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의 대변인이다. 아이가 말을 유창하게 할 때도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들은 자기표현을 하는데 주저함이 있기에 엄마가 대신 전달해 주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리다면 전적으로 아이의 의사소통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다. 말을 못 할 때는 손짓, 발짓, 표정을 관찰하며 아이의 심경과 상황을 추리하며 해석해야 한다. 입이 트이기 시작하며 말을 할 때는 부정확한 발음에 귀를 더 쫑긋하게 세우고 아이의 표정을 함께 들여다봐야 의중을 알아챌 수 있다.
아이가 뭘 표현해도 다 알아맞히는 때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사춘기가 된 지금은 알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아이의 표현방식이 변할 걸까. 엄마의 감각이 느슨해진 걸까 예민했던 신경세포가 둔해진 걸까. 어쩌면 더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아이를 대해서일지도 모른다. 뾰족한 끝이 향하는 곳만 쳐다보니 주변이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어릴 땐 뭘 해도 용납이 되고 이해가 됐는데 한없이 넓은 마음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아이가 어릴 땐 주변 사람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역시 엄마라 그런지 기가 막히게 알아맞힌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무색해졌다. 난 눈뜬장님처럼 보이지도 않고 귀머거리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라며 아이에게 전가시키려 했다. 아이가 어릴 땐 온몸의 신경세포가 하나하나 살아 숨 쉰다. 오감으로 보고 느끼고 해석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감각의 세포들은 점점 기능을 상실해 버린다. 왜 그럴까 이유를 찾는 중이다. 그러면서 아이도 엄마인 나도 각자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건 아닌지 조금 더 마음을 내려놓아야겠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고 덜 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