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커플보다 2주 전에 결혼한 요엘과 테스 커플! 신랑의 대학 친구이자 직장 동료이기도 한 요엘은 무신론자이며 종교라면 질색한다. 이들은 사귄 지 2년 후부터 동거를 시작해 동거 3년째 되는 커플이다. 프러포즈는 이미 작년 초에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시기를 놓쳐 계속 기다리고 있던 찰나 우리가 선수 쳐서 (?) 초대장을 보내자 자기네들도 결혼식을 계획하고 있다며 상황을 보고 오겠다는 답변을 했다. 사실 내가 직장을 안 다니는 백수인 데다가 신랑이 워낙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많고 우리 둘 다 핸드메이드 끝판왕이라 우리 결혼식은 정말 준비를 많이 했다.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여기에 시어머니가 워낙 집에서 손님들을 데리고 와 80여 년 만에 결혼식을 올리다니!!!!! 너무 기뻐하시면서 피로연 준비를 하셔서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
요엘과 테스는 계속 결혼식 생각은 했는데 우리한테 청첩장을 받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여러 날짜를 알아본 것 같다. 다행히 우리는 초대받았고 (?) 요엘과 테스도 우리 결혼식에 오기로 했다. 너네 결혼식에 비하면 준비한 게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요엘네 결혼식 웹사이트에는 신랑이 쓴 문구를 그대로 베낀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곧 결혼하는 나도 스웨덴 결혼식이 생소한데 우리 결혼식 전에 요엘과 테스 결혼식에 참석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고 정말 오랜만에 모르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니 약간의 컬처쇼크와 코로나 기간 동안 신랑과 시댁 식구들 사이의 safe zone에서만 머물렀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 워낙 정해진 게 없고 다 커플이 하고 싶은 대로 정하는 거라 '남들 하는 대로'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중 하나인 요엘과 테스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일단 늦었다. 전화가 온다!
늦었다. 거의 두 시간 전에 나갔는데! 요엘과 테스는 Ekerö라는 스톡홀름 서쪽에 위치한 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이게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 몰라 도심을 한 바퀴 빙 돌아갔고 스웨덴 왕의 궁전인 드로트닝홀름 궁전 전까지 정말 차가 미친 듯이 막혔다. 한 줄로 서서 가는 차를 보며 저게 설마 우리랑 같은 결혼식 가는 차인가 했다만 그런 차는 하나도 없었고 내려서도 구글 지도를 잘 못 찍는 바람에 우왕좌왕하다가 결혼식 사회자인 Toastmaster가 우리에게 전화할 지경에 이르렀다. 알고 보니 결혼식이 열리는 곳은 선착장 같은 곳에 연결된 아주 자그마한 섬 위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주차장에서 내려서 걸어서 가야 했다.
스웨덴에선 한국처럼 돈만 내면 다 해주는 곳보다는 노동력을 써서 친구 가족들이 도와서 결혼식을 하는데 - 그 이유는 아마 돈으로 해결하려면 너무 비싸서 아닐까 싶다 - 피로연 사회자는 Toastmaster로 모든 피로연 관련된 것, 일정 공지 등 결혼식 이끌어가는 역을 하며 신부 들러리와 신랑 쪽 들러리 즉 Bestman과 Brudtärna 들의 역할이 한국보다 크다. 한국에도 요새는 브라이덜 파티 같은 문화가 있는데 여기는 Svensexa라고 총각파티가 있다. 이걸 주최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이 Bestman과 Brudtärna인데 우리 결혼식에서는 나의 들러리를 해줄 사람이 없어서 생략했다. 보통 한 두명만 하는데 아니라 양측 3-5명씩 크게 하는 것 같았다. 모두 다 옷을 빼입어야 한다.
여하튼 늦었는데 왜 연락을 할까? 스웨덴 결혼식은 보통 손님이 정해져 있고 손님이 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를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초대장도 최소 3개월 전에는 보내는 것 같다. 특히 이 나라 사람들은 여름 결혼식을 좋아하는데 여름에는 모두 휴가를 가니까 그 일정을 고려해서 한참 전에 초대장을 보낸다. 테스와 요엘은 8월 중순에 결혼식을 했고 초대장을 받은 건 6월 초쯤이나 되어서니까 아주 급박하게 한 걸 알 수 있다. 5월 초에 Save the date라고 임시 초대를 문자로 했고 - 한 번 날짜를 더 바꾸었다가 - 6월이 되어서야 초대장이 온 것 같다. 교회에서 결혼식 하는 경우에는 아무에게나 오픈이기 때문에 이를 굳이 확인 안 할 수도 있는데 온 손님이 50명 정도라니까 모두 온 후 시작을 하려 한 듯하다.
가자마자 숨을 들이켜라며 웰컴 드링크를 원샷하고 서둘러 결혼식이 진행된다는 데크로 갔다.
초록색의 신부복과 감미로운 기타 연주
정말 아름다웠다. 바로 말라렌 호 옆에 있는 야외 데크에서 식을 했는데 신랑 신부가 같이 호텔에서 나무 계단을 걸어 내려왔고 브라이드 메이드와 베스트 맨이 따라왔다. 아주 감미로운 기타 연주가 살짝 울려 퍼졌고 말라렌 파도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어 주었다. 날씨도 죽여줬다. 아니 그런데 결혼식이 5분 만에 끝났다. 스웨덴 시청 결혼식이라고 여기선 시청에 가서 5분 만에 식을 올릴 수 있다. 정말 신랑 신부는 Ja (YES)라고만 하고 주례 보는 (아마도 시청에서 온 사람) 할아버지만 어쩌고 저쩌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더니 아주 금방 끝나버렸다.
