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아이들의 예술혼은 시도 때도 없이 솟아오른다. 아홉 살 라온이와 일곱 살 로운이도 저녁밥을 먹다가 오묘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새하얀 밥을 얼굴로 삼고 반찬들로 각 부위를 꾸몄다. 참치로 눈을, 우엉조림으로 머리카락을, 오이로 입을……. 두 꼬마가 천진난만한 얼굴에 진지함과 열정을 담아 집중하는 모습은 늘 흐뭇함을 자아낸다. 내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드디어 완성! 꼬마 예술가들이 누구의 작품이 더 멋진지 내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몹시 난감한 얼굴을 했다. “엄마 눈에는 둘 다 너무 멋진 걸. 뭐가 더 멋진지 도저히 고를 수가 없어.” “그래도, 하나만 골라 봐.” “정말이야. 둘 다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잖아. 정말로 정말로 두 작품 다 멋져.” 대게 그쯤이면 포기했는데, 그날따라 라온이가집요하게 굴었다. 그렇다고 흔들릴 내가 아니었다. 나는 조금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는 고르지 않을 거야. 하나를 고르면 누구는 속상할 거잖아. 그걸 바라지 않거든.” “우리 안 속상해할 거야. 그렇지 로운아?” “맞아.” 내가 말없이 고개를 젓자 라온이가 다가와 귀를 내밀면서 귓속말로 해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자기 작품이 더 멋지다는 확신이 든 모양이었다. “음…… 얘들아, 어떤 작품을 열심히 만들어서 대회에 내고 거기에서 상을 타기도 하고 안 타기도 하잖아. 그런데 상을 탔느냐 안 탔느냐를 중요시하는 건 엄마는 좀 그래.” “뭐가?” “그건 그 대회의 심사위원이 더 좋아하는 기준일 뿐이거든. 예를 들어서, 파란색을 좋아하는 심사위원이라면 파란색이 많이 들어간 걸 더 좋은 작품으로 뽑을 거고, 빨간색을 좋아하는 심사위원이라면 빨간색이 많이 들어간 걸 더 좋은 작품으로 뽑을 거야. 그러니까, 누군가의 심사에서 뽑히고 상을 타는 거에 너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것은 중국의 철학자인 장자의 생각을 내 식으로 절묘하게(?) 활용해서 말해준 것이다. 장자는 두 사람이 논쟁을 할 때 누가 옳은지에 대해 제 3자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
‘만일 당신과 같은 입장인 사람에게 판단하게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당신과 입장이 같을 것이니 공정한 판단이라 할 수 없고, 나와 같은 입장인 사람에게 판단하게 한다면, 이미 나와 같을 것이니 공정한 판단이라 할 수 없소.’ <장자> 중에서
상이라는 것이 심사위원의 개인 취향(?)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라면 수상자로 선정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할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얼마 전에 로운이가 우리 아파트에서 열린 ‘친환경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았었다. 그때 나는 격렬한 물개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아낌없이 축하해주었다. 앞으로도 내 소중한 사람이 언제 어디서건 상을 탄다면 두 손바닥이 뜨겁도록 박수를 쳐주어 수상의 기쁨 마음껏 누리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아이들에게 ‘상을 타는 거에 너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했던 걸까? 녀석들이 사는 동안 늘 수상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상을 타는 것보다 타지 못하는 일이 더 자주 있을 거라 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수상에 실패하면 안타깝게 대처하곤 하는데, 부디 내 아이들은 현명함을 발휘하길 바란다. 나는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상을 못 탔다고 해서 ‘흐흑, 난 상을 못 탔어. 내 작품은 형편없나 봐.’라고 생각하면서 슬퍼하거든.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그렇지?” 로운이는 고개를 끄덕인 반면, 라온이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난 슬펐어.” 아파트 ‘친환경 사생대회’ 결과를 들었을 때의 기분을 얘기한 것이다. 당시 라온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로운이가 자신의 수상 소식을 전했었다. 라온이가 “나는?”이라고 물었고, 로운이가 해맑게 답했다. “형아는 못 탔어. 나만 탄 거야.”라고. 그 순간 라온이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을 껌뻑이며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형이 그러거나 말거나 눈오는 날 강아지처럼촐랑대며 거실을 돌아다니는 동생을 향해, 라온이가 그만하라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뒤 엉엉 울었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침울해진 라온이…….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 물론 많이 아쉬울 수는 있지. 그런데 말이야,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만든 작품이라면 가장 멋진 작품이라고 내가 인정해줘야지. 슬퍼할 필요는 없어.” “맞아. 사실 난 내 작품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해.” 라온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녀석의 이런 점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늘 당당함을 지니고 있으며 무엇이건 자신이 이루어낸 것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보이는 편이다. 자신을 향한 관대함이 큰 아이다. 때로는 그 때문에 잘못을 저질러도 스스로에게 과한 너그러움을 보이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어깨를 움츠리고 바닥만 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나는 지체 없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옳지. 맞아. 가장 멋져. 그리고 엄마도 엄마의 작품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해. 엄마의 최고 작품은 바로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누군가 너희를 별로라고 생각해도 엄마는 신경 안 쓸 거야. 너희는 언제나 나의 최고의 작품이니까.” 내가 오른손 엄지를 세운 채 꼬마 형제를 번갈아 보며 미소 짓자 녀석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사랑스럽게 웃어주었다. 타인의 평가에 따라 감정이 휘청거리지 않는 것은 행복을 위한 중요한 지혜 중 하나다. 요즘처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대회가 열리고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상황이라면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 사람들이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그러니 내 아이들 뿐 아니라 다른 집의 천사들도 그날의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얘들아, 세상에는 많은 대회가 있거든. 혹시 학교나 유치원에서 누군가 어떤 대회에 작품을 냈는데 상을 못 타서 속상해하면 자신의 작품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라고 위로해주는 게 좋아.” “그런데, 정말로 그 작품이 못난 거면 어떡해? 얼굴을 그렸는데 그냥 대충 동그라미만 그리고 그랬다면?” “오호! 라온아, 그거 정말 좋은 질문이다. 최선을 다해서 만든 작품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얘기인 거지. 그러니까 친구에게 ‘네가 만약 최선을 다했다면 상을 타건 안 타건, 그 작품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너 스스로가 인정하면 돼.’라고 하는 게 좋겠다. 그런데 말이야…… 상을 못 타서 슬퍼하는 친구가 있을 때 그렇게 말해주는 아이가 실제로 있을까? 흐음…….” 그제껏 잠자코 듣고 있던 로운이가 명랑하게 말했다. “응, 있어!” “누구?” “나.” 라온이도 냉큼 나섰다. “나.” “우와! 우리 라온이, 로운이 같은 친구가 옆에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 친구는 정말 복이 많네.” 꼬마 형제가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얼굴 작품 일부를 숟가락으로 떠서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밥 한 톨도 남김없이 야무지게 싹 먹어치웠다. 조금 전까지 식탁 위에 놓여 나의 평가를 기다리던 멋진 작품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아니, '두 멋진 꼬마의 배 속을 여행하는 영광을 누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