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질문하는 사람, 질문하지 않는 사람.

by 권민창

2018년 8월, 내게 모교 강연의 기회가 주어졌다.

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선배들을 초청해서 특강을 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했고 그 첫 강연자가 나였다.

고등학교때부터 강당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 있게 말하는 강연자들을 보며,

‘나도 저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꿈을 꿨기에 평소에 강연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모교 강연 준비에 할애했다.


먼저 사전조사를 했다. 학교에 전화를 해서, 요즘 학교에는 어떤 이슈가 있는지, 학년별 주요 관심 사항은 무엇인지 정리를 했고, 10년도 더 된 학생시절 앨범을 뒤적이며 어떻게 하면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강연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다.

그러자 내가 학생때 강연자에게 느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학생때 굉장히 인상 깊게 들었던 강연이었는데,

그 때 당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의 강사였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선택할 자유의지가 있다.’ 라는 내용의 강연을 했었다.

굉장히 깔끔하고 유익했었지만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선택한 사람은 극소수였는데, 그 극소수를 통해 결론을 내는 게 맞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머지 다수는 극소수를 위한 들러리인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그 때 당시 500명에 가까운 학생들 사이에서

‘질문있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손 들 자신이 없었고 결국 그렇게 그 의문점은 풀리지 않은 실타래처럼 내 가슴에 남아있었다. 내 강연을 듣는 학생들도 10여년 전 나와 다를 바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강연을 시작할 때 운을 띄웠다.


‘어린 시절, 어머님은 마트에 가면 꼭 과자를 하나만 고르게 하셨습니다. 꼭 하나만 골라야했기에 전 크고 많을 거 같은 과자를 골랐습니다. (포카칩 사진을 띄우며) 네, 맞습니다. 언뜻 보면 굉장히 커 보이죠? 하지만, JYP가 공기반 소리반 하는 것처럼 이 과자는 질소반, 과자반이었습니다. 우람해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실이 형편없었기에 저는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방황기를 겪다 전 드디어 정착을 하게 됩니다. (브이콘 사진을 띄우며) 혹시, 이 과자 아시나요? 브이콘이라는 과자입니다. 봉지의 크기는 포카칩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습니다. 하지만, 이 과자를 뜯었을 때 전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봉지는 크지 않았지만, 그 봉지 안에 과자가 꽉 차 있었습니다. 별 기대하지 않고 골랐던 브이콘은 제게 엄청난 만족감을 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만났던, 그리고 앞으로 만날 강연자들에 비해 경험과 스펙 부분은 부족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몸집을 포카칩처럼 질소로 불리기보다, 작지만 꽉 찬 브이콘처럼 알차고 내실 있는 강연을 하고 싶습니다. 알차고 내실 있는 강연을 완성시키는 것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10여년 전, 이 강당에서 강연을 듣고 궁금한 점이 많았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끝내 질문하지 못했고 그 의문점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실타래처럼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강연 중간 중간 궁금한 점이 있다면 제 말을 끊고 언제든 질문해주세요. 이런 걸 질문해도 될까? 하는 것도 다 질문해주세요. 좋은 질문은 다수를 일깨워주는 질문입니다. 궁금증을 공유하고, 의견을 함께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강연은 질문을 통해 완성됩니다. 그럼 강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입부를 신선하게 해서 그런지 강연에 임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정말 좋았다. 강연 중에 질문을 하면 대답하려 했고, 400명 중에 자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원래 계획된 강연시간은 2시간이었지만, 1시간 20분 정도만 하고 질문을 받기로 했다. 꽤 질문을 많이 할 거라 생각해서 40분도 부족할거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내가 좋은 강연을 하지 못했구나, 아직도 많이 부족하구나 라는 씁쓸함이 들었고, ‘혹시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 학생들은 나한테 오면 성심성의껏 답변해주겠다.’라는 말을 하고 강연을 마쳤다.


점심 시간이 겹쳐 있었고, 강연을 주선해주신 담당자분과 점심을 먹기로 해서 중간에 나가기도 그래서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난 날 찾아온 학생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해줬고, 결국 예정된 점심시간보다 30분 늦게 식사를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왜 많은 사람들은 다수 앞에서 질문하기를 두려워 하는 걸까?’


질문을 하고 싶어 개인적으로 온 학생들의 질문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수준 높은 질문들도 많았다. 그리고 겹치는 질문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가요?’ ‘저도 작가의 꿈이 있는데,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제가 뭘 준비하면 좋을까요?’ 같은 질문들. 아쉬웠다. 400명이 있는 자리에서 동시에 질문을 공유하고 그 자리에서 답변을 했다면, 연쇄적으로 좀 더 심도 있고 창의적인 질문들이 많이 나왔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집에 왔는데 SNS로 학생들의 친구신청이 많이 와 있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고민거리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아까 용기를 내지 못해 차마 질문을 하지 못했다며 내게 보낸 고민들에 일일이 답변을 해주자 학생들은 너무 고마워했다. 그 중에 한 학생과 어느 정도 친밀감이 형성되자 난 그 학생에게 궁금한 게 더 없냐고 물어봤고, 사실 용기를 내지 못해 자신을 통해 나에게 물어봐달라는 학생들도 많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나는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질문하는 사람과 질문하지 않는 사람.


전자는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고, 후자는 타인주도적인 삶을 산다. 질문은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의문을 갖고 산다. ‘이건 왜 이러지? 저건 왜 이럴까? 이 개념은 어떻게 생성된 걸까?’ 하지만 그것을 묻고, 이해해서 자기화시키는 사람과 ‘원래 그렇겠지.’ 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은 목적성, 동기부여, 사리분별력 등 모든 부분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 접근 방식은 고스란히 우리 삶의 만족도와 성취도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전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칼럼에서는 끌리는 사람(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사람들을 끌어들이거나 대화를 편안하게 이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들)들은 어떤 질문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질문을 해야 효과적이고 유용한지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다양한 종류의 문제에 직면한다. 처음에는 한 가지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지식이 늘어날수록 다양한 종류의 문제 해결 도구를 갖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문제 앞에서도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게 된다. 이 문제 해결 도구의 키는 바로 ‘질문’이다.

수치불문羞恥不問(모르면서 묻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라는 말이 있다.

부끄러움은 잠시지만 무지는 평생 자신을 괴롭힌다.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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