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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hyun Kim Jun 29. 2020

2020년 6월 27일의 일기

젊은작가상 수상작을 읽었다

점심 쯤 A누나의 결혼식에 갔다가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서울에서 혼자 시간을 떼워야한다는 사실이 싫지 않았다. 

인사동에 가서 르네 마그리트전을 보려고 하다가, 전시 기간이 많이 남았고 누군가랑 같이 보는 게 더 좋은 전시일 것 같아, 생각을 바꿨다. 약속 장소에 미리 가서 여유롭게 있기로 결정했다. 


합정역 북카페를 검색하고 2군데를 방문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곧장 나왔다. 지금은 없어진, 자소서가 잘 써지고 비오는 날이면 큼직한 창으로 무드를 즐길 수 있는 논현역 토끼의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 공간이었는지, 새삼 그리웠다. 

그래서 시간을 떼울 책을 한 권 사기 위해 교보문고로 향했다. 진열대에 문학동네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눈에 띄었다. 한 번도 읽어본적은 없지만, 상을 받은 젊은 작가들의 단편 소설이 재밌을 것 같아 큰 고민 없이 집었다. 평균적인 두께의 책이었음에도 가격이 5,500원 밖에 하지 않았는데, 뒷면에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상의 취지에 따라 출간 후 1년 동안은 특별 보급가로 판매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친구가 추천해준 무대륙이라는 카페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는데, 슬슬 걸어가는 길에 우연히 디벙크라는 카페를 발견했다. 간판이 "한 번 와봐"라고 하는 느낌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오늘은 여기 있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들어가서 안 사실이지만 여기도 책이 제법 있는 북카페 비슷했다.)

곧장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의 내용과 이곳의 분위기와 혼자서 이렇게 여유를 부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만족감의 가장 큰 부분은 책의 내용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하는 가치 있는 작품들을 담고 있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내용을 곱씹고 소화하면서 활자를 천천히 읽어나가는 편이므로, 몇 시간 동안 책에 실린 7편의 작품 중 앞쪽 4편을 읽었다. 하나같이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시의성이 있는 주제를 다뤘다. 사회 참여적이며, 도전적이고, 설득력있다. 작가들의 문체는 각기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담담하고 솔직하다. 


문학은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세상, 겪는 사건을 통해 나와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창이다. 독자는 그 세계를 간접 경험하며, 감정을 공유하고, 메시지를 소화한다. 상상력을 발휘하고, 남이 되는 체험을 통해 독자와 등장인물은 우리가 된다. 소설은 허구지만, 소설이 재현하는 사회적 배경과 등장인물은 어디에나 실재한다. 그래서 문학의 역할은 중요하다:

나와 너는, 추구하는 정의도, 살아온 배경도, 마주한 고통도, 해결해야 할 문제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너는 좋든 싫든, 어느 부분에선가 '우리'로 묶여 사회를 이루고 살아감으로,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공감을 발현해야한다. 대부분 사람 사이의 고통은 이러한 이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좁힐 수 없는 차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문학은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게, 때로는 빙빙 돌려서 간극을 좁히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처방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읽은 4편의 작품은 2020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들을 던진다. 


"왜냐하면 너는 아마 영원히 모를 테니까. 뭔가를 모르는 너,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너는 코스모스를 꺾은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냐는 외침을 언젠가 돌려주고 말겠다는 비릿한 증오를 품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지.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강화길, 2020, p 38)
"그래서 나는 계속 그날을 떠올린다. 이 이야기를 계속 중얼거린다. 너, 너와 나로 인한 너. 무심코 생각하면 나를 닮은 모습으로 불쏙 떠오르는 너. 그래서 나를 겁나게 했던 너. 어떤 계획도 세우고 싶지 않게 만들었던 너. 하지만 나는 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부디 이것만큼은 내가 진짜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어둠 속에서 나는 대답했다. 걔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강화길, 2020, p 39)

강화길 작가의 '음복'은 시댁에서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손자 며느리 주인공을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사'와 '음식'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우리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가족 내에서의 젠더 역할 분배와 불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가족 내에서 악역이 될 수 밖에 없는 사람과 '무지'해도 되는 사람의 대조를 통해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음을 설득하는 방식이 신선했다. 


