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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Dec 27. 2020

그가 금사빠인 이유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아파하자.

친한 친구 중에 금사빠가 있다. 대화를 해보고 잘 맞다 싶으면, 어김없이 연락이 와서 오늘 만난 사람 너무 괜찮다라며 칭찬을 한다. 정말 그런 사람이고, 그 친구와 아름다운 사랑을 하면 좋으련만 운명의 신은 항상 그 친구를 빗겨나갔다. 행복한 가정을 이룰 준비도, 아름다운 사랑을 할 준비도, 상대방에게 헌신하고 그녀만을 바라볼 준비도 다 끝났지만, 애석하게도 정작 그 친구는 ‘운명’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그를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번 그 과정 중에서 상처를 받고 나에게 묻는다. 어찌하면 상처를 받지 않고 사람을 만날 수 있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말고, 처음부터 모든 걸 보여주지 마라라고 얘기한다. 첫 만남부터 좋아하는 티 많이 내지 말 것, 애프터를 섣불리 잡지 말고 반응을 보고 신중하게 결정할 것, 괜히 물었다가 거절당하면 자존심도 상하고 상대방에게도 부담을 주게 되니까. 


내 말을 들으면 ‘아, 그렇지. 라고 하며 다음에는 꼭 그래봐야겠다며 고맙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앞서나가고 급해진다. 그런 과정 중에 무뎌지면 좋으련만 항상 친구는 상처를 입는다. 자신이 사랑을 못하는 이유, 상대방이 본인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가 다 자기 자신 안에 있다며 자책을 한다. 전에는 그런 친구를 보면 애석했다. 조언을 해주려 했고, 가끔은 화도 냈다. 다 친구를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몇 달 전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연락의 내용은 이랬다. 고쳐보려고 하고 노력도 해봤는데 본인이 금방 사랑에 빠지는 건 타고난 기질 같다고.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상처를 받고 좌절을 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표현을 해야될 거 같다고 얘기했다.


그런 말을 하는 그 친구가 처음으로 부러웠다. 나의 지난 날 연애를 돌아보면 불 같은 연애보다는 잔잔한 연애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내 주제를 너무 잘 알아 내 수준에 비해 너무 높아 보이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거절당했을 때 상처 받고 자존감이 낮아질까 두려워서, 집착하게 되고 마음이 아플까봐 두려워서. 


그런데 그런 찌질함도 되려 용기였다. 거절을 당하더라도, 좌절을 하고 아프더라도 본인의 진짜 사랑을 찾아 혼자 지도를 만들어 여행하는 친구가, 겁먹고 안전한 피난처에서 주는 음식을 먹으며 주어진 역할만 하는 나보다 훨씬 대단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는 영화에 나오는 지지라는 캐릭터는 매번 금방 사랑에 빠지고, 사람에게 상처받는다. 그리고 그런 지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알렉스. 그의 따뜻한 말에 지지는 알렉스마저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가볍게 여자를 만나는 알렉스에게 지지는 그저 하룻밤 상대일뿐이었다. 지지의 마음에 대못 같은 상처를 박는 알렉스에게, 지지는 울며 

‘내가 사소한 걸 부풀려 생각한다 해도 마음을 쓴단 뜻이니까. 널린 게 여자니까 네가 옳다고 생각해? 물론 상처받거나 웃음거리가 되진 않겠지만 그렇게 해선 사랑에 빠질 수도 없어. 내가 바보 같을 진 몰라도 너보단 빨리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그 말은 들은 알렉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본 뒤, 자신을 사랑해준 지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고백한다.


최근, 그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칭찬을 하는데 예전과 달리, 그 친구가 헤어졌을 때 받을 상처가 걱정되기보다는 앞으로 두 사람이 만들어갈 행복한 사랑이 그려져 흐뭇하고 좋았다. 사랑하며 매번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로에게 못난 행동으로 짜증을 주고, 모진 말로 상처를 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편한 과정조차도 서로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시시각각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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