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로움과 두려움
나는 인도행을 충동적으로 결정했다. 당시 4개월짜리 인턴을 막 끝낸 시점에서 돈이 있었고, 학교에 복학하기까지 2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어디라도 떠나야했다. 그곳을 인도로 정한 데에는 2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오기였다. 나는 혼자 떠날 배낭여행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인도는 난이도가 너무 높다." "너무 위험하지 않냐"는 식의 이야기를 여러 명으로부터 들었다. 배낭여행 좀 다녔다는 친구부터 부모님까지 당시 나의 내공으로는 '혼자 인도행은 무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때때로 이런 부정적인 반응들은 나를 자극시킨다. 나는 '배낭여행의 끝판왕'이라는 인도에서 혼자서 얼마나 잘 헤쳐나가는지 꼭 증명하고 싶었다.
둘째는 존경심이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만난 형, 누나들 중에는 특별히 '어른스러운'사람들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다들 인도를 다녀오고 그 경험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당시에 느낀 '어른스럽다'의 의미는 '외로움에 굳건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스스로의 생각과 취향을 존중하며,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에서, 나는 존경과 질투 비슷한 것을 느꼈다. 나도 혼자서 인도를 경험하고 나면 그들과 같은 범주의 '어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인도행을 결심한 내가 출발하기 전까지 한 일들은: 출발과 귀국행 비행기 표를 사고, 겨우 날짜에 맞춰 비자를 받고, 첫 날 숙소를 예약하고, 큼지막한 배낭을 포함해 필요한 몇 가지 물품을 준비한 것 뿐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게 재미 아니겠어" 라는 마음으로 아무런 계획 없이 델리 공항에 떨어진 나의 근거 없는 호기로움은 이내 산산히 부서졌다. 공항 유리문을 나가는 순간부터 정신없이 들러붙는 삐기들로 인해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딛기가 어려웠다.
'진짜'는 택시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깜깜한 밤 도로에는 가로등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사람으로 추정되는 어두운 물체들이 여기저기서 무단횡단을 했다. 여행자의 거리로 불리는 빠하르간지에는 곳곳에서 노숙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우며 모여있었고 소, 돼지와 개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누군가 없어져도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범죄도시의 바이브가 풍겼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물을 사기 위해 100M 남짓한 어두운 거리를 오가는 동안 몸이 긴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인도에서의 남은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도저히 혼자서는 안 되겠다. 누구라도 같이 다녀야겠다. 이왕이면 싸움 잘하는 애들이랑."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