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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Jun 15. 2022

창피함에 대한 지혜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 가난한 주인공이 같은 반 아이들을 피해 몸을 숨기는 대목이 나왔다. 학교에서처럼 거지라고 놀림을 당할까 봐서였다. 나는 꼬마 형제에게 물었다.   
   “얘들아, 만약 친구가 이렇게 너희를 거지라고 놀리면 어떻게 할 거야?”
   일곱 살 로운이가 허공 속에 누군가 있는 듯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왜 내가 거지야?”
   “우리 로운이는 그렇게 할 거구나. 음…… 그런데, 거지인 게 안 좋은 거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홉 살 라온이가 동생이 쳐다봤던 곳을 향해 따지듯 말했다.
   “거지인 게 뭐가 안 좋아?”
   로운이가 질세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앙칼지게 언성을 높였다.
   “왜 나 놀려?”
   허공 속 그 아이는 꼬마 형제의 날 선 협공에 움찔했을 것이다. 라온이와 로운이는 그동안 내가 일부러 키워준 전투력(?)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한때 나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싸우지 않고, 즐겁게 지내기만을 바랐었다. 때문에 배려나 양보를 강조하며 친화력을 높이도록 이끌었다. 그런데, 라온이가 초등학교 새내기 때 한 고약한 친구 때문에 속상해한다는 걸 안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때로는 전투력도 필요함을.

  친구가 고약하게 구는데도 태평양 같은 인내심만 보이면 만만한 아이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심지어 점점 강도가 센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 라온이와 로운이는 그럴 가능성이 높은 아이였다. 친구와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는 나의 가르침 탓이 컸다. 하여, 지도 방향을 수정했다. 모두와 잘 지낼 필요는 없음을 알려주었다. 즉, 고약한 친구에게는 가만히 있지 말고 강하게 반감을 드러낼 것을 강조했다. 친구가 몸을 세게 밀치거나, 물건을 함부로 빼앗거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놀리는 등 나쁜 행동을 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수시로 연습시켰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에서 언짢은 일이 있어도 기분 나쁜 내색을 제대로 하지 않는 편이었다. 나의 불편함을 드러내서 친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옳지 않은 것으로 여겼었다. 조금이라도 화를 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 줄로만 알았다.(그나마 다행히 친구들 대부분이 착해서 그런 일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그런 아이였음을 들려주자 라온이와 로운이가 신기해했다.
   “진짜? 엄마가 진짜로 그랬어?”
   “응. 그랬었어. 그때 만약 누군가가 엄마한테 고약한 친구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연습시켜줬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 왕자님들은 엄마랑 잘 연습하자.”
   “응.”
   라온이와 로운이는 연습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제법 앙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녀석들은 친구의 고약함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굴지 않고 받아칠 수준이 되었다. ‘만약, 거지라고 놀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할 건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태도를 보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 질문은 아이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기 위함을 아니었다. 어떤 중요한 주제에 대한 녀석들의 생각을 살피려고 했던 건데, 전투력만 확인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여 이번에는 원래 하려던 방향에 맞게 구체적으로 콕 집어서 물었다.
   “그런데, 과연 거지인 게 창피한 일일까?”
   “아니.”
   “그럼, 거지인 건 전혀 창피한 게 아니야?”
   방금 전에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던 녀석들이 이번에는 머뭇거렸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아무 답이나 툭 던지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따져보려는 모습이 기특했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말을 이었다.
   “거지라고 해서 무조건 창피해할 것은 아니야. 어떻게 거지가 되었는가에 따라 창피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이 생각을 한번 해보자. 나쁜 짓을 하지 않고 거지인 거랑, 나쁜 짓을 해서 부자인 것 중에 정말 창피한 것은 뭐 같아?”
   “나쁜 짓 해서 부자인 거.”
   “그럼 나쁜 짓을 해서 거지가 된 건 창피한 걸까 아닐까?”
   “창피한 거야.”
   “옳지. 그렇게 왜 거지가 되었는가를 생각해봐야 하는 거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으냐 적으냐만 가지고 창피함을 따지지. 그래서 가난한 건 창피한 거고, 부자인 건 창피하지 않다고 생각해. 이 책에서 가난한 친구를 놀리는 반 친구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주인공 아이도 가난한 걸 무조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그러니까 몸을 숨겼겠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야. 반 친구들도, 이 주인공도 그런 점에서 어리석다고 볼 수 있지. 지혜로운 사람은 창피해할 것과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걸 제대로 구분하거든.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하자. 알겠니?”
   “응.”
   “돈 말고도 다른 걸로 어리석게 굴면서 창피해하는 사람이 있어. 엄마가 자주 하는 말 있지? 어떤 사람은 뭘 모르는 걸 창피해해서 아예 물어보지도 않는다고. 그건 어리석은 거야. 정말로 창피한 것은 모르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거지. 모르면 모른다고 질문을 해야 해.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는 모르는 게 있으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어볼 거지?”
   “나는 유치원에서 궁금한 거 있으면 선생님한테 물어봐.”
   “옳지. 그래 우리 로운이는 질문 잘하지? 라온이는 어때? 라온이도 모르는 거나 궁금한 거 있으면 선생님한테 물어봐?”
   “당연하지.”
   “역시! 멋져, 멋져. 얘들아, 마트 수레를 우리 아파트 앞까지 끌고 오는 사람들 있잖아? 그건 엄청 창피한 일이거든. 그런데 그 사람들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지. 아마 그 사람들 자식도 그게 창피한 일인지 모를 거야. 부모가 그렇게 행동하니까.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꼭 지혜로운 사람이 돼서 창피해할 것과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을 제대로 알고 행동하도록 하자. 어때?”
    “좋아.”
 
   창피함에 있어 바람직한 기준을 지니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사람이 가득하다면 이 세상은 보다 살기 좋고, 행복도가 높은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창피함에 있어 어리석은 데다가 고약하기까지 한 사람이 제법 있다. 어린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학교나 유치원에서 그런 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라온이와 로운이가 알아둬야 할 문제였다.

  “얘들아, 어쩌면 어떤 친구가 창피해할 필요도 없는 걸 가지고 너희를 놀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얼레리 꼴레리 이것도 모른대요.’, ‘얼레리 꼴레리 거지래요.’ 막 이러면서. 그럴 때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어떻게?”
   “‘그건 창피한 게 아니거든! 놀리는 니가 더 창피한 거야. 부끄러운 줄 알아!’ 이렇게. 어때?”
   “좋아.”
   “우리 한 번 해볼까? 그건 창피한 게 아니거든…….”
   내가 선창하면 라온이와 로운이가 이구동성으로 따라 했다. 평소 갈고 닦은 전투력을 곁들여 똑 부러지게 했다.
   한 번의 연습이 끝났을 때 녀석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흐흐. 형아, ‘얼레리 꼴레리’래.”
   “응. 얼레리 꼴레리. 흐흐. 너무 웃겨.”
   어쩌면 그날은 두 꼬마의 머릿속에 ‘창피함에 대한 중요한 지혜’ 대신 ‘얼레리 꼴레리’가 더 크게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다. 아이에게 삶의 지혜를 단 한 번만 알려주고, 그대로 흡수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그러니 다음에 다시 알려주고자 한다. 또 다른 재밋거리를 곁들여서 더욱 흥미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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