태에서 성장한 사람은 적절한 ‘자기감(Sense of Self, 自己感)’을 발달시킬 수 없습니다. 자아(自我)라고도 하는 자기감이란 인식의 경험이 아니라 경험적 통합이며, 자신의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의 느낌이 생김으로써 촉진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간적인 유대가 없으면, ‘나’라는 개념이 자기 안에 없으므로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파괴합니다. 얻은 것도 없으므로 잃을 것도 없다는 것이 ‘접촉 부재(不在)’를 체험한 사람들의 위험한 생각입니다.

토대가 약하고 골조가 성긴 채로 지어진 집은 스스로 허물어집니다.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잦을수록 집은 빛이 나고 오래갑니다.

-닿는 순간 행복이 된다, 예담, 189쪽


건강한 접촉 체험으로 불건강한 접촉 체험이 대치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의 틀은 다시 짜여집니다. 부디 틀 안에 가두어져 있는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기를.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079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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