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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Jan 08. 2024

이런 지혜여야 진정으로 찬사받을만 하지

 
과학책으로는 학교 교과서 외에는 읽어본 적이 없던 나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다양한 과학책을 만나게 됐다. 어린이 과학책은 어린이가 집중의 끈을 놓치지 않게끔 구성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새로운 지식을 얻어 뿌듯함을 느끼게 하고, 읽은 내용 외의 것들에 대한 궁금증도 일게 한다. 그야말로 즐거운 독서다. 때문에 과학책을 읽어주는 시간엔 아이들 못지않게 내 눈도 반짝인다.
   하루는 위대한 과학자들을 다룬 책을 읽어줬었다. 과학적 지식을 전하는 책 못지않게 흥미로웠다. 가장 먼저 소개된 과학자는 ‘최초의 과학자’로 불리는 탈레스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남다른 지혜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 시작은 이집트 피라미드의 높이를 너무나 쉽게 재면서부터였다. 변변한 측정 장비가 없던 그 시절에 과연 어떤 방법을 썼을까? 탈레스는 피라미드 앞에 서 있다가 땅에 드리운 자신의 그림자 크기가 자기의 실제 키와 같은 시점에 피라미드 그림자의 길이를 쟀다.
   탈레스가 천체 현상에 대해 발휘한 지혜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당시 사람들은 낮에 해가 가려지는 현상, 즉 일식을 신의 노여움으로 보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탈레스는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과거에 발생했던 일식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여 일식이 규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해 냈다. 그리곤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날을 예측해 냈다.
   라온이와 로운이는 탈레스의 빛나는 지혜를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우와!”를 외쳐댔다. ‘지혜’는 우리 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 상위 3위 안에 들어간다. 내가 아이들과의 대화 시 하루도 빠짐없이, 수시로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부디 내 아이들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덕에 아이들은 지혜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에 흥미를 보인다. 탈레스의 사례에 유난히 감탄한 것도 그 이유다.
   다음 사례를 이어서 읽어주기 전, 시작 부분을 내가 먼저 훑어본 뒤 말했다.
   “얘들아, 탈레스가 가난한 철학자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걸 두고 머리만 똑똑할 뿐 돈도 못 벌고,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한다면서 비난했었대. 그러자 탈레스는 큰돈을 벌어서 그 비난들을 잠재웠거든. 과연 어떻게 한 걸까?”
   이처럼 미리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것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좋은 방법이다. 역시나, 여덟 살 로운이가 확신에 찬 얼굴로 냉큼 답했다.
   “사람들한테 ‘여러분, 저에게 돈을 주면 제가 지혜를 알려줄게요!’라고 해.”

  “아! 그랬을 거 같아?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라면 그 방법이 통했을 수도 있겠다. 너희들은 지혜를 쌓는 것에 관심이 많으니까. 그래서 엄마가 어떤 질문을 해도 눈을 반짝이면서 생각해 보고 대답하잖아. 그런데 안타깝게도 진정한 지혜를 쌓는 것에 엄청난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은 편이 아니란다. 오히려 깊이 생각하는 걸 머리 아프다며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지. 그러니 탈레스에게 지혜를 얻기 위해 돈을 주려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거야.”
   탈레스가 돈을 번 방법은 이랬다. 천문 학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해 그해의 올리브 농사가 잘되리라 예측해서 동네의 착유기(올리브 기름을 짜는 기계) 모두를 미리 빌려두었다. 당시 올리브는 귀한 농산물이었다. 실제로 올리브 농사가 풍년이 되었고, 사람들은 착유기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탈레스에게 비싼 값을 치러야만 했다.
   이번 사례에서는 아이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탈레스가 돈을 번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내가 물으니 열 살 라온이가 먼저 답했다.
   “나빠.”
   “나쁘다고? 왜?”
   “돈을 벌려고 사람들을 속인 거잖아.”
   “음…… 정확히 말하자면 속인 거라고는 볼 수 없는데?”
   “암튼 뭔가 좀 그래. 안 좋아.”
   “그렇구나. 로운이는 어때?”
   “안 좋아.”
   “왜?”
   로운이도 그렇게 대답한 이유를 콕 집어 말하지 못했다.
   탈레스가 발휘한 지혜들에 아낌없이 감탄을 표현했던 형제가 이번에는 탐탁지 않아 했다. 비록 자신들이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녀석들의 반응에 안도했다. 사실, 탈레스가 돈을 번 사례를 보고 속으로 아차 싶었었다. 생각해 보니 그간 아이들에게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치우친 편이었음을 깨달았다. 모든 지혜가 아닌 ‘바람직한 지혜’에 가치를 두도록 지도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라온이와 로운이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내 짐작이 맞는지 확인해 봤다.

