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neum @Helsinki, Finland
알바 알토(Alvar Aalto) 없는 핀란드 디자인?
북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 항공권과 숙소 다음으로 찾아본 것이 바로 미술관 전시일정이었다. 평소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여행을 갈 때야말로 새로운 미술관에 가볼 수 있는 기회이니까. 더군다나 마침 구미가 당기는 전시가 여행기간에 걸리면 너무 좋다. 예전에 처음 도쿄에 갔을 때 '21_21 Design Sight'에서 '프랭크 게리(Frank Gehry )' 전시를 했던 것처럼 럭키하게 걸리는 것이 있기를 바라며 검색을 해보니, 무려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전시가 열린다고.
국내에도 간간히 디자인 전시가 열리고는 있지만, 2010년의 디터 람스의 'Less and more'을 넘어서는 전시는 없었던 것 같다. 대림미술관에서 디자인 전시를 꾸준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핀란드 최대의 국립 미술관인 '아테네움(Ateneum)'에 도착했다. 나처럼 오전 10시,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락커에 옷과 가방을 맡기고 최대한 가볍게 보기로 했다.
입구의 계단을 올라 전시장이 있는 층으로 이동하는데,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전시, 그리고 전시를 보는 사람들
해외여행 갔을 때 미술관에서 매우 흐뭇한 것 중 하나가,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느릿느릿한 그들의 여유가 가장 돋보이는 장소가 바로 미술관이 아닐까 싶다. 무조건 조용히 해야 하는 분위기보다는 함께 온 사람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인 것, 그리고 인스타그램용 인생 샷 남기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든다.
핀란드 디자인,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바 알토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나라 곳곳에, 그리고 각자의 집에 그의 디자인이 녹아있다. 핀란드와 핀란드인들에 대한 알바 알토의 애정은 건축물과 가구, 조명, 생활용품 디자인으로 남아 시대를 넘어 계속되고 있다.
알바 알토는 핀란드를 둘러싼 바다, 호수, 지형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기능적이고 불필요한 장식 요소가 많지 않으며 주로 사용한 소재는 나무이다. 벤트 우드 스툴은 더 이상 특별한 형상은 아니지만(우리 집에만 해도 이케아 것이 4개나 있다.), 철제 가구가 넘쳐나던 때에는 나무를 휘어 만드는 방법 자체도 꽤나 신선하지 않았을까.
호수를 본떠 디자인한 사보이(Savoy) 시리즈는 화병이 대표적이지만 크기와 높이가 다양하다. 물론 컬러도. 이딸라에 갔을 때, 작은 초를 담을 수 있는 걸로 하나 구입했다.
https://brunch.co.kr/@plot/34
건축에 관련된 전시를 좋아한다. 초기 드로잉부터 수차례 만들고 또 만들었을 프로토타입, 그리고 완성된 건축물 사진들까지. 마지막 결과물만 보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국내에서는 수년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가 가장 좋았고, 해외에서는 도쿄에서 본 ‘프랭크 개리’ 전시가 가장 좋았다.
https://brunch.co.kr/@plot/10
그 외에도 볼 것이 많았다. 알바 알토 관련 그래픽들과 그의 작품을 담은 책.
이 미술관에 가세요
전시를 구성한 자의 의도가 자연스럽게 전시를 보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시. 보는 사람이 동선 꼬임 없이 모든 작품을 누릴 수 있는 전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전시를 이렇다.
좋은 전시로 기억 남으려면 그 안을 메꾸는 콘텐츠가 물론 가장 중요할 테지만, 그에 못지않게 전시 공간도 중요하다. 최근에 몇 번은 실망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콘텐츠 탓이 더 큰 것 같고, 대림미술관은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힘이 있다. 공간의 구획이 꽤 나뉘어 있어 면적당 전시 가능한 작품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보고 나면 미술관 자체가 주는 느낌 때문에 가산점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반면 예술의 전당은 전시에 맞게 가벽을 세우는데도 어딘가 밍밍한 느낌이다.
2층에 뚫려있는 아치창을 통해 1층 전시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위쪽에 달린 모빌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그쪽으로 가게 되어있다. 알바 알토 전시를 다 본 후, 순수 미술을 전시한 1층도 꽤 오랜 시간 둘러보고 미술관을 나섰다.
적어 내리다 보니 알바 알토의 디자인에 대한 것이 아닌,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가 된 것 같다. 결과적으로 아테네움(Ateneum)은 또 가고 싶은 미술관이다. 일단 건축물 외부와 내부 다 마음에 들고, 섹션마다 집중할 수 있게 적당히 벽도 쳐져있고 공간이 나누어져 있으니까. 가고 싶어서 다음 전시가 뭐일지 궁금해지는 그런 미술관이다.
Ateneum
Kaivokatu 2, 00100 Helsinki, Fin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