"너무 극단적인 상황들만 나와 있으니까, 읽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걸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요."(최은영, 2020, p68)
"그는 온통 붉어진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가 내 말을 끊었을 떄, 그리고 내 발언을 평가절하했을 때 약간 무안했을 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가 내 말을 끊고, 내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상황이 내게 익숙했다." (최은영, 2020, p69)
"나는 아직도 그 말을 하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가 잔인함을 잔인함이라고 말하고, 저항을 저항이라고 소리 내어 말할 때 내 마음도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날것 그대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편으로는 덜 외로웠지만, 한 편으로는 지금까지 그럴 수 없었던, 그러지 않았던 비겁함을 동시에 응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은영, 2020, p75)
"누군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수치스러웠다. 내가 그 글을 쓰면서 남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의식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담았을 때 감성적이라고,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봐 두려워서 나는 안전한 글쓰기를 택했다. 더 용감해질 수 없었다." (최은영, 2020, p75)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용산참사의 기억과 글쓰기 발표 수업에서 발생하는 토론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 사람의 경험과 생각, 고통과 분노를 표출하는 글쓰기는 완전히 자유로워야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럴 수가 없다. 공감을 하면서 정신 세계를 확장하려는 노력에 앞서, 자신이 갇혀 있는 세계를 방어하기 위해 칼부터 들이대는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개 이들이 제시하는 피드백은 건설적인 비판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한 합의라기보다는, 상대방의 삶에 대한 부정이며 자신의 기준에 대한 강요다. 조금도 경험해보지 않았으면서, 자신이 옳다며, 너는 틀렸다며, 지금이 좋다며, 누군가의 삶이 더 나아지지 못하도록 제동을 건다. 나는 괜찮으니까 너는 침묵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는 중요하지 않은 삶이 없는만큼 중요하지 않는 서사 또한 없다. 그래서 나는 중요하고 직관적인 메시지를 들어내는 이 작품이 4편 중 가장 좋았다. 


또한 나는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으면서 한 가지 사례가 떠올랐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문학 중에 가장 많은 평을 받은 작품 중 하나는 아마도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일 것이다. 이 작품은 한국사회를 재현하지만, 허구의 등장인물을 내세우는 '소설'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혹자는 '너무 극단적'이라고 평한다. "아닌데, 내 주위 사람들은 안 그렇다는데?", "너무 피해자로 묘사했는데?", "나도 힘들게 컸는데 어쩌라고?"와 같은 식으로 소설 속 주인공의 삶에 대한 부정으로도 이어진다. 
장담컨대, 저런 식의 평가를 내리는 사람 중의 절반 이상은 이 책을 단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을 것이며, 대다수는 외국 고전을 읽은 후 주인공이 '극단적'이라고 평가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과 무관할 수 없는 김지영의 세계를 통해 자신이 지금껏 맞다고 큰 소리치며 살아온 세계가 흔들릴까 두려워 공감을 거부한다. 


이런 류의 혹자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존심, 회피하는 수치심과 자기반성은 누군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고통스러워서 못 살겠다"고 외치지 못하도록 막는다. 이건 사실 인간들이 모여사는 어디서나 마찬가지여서, 나는 글과 문학을 올바르게 읽는 방법, 타인의 삶을 간접체험하고 공감하는 법에 대한 교육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공감하며 들어줄 수 있었으면, 그래서 아군과 적군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여러모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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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집에 실린 나머지 2편 중 한 편은 동성애에 관한 작품이었고, 한 편은 임신중지와 낙태죄에 관한 것이었는데, 시간이 늦은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므로 다음 기회에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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