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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Sep 16. 2023

'시간'이라는 내편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유치원 형님 반에서 여유를 만끽하던 로운이가 새내기가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학교 앞까지 걸어갈 때 내 손을 잡은 녀석의 아귀힘에서 긴장과 설렘이 오롯이 전해졌다. 다행히 등교 첫날의 힘이 가장 셌고, 그 후론 점차 느슨해졌다. 날이 갈수록 긴장도가 낮아진 걸 알 수 있었다.
   스무 번째 등굣길이 되자 로운이는 아는 친구를 보면 손을 살며시 들었다 내리며 인사도 건넸다. 친구들도 수줍게 화답했는데, 그때마다 로운이의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긴장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는 편안함과 즐거움이 채워지는 게 당연했다. 유치원에서 그랬듯 친구들과 하하 호호 장난치는, 그야말로 신나는 학교생활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일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로운이는 학교를 옮겨야만 했다. 우리 가족이 다른 동네로 이사 가기로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입학 후 한 달 만에 이루어지는 전학이라 다행이었다. 이사 후 다닐 학교의 새내기들도 낯섦과 긴장을 여전히 지닐 시기니까.
   역시나 그랬다. 로운이의 전학 이후, 하교 시간에 담임을 따라 교문 앞까지 걸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조심스러운 태도가 역력했다. 다들 세상에서 가장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분명히 장난꾸러기가 있을 텐데 아직까지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로운이는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다소곳했다. 두 손을 얌전히 모아 배 위에 올린 채 얼음 위를 걷듯 조심해서 살금살금 걷다시피 했다. 그 모습에 나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집에서 보이는 까불이의 면모를 이토록 철저히 감추다니! 한 학부모가 확신에 찬 얼굴로 내게 “로운이는 아주 얌전하죠?”라며 물을 정도였다.
 
   전학 후 한 달 정도 된 어느 날, 내가 물었다.
   “로운아, 학교 쉬는 시간에 친구들끼리 놀거나 장난치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했었잖아? 요즘은 점점 그런 친구들 생기지?”
   “응.”
   “그래. 다들 입학하고 두 달 정도가 되었으니 서로 익숙해지고 편해지니까 그럴 거야.”
   피식 웃음이 났다. 개구쟁이들이 그동안 참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까나?
   로운이의 쉬는 시간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며칠 전엔 친한 친구가 생겼다며 내게 자랑까지 했으니까. 워낙에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해서 두루두루 어울는 면모를 새 학교에서도 발휘 중인 것 같았다. 기대감을 품고 녀석에게 물었다.
   “그럼 로운이도 그래? 쉬는 시간에 놀아?”
   “다른 애들은 모여서 얘기하고 그러는데, 난 서OO(친하다는 그 친구)가 학교 안 오면 그냥 혼자 있어.”
   로운이는 아주 덤덤하게 말했지만 나는 신경이 쓰였다. 이 아이는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리에 껴서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냥 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걸 택했으리라. 전학생으로서의 낯섦에 입과 발이 묶인 채.
   나는 로운이가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려다가 바로 접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텐데 억지로 등을 떠미는 꼴이 될 수 있으니까. 지금 로운이에게 필요한 건 압박이나 재촉이 아니었다. ‘낯섦’이 사라지는 날이 오기 전까지 쉬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었다.
   “그렇구나. 쉬는 시간에 책 읽거나 그러면 안 돼?”
   “난 그냥 가만히 있어.”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걸 보니 내 염려가 수그러들었다. 로운이가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하는 자체가 즐거워서 가만히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니까. 녀석의 정확한 속마음이 궁금했다.
   “그렇구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 기분이 어때?”
   “좀 외로워.”
   이번에도 역시 덤덤한 태도로 답하는 로운이. 하지만 내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다. 그간 전학생으로서 녀석의 나날이 아주 순조롭게 흐르는 줄만 알았었다. 매일같이 내게 전해준 학교 생활 얘기에는 우려할 것이 전혀 없었다. 급식 메뉴를 낱낱이 소개하며 너무 맛있다고 엄지를 세웠고, 수업 시간에 배운 바들을 흥분을 곁들여 신나게 공유했었다. 더욱이 전학 후 한 달도 채 안 돼서 친한 친구까지 사귀었다고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쉬는 시간에 외롭다니! 여덟 살에게는 큰 시련일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친구와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더더욱.
   어쨌거나 이제라도 알게 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엄마로서 뭐든 해줘야 했다. 나는 아이의 속상함을 누그러뜨릴 때는 내가 더 속상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공감해주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편이다. 그 방법으로 꽤 효과를 봐왔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과장을 멀리하고 로운이처럼 덤덤하게 반응해주는 게 적절해 보였다. 마음을 보듬거나 위로를 건네는 대신 지금 상황을 좋은 기회로 삼도록 이끌어주기로 했다. 시련에 대처하는 지혜를 얻도록 말이다.