  “얘들아, 탈레스가 지혜를 발휘해서 돈을 벌었잖아. 과연 그 방법이 도덕적이었을까?”
   “아니!”
   “아니!”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동네 사람들이 안 써도 되는 돈을 써버리게 했잖아. 자신의 능력을 보이려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거지. 그건 도덕적이지 않아.”
   “맞아!”
   라온이가 후련함을 담은 큰 목소리로 반응했다. 로운이의 표정도 한결 편해졌다. 그것으로 내 짐작인 맞았음을 확인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지혜’의 기준에 대해 자세히 알려줄 차례가 됐다.

  “그런데 아마 어떤 사람들은 탈레스가 돈을 번 이야기를 들으면 지혜롭다면서 감탄할 거야. 그저 지혜로운 것만 중요시하는 거지. 그건 위험할 수 있어. 왜냐면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울 수가 있거든. 히틀러가 그랬어. 엄청 똑똑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했지. 연설을 너무 잘해서 사람들이 들으면 ‘우와!’하면서 홀리게 했어. 그런데, 히틀러는 마음이 사악했잖아. 무슨 짓을 했지?”
   “유태인들을 잔인하게 죽였어!”
   “맞아. 샤워하게 한다고 하고 독가스로 죽였어.”
   라온이가 먼저 답했고, 로운이가 부연설명까지 덧붙였다. 둘은 내가 전에 해줬던 얘기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이 한창일 때였다. 녀석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였었는데, 당시 나는 바람직한 리더를 뽑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히틀러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래. 히틀러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많이 죽였지. 아무리 지혜로워도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면 칭찬이 아니라 비난을 받아야 해. 선한 마음에서 발휘된 지혜가 박수받아야 하지. 자, 그럼 생각해 보자. 혹시 선한 마음이랑 지혜 중에 무엇을 더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까?”
   “선한 마음!”
   “그럼 지혜는 없어도 돼?”
   “아니, 지혜도 있어야 해.”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할까?”
   아이들 고개를 연신 갸웃할 뿐이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고민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게 맞는 거니까.
   “엄청 고민스럽지? 그런데 선택 못 하는 게 맞아.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를 갖춰야 하거든. 왜냐면 마음이 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엄청 논리적으로 똑 부러지게 말하거든. 그때 우리는 일단 ‘선한 마음’이 있어야 그 사람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판단할 수 있어. 그다음엔 ‘지혜’를 이용해서 ‘당신의 생각은 이런 이런 면에서 잘못됐어.’라고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거지. 만약 선한 마음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아우, 하여간 당신 생각은 틀렸다고!’라며 버럭 화만 낼 수 있는데, 그럼 끔찍한 일이 생길 수 있어. 선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은 사람들이 악한 사람의 주장이 옳은 줄 알아. 그러면서 나쁜 짓을 도와주기까지 해. 히틀러의 뜻에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음…… 엄마 얘기가 좀 어려울 수 있는데 혹시 이해가 돼?”
   내 얘기에 홀린 듯 몰입하던 두 천사가 가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양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단하다. 이걸 이해하다니! 우리 천사들은 역시 지혜롭구나. 그러니까 우리는 앞으로 꼭 선한 마음으로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하자!”
   “응.”
   “응.”
   “그거 알아? 그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거. 우리집 가훈이 뭐지?”
   “서로 돕고 함께 행복하자.”
   “옳지! 악한 사람은 자신의 지혜로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지만, 우리는 지혜로 누군가를 돕고 함께 행복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어때?”
   꼬마 형제는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했다. 굳게 다짐하는 기색을 풍김과 동시에 신나고 설레하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해 말하는 것뿐인데, 사탕이나 과자를 받았을 때의 표정을 지으며 좋아하다니! 다시금 확신했다. 내 아이들이 세상을 참되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을 이미 지니고 있음을. ‘선한 것을 환영하고, 선하지 않은 것을 곱지 않게 보는 마음’ 말이다. 탈레스의 대단한 지혜에도 감탄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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