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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Jun 03. 2021

[레드먼드의 앤]을 읽고

소예책방온라인 독서모임 [함연:동화]

앤의 마지막 이야기 [레드먼드의 앤] 5월 한 달 소예책방 온라인 독서 모임 함연에서 마지막 앤의 이야기를 읽었다. '함께 읽다'는 것은 참 특별하다. 특히 오랜 기간 같은 주제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좀 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빨간머리 앤] [에이번리의 앤] [레드먼드의 앤]까지 부지런히 함께 읽어나갔다. 


처음 소예책방에서 앤의 이야기로 읽어나갈 예정이라고 했을 때 어찌나 설레고 기대가 되는지...

그 설레는 마음을 갖었던 때가 벌써 많이 지나가고 마지막 [레드먼드의 앤]까지 모두 읽었다. 

책의 끝을 읽으며 이토록 아쉬웠던 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 앤에게 깊이 빠져 있었고 함께 읽는 책벗들이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던 시간들이다.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줌 모임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내 일인 양 공감했었다. 어린 시절 만났던 앤은 그저 순진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소녀였지만 장성하여 성숙하고 좀 더 사려 깊은 여인으로 변한 듯 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앤만의 특유한 상상력이라 던가 특별한 생각은 그대로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전의 [에이번리의 앤]보다는 [레드먼드의 앤]을 읽으면서 나와 앤의 많은 교차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나이 때 만날 수 있는 사랑의 이야기, 우정 이야기 그리고 죽음까지 모두 감싸 안고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단순 동화가 아닌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기도 한 앤의 마지막 이야기가 담겨 있다. 


P172. 다음 날 아침, 루비 길리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이 집 저 집으로 전해졌다. 루비는 아무 고통도 없는 듯 평온한 미소를 짓고 영원히 잠들어 있었다. 죽음은 루비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소름 끼치는 유령의 모습이 아니라, 다정한 친구의 모습으로 찾아와 루비를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어 준 듯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 린드 부인은 죽은 사람의 얼굴이 루비 길리스처럼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앤이 넣어준 아름다운 꽃들 속에 흰옷을 입고 누워 있던 루비 길리스의 아름다운 얼굴은 에이번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몇 년 뒤까지도 화젯거리가 되곤 했다. 


[레드먼드의 앤] 초반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이 었던 것은 루비 길리스의 죽음일 것이다. 또래의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도 태연할 수 없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의료 시설이 썩 좋지 않았던 그 시절 폐결핵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사건이 아닐 것이다. 아픈 루비에게 매일 밤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주는 앤의 모습을 보곤 나도 묘한 감정이 생겨났다. 나라면 아픈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 매일 밤 찾아갈 수 있었을까? 바쁜 일상에 치여 살아가며 친구를 외면하지 않았을까? 여러 감정이 교차되었다. 


P179. "물론 나한테 즐거움을 안겨 주려는 네 착한 마음에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어? 하지만 너도 알잖아..... 좀 놀랐어..... 나는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안 돼. 내 소설에는......."

목이 메어 그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베이킹 파우더 이야기는 없는데."


[레드먼드의 앤]에서 다이애나와 앤은 소녀 시절 깊은 우정을 나누던 사이에서 점차 멀어지다 확실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서로의 환경이 전혀 달랐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긴 하지만 완전히 똑같을 수 없었던 성향 차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린 시절 같은 것을 보고 배우고 같은 시간을 공유 한 친구는 둘도 없는 단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며 점차 깨닫게 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신념 같은 것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 만으로도 서로에게 상처를 안겨주기도 한다. 다이애나가 악의 없이 앤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소설 공모를 대신 내어 줬지만 앤의 섬세한 마음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랑 소설에 베이킹파우더 광고라니 좀 충격적이긴 했다. 


P205. 앤은 초록 지붕 집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패티의 집 생각이 간절했다. 호젓하게 타오르는 벽난로며, 제임시나 아주머니의 유쾌한 눈길, 고양이 세 마리, 세 친구들의 유쾌한 재잘거림, 금요일 저녁이면 대학 친구들이 집에 찾아와 즐겁게 나누던 기쁘고 슬픈 이야기들이 그리웠다. 


20대 무렵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있으면 그 분위기에 흠뻑 빠져 그 세계가 전부인양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와는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앤은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누리고 있다. 든든한 버팀목 같은 초록 지붕이 있기 때문에 앤은 대학에 나가서도 친구들과 활기차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래드먼드의 앤]은 동화이긴 하지만 가족 구성원이 딱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순간순간 내게 일깨워 주었다. 마릴라나 매슈는 앤에게 엄마나 아빠가 아니지만 그 이상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P231. "내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루였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아냈으니까. 그 편지 덕분에 부모님을 현실로 느끼게 되었어. 이제 나는 더 이상 고아가 아니야. 마치 책을 펼쳤는데 어제의 장미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 그대로 거기 있는 것을 발견한 기분이야."


앤이 초록 지붕 집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근원인 부모님을 단단히 신뢰했기 때문이 아닐까. 부모님의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고 어린 시절부터 힘든 일을 많이 경험했던 앤이었지만 특유의 발랄함과 긍정적인 성격을 한 순간도 내려놓지 않았다. 앤이 부모님의 편지를 찾은 순간 함께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런 면에 있어서 확실히 [레드먼드의 앤]은 한 편의 휴먼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P368. 네게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뒤 한동안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은 없었어. 내게는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있을 수 없었어.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 네가 내 머리를 내려쳐서 석판을 깬 그날부터 너를 사랑했어.


P369. 난 다이아몬드 세례나 대리석 복도는 필요 없어. 그냥 너만 있으면 돼. 그 점에 대해서는 필만큼이나 뻔뻔해. 다이아몬드와 대리석 복도도 아주 좋겠지만, 그런 게 없으면 '상상의 여지'가 많아질 거야. 그리고 기다리는 것도 자신 있어. 서로 기다리면서 일하고 꿈꾸면 행복할 거야. 아, 이제 꿈은 정말로 달콤할 거야."

길버트가 앤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빨간머리의 앤]을 시작으로 [에이번리의 앤]을 읽으면서 길버트와 앤이 이야기에 얼마나 목이 말랐던가! 사실 [레드먼드의 앤]도 풍성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이 드디어 이어졌어!! 드디어 길버트와 이어졌다고! 하며 안도를 할 수 있었다. 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함께 읽었던 책벗 들은 길버트 같은 남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긴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매번 매몰차게 거절하는 사람을 기다리가 어디 쉬운 일인가. 동화이기 때문에 이런 결말이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둘이 맺어졌기 때문에 안심하고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앤을 보내긴 아직도 아쉽다. 어린 시절 내가 만났던 앤 그리고 이렇게 장성해서 성인이 된 앤을 만나기까지 그동안의 시간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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