  로운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좀 외로울 수 있겠다. 지금은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달라질 거야. 유치원 다녔을 때도 처음에는 낯설어서 친구들이랑 놀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는 엄청 즐겁게 놀았잖아. 지금 학교에서도 조만간 친구들하고 쉬는 시간에 엄청 신나게 보내게 될 거야. 그렇게 되리라는 거 로운이도 알아?”
   “응.”
   로운이의 장점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외롭다는 말이 나온 김에 엄마에게 푸념을 더 늘어놓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 얘기를 순순히 받아들여 주니 기특했다.
   “오! 우리 로운이는 역시 엄청 기특하네. 쉬는 시간에 놀 친구가 없고 외로우면 학교 안 가겠다고 떼를 부리는 아이도 있을 텐데 말이야. 어쩜 그렇게 멋있을 수 있는 거야?”
   “난 그냥 뭐든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라고 생각하고 그래.”
   입을 벌린 채 잠시 로운이를 바라봤다. 이토록 깊이 있는 이야기를 앙증맞은 얼굴과 목소리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경이롭기까지 했다. 시련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으로 ‘길게 보기’를 알려주려 했었건만……. 내 오만이었다. 녀석은 이미 알고 있고, 실천까지 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쉬는 시간의 외로움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고, 내게 덤덤하게 말했던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세상에! 우리 로운이는 ‘길게 볼 줄 아는 지혜’를 지녔구나! 이 지혜는 사람이 사는 동안 꼭 필요한데, 그걸 이미 갖췄네. 진짜 어마어마하게 멋지다.”
   살며시 미소 짓는 로운이의 얼굴에 우쭐함이 비쳤다. 스스로가 대견한 모양이었다.
   
   로운이에게 말했듯 사람에게 ‘길게 보는 지혜’는 꼭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건 시련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시련이 왔을 때 자연스레 한 가지 물음을 띄워준다.
   ‘지금의 이 힘듦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차분히 생각해보면 답이 ‘아니오’라는 걸 깨달을 수 있는데, 그 순간부터 마음속 시련이 달라진다. 크기가 빠른 속도로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별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다가 이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내가 이 지혜를 깨닫게 된 것은 서른 중반이 훌쩍 지나서였다. 그전까지는 시련이 만든 파도에 휩쓸려 한참을 허우적댔다. 빠져나오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리기 일쑤였다. 숱한 날들을 흔들리며 지내던 어느 날, 문득 그간의 경험들을 돌이켜보다가 깨달았다. 시간은 내가 시련을 지워낼 수 있도록 늘 도와줘 왔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어떤 시련에도 덜 흔들리고 덜 힘들어할 준비가 돼 있다. 시간의 힘을 알고, 믿는 덕분이다.
   내 깨달음의 과정을 생각하니 로운이가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공자가 ‘아는 사람’에 대해 등급을 분류한 구절이 떠오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중상급)이며, 곤란을 겪은 뒤에야 배우는 사람은 그다음(중하급)이다. 곤란을 겪고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하급이다.
                                                                                                        <‘논어’ 중에서>
 
   시련을 다루는 데 있어서 로운이는 상급 또는 중상급에 속하고, 나는 하급이었다가 겨우 중하급으로 올라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내가 녀석을 가르치려 했다니……. 로운이는 고작 여덟 살인데 시련의 파도가 닥쳤을 때 허우적대는 대신 ‘시간의 힘이 운전하는 배’에 올라타서 느긋하게 항해하고 있다.
   이 꼬마 선장이 앞으로 보여줄 활약이 기대된다. 로운이는 좋은 방법이나 정보를 누군가와 나누는 걸 좋아하는 아이다. 때문에 만약 주변에 마음고생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다가가서 앙증맞은 목소리로 의젓하고도 다정하게 말할 것이다.
   “친구야, 지금 이렇게 힘든 게 앞으로도 계속되진 않을 거야. 시간이 지나면 분명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길게 보도록 하자.”
   로운이 덕에 친구들이 시련에 있어서만큼은 중상급 이상의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천사 같은 그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보다 알차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시련에 힘겨워하는 시간을 줄이고, 멋지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데 더욱 할애하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생각이면 더 좋겠다.      

  덧. 전학 후 두 달도 되지 않아서 로운이의 쉬는 시간은 달라졌다. 친구들에게 신나게 수수께끼를 내고, 쎄쎄쎄도 하면서 배꼽이 빠지기 직전까지 까르륵거리느라 바쁘다.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역시나 시간은 로운 선장의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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