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다가 한 구절에 시선이 멈췄다. 나처럼 글 쓰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빛과 같은 내용이었다. 가슴이 벅찼다. 내 앞에 나란히 앉아 각자 원하는 책을 읽고 있던 꼬마 형제에게 그 순간의 내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얘들아, 논어에서 방금 읽은 글 덕분에 엄마는 엄청 행복해!” 둘은 곧바로 고개를 들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녀석들이 내게 보여주는 그 관심이 참 좋다. 일곱 살 로운이가 먼저 물었다. “뭔데?” 아이들의 이런 반응은 늘 이야기할 맛을 나게 한다. 내가 알아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때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남편과는 확실히 다르다. 우리 부부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에 있어서는 주고받는 대화를 하지 못하는 편이다. 남편은 그저 내 이야기들을 들을 뿐이다. 내가 가끔 그의 생각을 묻기라도 하면 그는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웃음으로 넘기거나 방향이 조금 벗어난 얘기를 하곤 한다. 그런 그에게 서운하거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내 얘기들을 얌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운동이 차지하는 영역이 많다. 그러니 인문학적 대화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키고 끝까지 들어주니 그 자체로도 칭찬받을 만하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런 대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논어 얘기는 전에도 종종 했는데 그때마다 매우 흥미로워했었다. 나는 조금 전에 읽었던 논어 속 구절을 아이들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두 번 읽어주었다.
‘군자는 글을 통해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해 인을 실천한다.’
이번에는 아홉 살 라온이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군자는 엄청 훌륭한 사람을 말하거든.” “‘공자’처럼 ‘군자’라는 사람이 있는 거야?”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공자는 사람의 이름이 맞고, 군자는 엄청 훌륭한 사람을 말할 때 쓰는 말이야.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을 학생이라고 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벗은 친구를 말해.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군자는 즉, 훌륭한 사람은 글을 통해서 친구를 모은다는 거지.” 일단 이렇게 ‘군자는 글을 통해 벗을 모으고’가 어떤 말인지 간단히 설명했다. 이어서 ‘벗을 통해 인을 실천한다’ 부분을 시작하려는데, 로운이가 신기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글로 친구를 모아?” “음…… 글을 쓴다는 건 그 작가가 자기의 생각을 글에다 담는 거거든. 군자는 훌륭한 사람이니까 훌륭한 생각이 담긴 글을 쓸 거잖아. 그 군자의 글을 사람들이 읽고 좋아한다면 그 사람들은 군자의 생각이 좋은 거야. 군자도, 그 사람들도 결국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이렇게 군자는 글로 자기의 생각을 전하고,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는 거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알고 그런 사람이 주위에 많으면 행복해.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야 하는 거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내가 먼저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과연 아홉 살, 일곱 살 아이가 이 말을 이해했을까? 보아하니, 잘 소화해 낸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가면 그때그때 물어보는 녀석들이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눈빛도 이해했을 때의 그것이었다.
“‘벗을 통해 인을 실천한다’는 말은 친구를 통해 이 세상에 사랑을 실천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군자는 글을 통해서 자신과 같이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게 함으로써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는 거지. 이해되니?”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왜 이 문장이 좋았냐면……. 음…… 얘들아, 엄마가 왜 글을 쓰게?” “사람들이 엄마를 많이 알게 하려고.” 라온이의 답이다. 의외였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간 아이들에게 종종 말해왔었건만……. 지금 라온이의 답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유명인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답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괜찮다. 다시 얘기해 주면 되니까. “엄마는 글로 사람들을 돕고,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싶어서 쓰는 거야. 엄마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은 없어. 사람들이 엄마를 몰라도 괜찮아. 다만 엄마의 글을 통해서 엄마처럼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어.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더 좋겠고. 언젠가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도 엄마의 책을 읽게 될 거잖아. 그래서 엄마랑 같은 생각을 하는 벗이 되고, 엄마랑 함께 세상에 도움을 주면 좋겠네. 함께 할래?” “응.” “응.”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답으로 라온이가 말했던 ‘사람들이 엄마를 많이 알게 하려고’가 새롭게 다가온다. 그날은 내가 오해했던 것 같다. ‘엄마가 유명해지려고 글을 쓴다’로 해석했으니까. 하지만 라온이는 ‘사람들이 엄마를 많이 알게 하고, 엄마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많이 모으려고 글을 쓴다’는 의미로 말했던 걸로 보인다. 정황상 이 해석이 맞다. 결국, 라온이는 그날 내가 논어 구절에 대해 해주었던 설명을 온전히 이해했고, 작가인 내게 그 구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다 이해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날 우리가 주고받았던 대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수준이었다. ‘대화의 희열’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앞으로의 대화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