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영화 <소공녀, Microhabitat> 리뷰
영화 좀 추천해주실 수 있어요?
많이 듣는 질문이다. 영화 관련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더 많이 듣는다. 그런데 이 질문은 참 이상하다. 영화는 완벽한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바꿔보자. 밑도 끝도 없이 "음악 추천해주세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베토벤과 모차르트부터 들으세요" 이런 답을 원하진 않았을 것이다. 책은 어떨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부터 시작하세요" 이것도 이상하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취향의 영역에서는 정확한 답을 주기 어려운 질문이다. 게다가 답을 들은 사람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물어야 할까. 먼저 자신의 취향을 밝혀야 한다. 혹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제가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힘든데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까요?" "저는 공포영화가 좋은데, 최근 개봉작 중에 괜찮은 작품이 있나요?" "저는 인간관계가 어려운데, 어떤 책을 추천해요?" "제가 요즘 우울한 상태인데, 어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될까요?" 등과 같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질문을 해야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 쉽다.
문제는 자신의 취향을 모른다는 점이다. 혹은 그 취향에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본인이 영화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많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보다 더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인정해주는 작품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즉, 자신의 취향을 남에게 묻는 것이다. 결국 첫 질문을 다시 말하면 "제 취향이 뭔가요?"라고 바꿀 수 있다.
영화 <소공녀>에는 자신의 취향을 명확히 아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가장 질문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주인공과 반대로 자신의 취향을 모르거나 감추고 사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어쩌면 영화 <소공녀>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미소가 자신의 취향을 완벽히 아는 반면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은 취향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혹은 타인의 취향이 자신의 취향인 양 착각하고 살고 있다. 결국 <소공녀>는 취향을 아는 사람이 취향 없이 사는 사람들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소(이솜 분)는 3년 차 가사도우미다. 위스키,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이상 자신의 삶에서 바라는 것이 없다. 새해에 담배와 위스키 가격이 오르자 고민 끝에 집을 포기한다. 지낼 곳이 없어진 미소는 대학시절 밴드를 함께 했던 멤버들을 찾아간다.
담배, 위스키, 한솔이 너만 있으면 돼
사람답게 사는 게 뭔데?
나는 네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술, 담배라는 것도 정말 한심하고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미소는 완벽한 이상향의 인간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