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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Nov 09. 2021

할아버지의 열매

가을 사과대추

"제철과일보다 더 달콤한 과일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과일은 그 계절을 느끼며 먹는 제철 과일이 제일 건강하고 맛있다. 물론 요즘은 농업 기술이 발달해서 더 맛있고 품질이 좋은 과일을 계절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지만 어릴 적 계절이 변할 때마다 제철 과일을 집에 사두셨던 부모님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 기억 때문인가 나도 아이에게 봄에는 딸기를 여름에는 수박을 가을에는 사과를 겨울에는 귤을 찾아 사서 집에 두곤 한다. 


10월 중순쯤 아이는 유치원 밭 체험을 갔다가 수확한 사과 대추와 고추를 집에 가지고 왔다. 지금 다니고 있는 유치원은 지정해 놓은 농장이 있어서 봄부터 씨를 뿌리고 작물을 가꾸고 수확하기까지 체험을 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있다. 가을에 뒤늦게 이사 온 터라 씨를 심고 밭을 가꾸는 경험은 해보지 못했지만 수확 계절을 맞아 친구들과 밭 체험에 나가 다양한 작물을 수확해 집으로 가져온다. 고구마나 밤을 집에 가져온 날도 맛있게 삶아서 아이와 나눠 먹었는데 사과대추를 가지고 온날은 함께 먹으며 나는 저절로 나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사랑받았던 감정은 그대로 남아 그 기억이 마치 어제일 처럼 생생하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꽤 무뚝뚝한 가장이었던 할아버지는 손녀딸인 나는 참 예뻐하셨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나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는 정이 없고 냉랭한 분이셨지만 내 기억의 할아버지는 다정하고 자상한 분이셨다. 나와 잘 놀아주셨고 내가 원하는 것들은 어떻게 아셔서 꼭 손에 쥐어주셨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단독주택 아래 반지하 단칸방에 세 들어 한 칸은 할머니 할아버지, 다른 한 칸은 엄마 아빠 나 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살았다. 단독주택에 살던 사람들은 집 정원에 나무 한두 그루를 심어 놓고는 했는데 보통 감나무나 대추나무를 많이 심어 가을이면 열매 맺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우리가 사는 곳 옆집이나 우리가 살던 주인집에 대추나무가 있었던 것 같다. 추석이 다가오면 할아버지는 매끈하고 동글동글한 대추 대여섯 알을 따다 나에게 주셨다. 늘 쭈글쭈글하던 진한 갈색의 대추만 보다가 푸릇한 색을 띤 매끈한 대추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한입 앙 베어 물면 그 어떤 과일보다 달콤하고 풋풋한 대추 맛이 입안 가득 채워졌다. 아이가 따온 매끈한 대추를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첫째 손녀를 예뻐하시던 할아버지의 다정함도 아직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내가 중학생 무렵 여름 방학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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