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 휴일 아침, 눈 뜨자마자 너무나 분주했다. 제법 먼 곳으로의 가족 나들이 계획 때문이었다. 나뿐 아니라 열 살, 여덟 살의 외출준비까지 신경 쓰며 부랴부랴 움직인 끝에 겨우 목표했던 시간에 출발했다. 차에 앉아 안전벨트의 ‘딸깍’ 소리를 들었을 때야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참 가고 있는데, 첫째 라온이가 갑자기 외쳤다. “아, 맞다! 태극기 안 달았다!” 아차차! 물론 요즘은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는 가정이 더 많긴 하다. 그래도 나는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 하나만이라도’의 마음으로 국기 게양을 챙겨 왔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나를 보는 꼬마 형제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놀러 가는 데 정신을 쏟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쳐버렸다. 나 자신에게 실망했고, 부끄러웠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엔 이미 멀리 와버렸다고 얘기했더니 라온이가 해맑게 말했다. “엄마, 그럼 집에 오면 달자.” “태극기는 오후 6시 이후에는 걷어야 하거든. 우리는 그 후에나 집에 갈 거야.” “음…… 그럼 내일 아침에 일찍 깨워줘. 그때 달고 사진 찍을래.” “정말? 정말로 그렇게 할 거야?” “응.” 라온이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가 있었다. 녀석의 학교는 국경일마다 숙제를 내준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그 앞에서 찍은 본인 사진을 학급 게시판에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 않더라도 불이익 같은 건 없는 숙제지만 라온이는 지금껏 빼먹지 않았다. 어떻게든 숙제를 해내려고 방법을 찾으려는 모습이 기특하긴 했다. 하지만 마냥 칭찬만 해줄 순 없었다. 고작 열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거짓’을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게 우려스러웠다. 내 아이가 매우 투명한 줄 알았었는데, 열 살이 되니 달라진 건가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강제성도 없는 숙제 하나 때문에 너무 과하게 고민하는 건가? 하지만 이내 결론 내렸다.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신중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는 일이 맞다고. 어린 시절의 아주 작은 사건이라도 한 사람의 삶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이 라온이에게 그런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라온이는 내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아침 식사를 준비 중인 나와 포옹을 나눈 뒤 천천히 소파로 가 앉았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빛났다. 머리카락 한쪽은 잔디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양 눈에 연노랑 눈곱이 달려 있고, 한쪽 입꼬리에 하얗게 굳은 침 자국이 있는데도 말이다. 아이는 그처럼 어떤 모습을 해도 반짝일 수 있는 존재다. 나는 라온이에게 다가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라온아, 태극기를 오늘 아침에 달고 사진 찍는 것 관련해서 엄마가 생각을 해봤거든. 음…… 엄마가 엊그제 <난중일기>를 엄청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잖아. 거기에 원균 이야기도 나와. 원균이 누구냐면, 이순신 장군이 억울하게 감옥에 갔을 때, 이순신 장군 대신 일본이랑 싸웠다가 크게 져서 조선군이 많이 죽고, 조선 배들도 엄청나게 잃게 만든 사람이야.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랑 원균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 알 수 있어. 이순신 장군이 원균에 대해서 어떻게 적었냐면…… 나라 걱정보다는 어떻게 하면 왕에게 잘 보일 지를 먼저 생각하고, 어떤 공을 세웠는지 억지로 그 증거 만드는 데 열심히 하고, 임금에게 거짓 보고까지 한 사람이래. 그런 모습이 우습다고 했지. 만약 우리가 오늘 아침에 태극기를 달고 사진 찍는다면, 그건 원균 같은 행동이 아닐까? 이순신 장군이라면 그렇게 했을까?”
라온이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럼 태극기 어떻게 할까?”
“안 달래.”
“괜찮겠어?”
“응.” “그래. 정직함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지. 앞으로 태극기는 잊지 말고 꼭 달자.”
라온이는 나를 향해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나도 함박웃음으로 화답했다. 동심의 순수한 웃음을 본 순간 깨달았다. 오해했던 것임을. 녀석이 거짓을 빌어 숙제를 해내려던 것은 ‘정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책임감이 강해서’였다. 지금껏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낼 만큼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 그랬던 것이다. 다행히 그날 아침 라온이는 나와의 대화를 통해 중요한 걸 깨달았다. 정직이 수반되지 않은 채 책임을 다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한 사람이 지닌 책임과 정직은 양팔 저울 위에 놓였을 때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라온이처럼 책임에 무게가 더 실린 사람은 정직을 가벼이 여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반대로 정직에 무게가 더 실린 사람은 책임에 소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사는 동안 늘 책임과 정직의 조화를 지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성향이나 주어진 상황에 따라 한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중심을 잘 잡도록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 그를 위해 저마다에게 알맞은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라온이는 <난중일기> 이야기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정직의 무게를 잡아 줄 안전장치를 얻었다. 바로 ‘원균처럼 되지 않으려면 정직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건 라온이에게는 특히나 효과적이다. 녀석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잘 아는 아이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좋은지에 대한 질문에 ‘나 자신’을 첫 번째로 꼽을 정도다.(아이들이 나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누가 가장 좋아?”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일단은 나 자신. 나를 소중히 여기고 좋아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거란다.”라고 대답했었다. 덕분에 아이들도 그처럼 대답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이왕이면 자신을 지키고, 도움 되는 길을 택하고 그에 반하는 건 택하지 않는다. 거짓은 스스로를 원균처럼 못난 사람으로 만드는 짓으로서 후자에 속하는 것이기에 라온이가 택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녀석은 앞으로도 거짓을 경계하려 할 것이다. 소중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생각해보면 그날이 라온이에게 의미 있는 날이 된 것은 녀석의 효심에서 비롯됐다. 라온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난중일기>를 본 순간,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는 엄마를 떠올리고 곧바로 대출받아 집으로 가져왔다. 덕분에 내가 <난중일기>를 읽게 됐고, 그 일부를 라온이에게 들려줘서 마음을 돌린 것이다.
엉뚱하지만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혹시 이순신 장군이 라온이에게 <난중일기>를 집어가라고 손짓한 건 아니었을까? 장군은 올곧음 뿐 아니라 효심도 남다른 인물이었다. 그러니 열 살 배기의 효심이 기특해서 녀석의 지킴이가 돼주려 했을지도 모른다. ‘거짓의 유혹을 물리쳐주는 지킴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