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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Mar 29. 2022

'왜 나만?'의 늪에서 탈출하기

 

  공과 선수들은 저 멀리 있는데 일부러 미끄러져 바닥을 뒹굴고, 그네 한쪽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원숭이 흉내를 내고, 앞머리가 땀으로 범벅돼 이마에 달라붙었는데도 줄넘기를 계속하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려 하는데도 철봉에 매달리는 아이. 로운이다.
  몸으로 하는 놀이를 그토록 만끽하던 녀석이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얌전히 보내거나, 어쩌다 외출을 해도 가벼운 산책만 하며 지내는 처지가 되었다. 수술 때문이다.
   로운이의 가슴은 태어났을 때부터 골짜기처럼 움푹 팼다. 일명 오목가슴. 단지 외관상의 문제라면 수술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분야의 유명한 의사들을 만났더니 다들 교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별 탈 없었지만, 심장과 폐가 가슴뼈에 심하게 눌려 있기에 언젠가는 문제가 될 거라며.
   수술 방법은 겨드랑이 양옆을 약 1센티미터 절개 후, 쇠막대를 넣어 움푹 들어간 가슴뼈를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3년이 지나면 올라온 뼈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에 쇠막대를 빼낸다. 마치 치아 교정처럼 가슴뼈를 교정하는 것이다.
   의사에 따르면 위험은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면 통증이 상당하다고 했다. 출산의 아픔에 버금갈 정도라 대게 고통을 호소하며 비명을 지르기 일쑤라는데, 과연 로운이가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녀석 앞에서는 내내 밝은 모습을 보였지만 속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온 로운이를 볼 때마다 의료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토록 작은 아이가 빠른 회복을 위해 고통을 참아가며 걷고 또 걸었으니까. 작은 움직임에도 몰아치는 통증 심호흡으로 다스렸다. 결국 진통제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고, 이례적인 조기 퇴원까지 해냈다. 집에 와서도 상태가 나날이 좋아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기침이나 심하게 웃을 때만 잠시 아파할 뿐이었다.
   이제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 조심하는 일만 남았다. 수술 후 3개월 동안 가슴을 어디에 부딪히거나, 양팔에 힘을 주는 등 가슴 근육을 자극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했다. 극심한 통증의 관문을 훌륭하게 통과했기에 조심하는 것쯤이야 가뿐을까? 여섯 살 로운이에게는 통증보다 답답함을 참는 것이 더 큰 난관이었다. 나날이 몸 상태가 좋아지니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수술 후 한 달 즈음의 어느 날, 거실에 앉아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던 녀석이  힘없이 말했다.
   “엄마…… 나 빨리 철봉이랑, 축구랑…… 그런 거 다 하고 싶다.”
   “그래, 그래. 우리 로운이가 너무 좋아하는 것들인데, 못하니까 너무 답답하지?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안 된다고 했잖아. 벌써 9월이니까, 11월이 될 때까지만 더 참자.”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같은 답이 돌아오자 로운이는 땅이 꺼질 듯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왜 나만 오목 가슴인 거야!”
   처음이었다. 로운이가 자신이 오목 가슴인 것을 못마땅해한 것은. 수술 전까지는 샤워할 때면 가슴에 물이 고이는 걸 신기해하고, 작은 구슬을 가슴에 놓았다가 굴릴 수 있는 걸 자랑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격렬하게 호응해주었다.  
   단지 뛰어 놀고 싶다는 것 뿐인데, 그 소박한 바람을 포기해야만 하는 여섯 살은 울상이 되었다. 얼마나 속상할까? 녀석을 안스럽게 바라보다 문득 눈을 번쩍였다. 이 상황이 녀석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건 우리 로운이가 아주 특별해서 그런 거야. 그거 알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뭔가가 부족하거나, 남들과는 달라서 불편을 겪어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 그건 그 사람에게 멋지고 특별한 게 있어서 그런 거야. 생각해봐. 만약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고, 어떤 사람은 계속 부족하거나 불편하기만 해 봐. 그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다행히 세상은 공평하단다. 무언가를 가졌으면 무언가를 못 갖기도 하는 거지. 우리 로운이가 가진 특별한 것은 무엇일까?”