너무 금방 끝나 버려서 아... 우리 결혼식은 찬송가를 세 곡이나 부르고 목사님 주례까지 있는 아주 긴 결혼식인데 어쩌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국처럼 신부 드레스 자락을 정리해주는 분이나 하객들 앞을 가로막고 사진을 찍는 사진사는 없었다. 그런데! 한국 마냥 양가 부모님에게 하는 인사도 없다. 요엘은 몸에 문신이 가득하고 평상시에는 귀걸이를 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이 날은 귀걸이를 빼고 선글라스는 뺐다. 아, 하객들도 거의 대부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선글라스가 주는 문화적 의미와 실용적인 측면도 한국과 차이가 많이 난다고 또 느꼈다. 우리도 선글라스 끼고 갈 걸! 날씨가 정말 너무나 좋았다.
테스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었다. 요엘은 이에 맞춰서 초록색 넥타이를 해서 커플 느낌을 줬다. 테스의 붉은 머릿결과 드레스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테스의 취미는 초록 식물 키우기인데 나중에 우리 결혼식에도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왔다! 테스의 반지 또한 에메랄드 초록색이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여기는 커플 마음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한다고 느꼈다. 테스는 심지어 결혼 선물로 받고 싶은 리스트에도 초록색 화분을 넣어놨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결혼식 하는 것, 누구 눈치 보지 않는 것, 신랑 신부 커플이 초점이 되는 결혼식 이게 내가 받은 인상이었다.
에메랄드 반지. 출처: vanbruun.
신랑 신부 부모님이 누군지 결국 알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나는 끝내 누가 테스의 어머니고 누가 요엘의 아버지인지 알 수 없었다.... 한국처럼 특정 자리에 부모님이 앉아 계시는 것도 아니고 결혼식 전에 서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꽃을 다는 것도 아니고 특정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피로연 부분에서 다시 쓰겠지만 테스의 아버지와 요엘의 어머니는 저녁 식사 중 스피치를 하셔서 누군지 "그나마" 알 수 있었다. 한국 결혼식처럼 양가 부모님께 맞절! 이런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님들 화촉점화! 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신랑 신부 입장은 정말 커플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아버지와 같이 들어오는 케이스도 있었다) 누가 누군지 이렇게 알 수 없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게다가 어머님 아버님이 어디 나서서 본인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어르신들과 같이 있으니 알아볼 수가 없다. 옷도 매우 평범하게 입으셔서 요엘 어머니 같은 경우엔 비즈니스 캐주얼에 가까운 복장이었다. 이게 사실 무슨 얘기냐면 어머님 아버님의 친구들, 손님도 없다는 소리다. 내가 제일 충격받은 부분도 이 부분이었는데 신랑은 우리 결혼식의 삼촌이나 부모님 형제들을 거의 초대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신랑네 삼촌 등은 초대해야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전혀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초대 손님 리스트에 부모님의 영향력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시어머니도 살짝 움찔하시더니 쿨하게 그래 하셨다. 내가 보기엔 나중에 따로 형제자매 친지들에게 연락하시고 감사를 표하신 듯하다. 사실 요엘네 결혼식이나 우리 결혼식은 큰 결혼식이 아니어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피로연 때 저녁 먹다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애들한테 한국은 몇 백 명씩 부른다 하니까 바로 나온 질문이 "Hur betalar det?" "그거 누가 계산하는데?" 그래. 아주 아주 다르다. 하지만 인륜지대사라는 점은 여전히 다르지 않고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이벤트 중 하나로 주인공으로 주목받으며 수많은 축복과 축하를 받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런 만큼 이런 세리모니를 경험하고 비교해보니 많은 문화적 차이점이 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
나는 스탠딩 파티 문화가 정말 싫다..
생판 처음 보는 스웨덴인 7명과 같은 팀이 되다.
쉬는 시간 스테판과 함께
5분 만에 식을 끝내고 나서는 샴페인 잔을 하나씩 끼고 잠시 밍글 링 (mingling)을 하면서 신랑 신부와 한 마디씩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아니 그런데 저녁 식사는 6시 반이라는데 결혼식은 4시에 시작해서 5분 만에 끝나버렸고 아직도 시간이 1시간 반 남아 있는데 뭘 하나? 싶었는데 아아 팀 플레이를 하란다. 스웨덴 결혼식에서 피로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매우 컸고 요엘과 테스 결혼식에서는 특히나 더 컸다. 결혼식이 5분 만에 끝났잖아! 결혼식에서 자리 배치는 커플 마음대로인데 주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앉게 된다. 물론 커플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스웨덴인들은 결혼식에 초대받을 경우 같이 가는 부인이나 남편, 삼보와는 당연히 떨어져 앉을 거라 알고 간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섞어놓은 테이블 넘버 4. 거기 내가.. 끼게 되었다. 난 요엘이랑 테스도 작년에 한 번밖에 안 만났는데! 신랑과 떨어져 혼자 앉게 되어 스웨덴어를 해야 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