   나를 바라보는 작은 눈동자에 호기심이 일렁거렸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곰곰이 생각하는 시늉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음…… 엄마 생각에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멋진 걸 가지고 있을 거야. 로운이가 오목가슴 수술받고 엄청 아팠잖아. 그리고 이렇게 당분간은 좋아하는 것들을 꾹 참으면서 지내야 하고. 이렇게나 큰 불편을 겪는다는 건 로운이가 특별하게 갖고 있는 그것이 엄청나다는 얘기지. 아무래도 이 아픈 지구를 위해,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위대하고 멋진 일을 해낼 거 같아. 로운이는 그걸 해낼 엄청난 능력을 지녔을 거야. 지구에 로운이 같은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제 왜 오목 가슴인지 알겠지?”
   로운이의 표정에 기대와 자부심이 넘쳐났다. 우리 옆에는 여덟 살 라온이가 동생과 엄마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었다. 이제는 녀석에게도 나눠 줄 차례였다. 남들과 다른 것을 불편하거나 속상해하기는커녕 즐기는 사람이 될 지혜를.  
   “우리 라온이도 마찬가지야. 위턱이 덜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이빨에 교정기를 하게 됐잖아. 밥 먹을 때마다 교정기를 뺐다가 다 먹고 나면 다시 끼고, 놀 때도, 밤에 잘 때도 계속 끼고 있어야 하잖아. 그게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지. 그런데도 라온이가 너무 야무지게 교정기를 알아서 잘 끼는 게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라온이에게 턱 교정이라는 불편이 있는 이유는 뭐다? 바로 라온이가 엄청나게 멋진 것을 갖고 있어서지. 알겠지?”
   라온이도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조그만 앞니에 부착된 금속 장치가 선명하게 보였다. 교정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못난이가 될 줄 알았는데 녀석은 오히려 더 사랑스러워졌다. 이가 불편하건 말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건 신경 안 쓰고 해맑게 지어 보이는 웃음이 귀여움을 드높였다.
   나는 두 꼬마를 번갈아 바라본 뒤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두 손을 모은 채 말했다. 
   “엄마는 정말이지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엄청나게 기대된다. 사실, 지금 엄마 눈에 보이는 라온이, 로운이는 이미 어마어마하게 멋지고, 기특하거든. 그런데, 아직 드러나지 않은 멋진 무언가가 더 있다니! 그게 가능한 거야? 이보다 더 멋질 수 있는 거야? 세상에나! 와우!”
   내 앞에 나란히 앉은 두 천사의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피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영롱하게 빛났다.
   아이들에게 이처럼 희망과 애정이 가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언제나 즐겁다. 나는 어찌 보면 허무맹랑하고 엉뚱해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이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고작 말 몇 마디로 내 소중한 귀염둥이들의 행복 주머니를 채울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그것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아이의 행복은 결국 나의 행복으로 돌아오니까.
 
   살다 보면 자신이 남들보다 부족하거나 다른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은 겪지 않은 듯한 어려움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때 언뜻 떠오르는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
   ‘도대체 왜 나만?’
   여기에 잠시도 머물지 않아야 한다. 비교의 괴로움으로 더 깊이 빠지게 하는 늪이니까. 나는 라온이와 로운이에게 그 늪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머릿속에서 ‘왜 나만?’을 밀어내고 다른 생각을 앉혀놓았다.
   ‘다른 좋은 것이 내게만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이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마법이 시작된다. 일단, 내가 지닌 멋진 점과 나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찾아본다. 나이기에 가능한 그 무언가가 다가오리라는 기대도 자라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단점으로 여겼던 것이 자신만의 장점으로 보여 입꼬리가 올라간다.
   라온이와 로운이는 나와 함께 하는 동안 꾸준히 연습할 것이다. ‘남’이 아닌 ‘나’에 신경을 집중하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말이다. 그를 통해 녀석들이 내가 바라는, 그야말로 자랑스럽고 멋진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이 아픈 지구를 위해,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해내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웅크리거나 분노의 콧바람을 뿜는 대신 기분 좋게, 씩씩하게,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사람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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