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 WWII MUSEUM
모두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다른 건 알겠는데, 아마 뉴올리언스는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설명을 위해서 잠시 영화 ‘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의 첫 장면으로 가보자.
1944년 6월 6일
오프닝 장면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인 Omaha (오마하) 해변에서 시작된다.
해변으로 향하는 Higgins 보트.
비가 쏟아지는 바다 위 흔들리는 보트에서는 불안과 긴장이 고조된다.
군인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따르며 탄약과 폭탄이 터져나가는 해변으로 향한다.
해변에 다다르면, Higgins 보트의 문이 열리고, 군인들은 일제히 독일군의 진지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기관총알들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폭격과 총격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사지(死地)인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전우들이 툭툭 스러지며 삶에서 죽음으로의 경계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목숨이 붙어있는 군인들은 독일군의 전지로 나아가야 한다.
사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셀 수 없는 미군들이 바로 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전사한다.
하지만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은 이 작전에서 승리하며유럽 대륙을 대규모로 탈환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사용된 Higgins 보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사용된 원래의 디자인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Higgins 보트는 이 영화의 중심적인 상륙 장면에서 미 군인들을 해변으로 운반하고, 상륙 작전의 핵심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데 사용됐다.
: 뉴올리언스가 어떻게 제 2차 세계대전과 관련이 있으며,
도대체 왜 WWII museum 이 하필이면 이곳에 위치해 있는가?
아마 역사나 뮤지엄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뉴올리언스에 National 급의 WWII 뮤지엄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거나, 알더라도 뭐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도 있을 것 같다.
나처럼 말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로 참전국이었던 세계 여러 나라에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뮤지엄이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에도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기념관( National World War II Memorial)과 공원등이 있긴 하지만 규모와 내용면에서 뉴올리언스의 WWII 뮤지엄은 제대로된 미국내 최대의 전쟁 뮤지엄이라 하겠다.
여행을 마친 지금 뉴올리언스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1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WWII 뮤지엄 투어였다고 말할 것이다.
뉴올리언스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모든 주요 수상 상륙 작전에서 미국 병사들을 해변으로 이송한 LCVP( *LCVP란 "Landing Craft, Vehicle, Personnel"의 약자로, 상륙정인 Higgins boat의 한 종류) 본거지였다.
앤드류 잭슨 히긴스(Andrew Jackson Higgins, 1886~1952)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뉴올리언스에 "히긴스 보트"(상륙정, 차량, 인원 또는 LCVP) 제조업체인 Higgins Industries를 설립하고 루이지애나의 노동자 30,000명은 2차 세계 대전 중 남동부 루이지애나에서 20,000척의 히긴스 보트를 설계, 제작하고 전쟁에 투입시켰다.
미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군인이자 정치인 그리고 34 번째 대통령을 지냈던 Dwight Eisenhower는 히긴스 보트 산업이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매우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막강한 해군력은 세계 무대에 있어서 강대국의 화룡점정 같은 부분이다.
15세기~17세기 중반까지의 스페인 해군, 16세기부터 20 세기 초반까지의 영국 해군, 19세기부터 국내 정세를 안정화한 후 국제무대로 시선을 돌린 미국 해군이 그러하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세계를 제패한 강대국의 공통점은 세계 제일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를 넘어 국제 무대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해군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제1차, 2차 세계 대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시 루이지애나 주의 히긴스 보트 산업이 2차 세계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는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바로 뉴올리언스에 WWII 뮤지엄이 위치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나는 지난 날, 역사에 대해서 큰 관심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 공부가 재미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는게 바빠서 였을까? 살다보니 일상에서의 우선 순위가 역사 공부일 만큼 여유롭지 못했나 보다.
올해, 인생의 휴지기를 갖고 ‘해야 할 일’ 보다 ‘하고 싶은 일’ 을 우선순위에 놓기로 다짐한 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책 읽기였다.
사실 책 읽기가 인생에서 매우 상위의 것으로써 '해야 할 일로' 여겨져야 이상적인 삶일 지도 모르겠으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는 반증이겠다.
어쨌든, 올해 초부터 분야나 난이도에 상관없이 그저 관심이 가고 평상시에 늘 목말라 있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많은 책들의 곳곳에서 한국 역사를 비롯해 세계 역사가 새삼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나 나의 역사 공부에 불을 지핀 이가 있었으니 늘 옆에서 세계 역사 이야기로 나의 무식함에 일침을 가하는 그녀이다. 그녀는 내가 모르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일장 연설을 하며 끝날줄 모르는 역사 강의를 하기 일 쑤 였다.
책을 읽으며 앞 뒤의 자세한 역사적 사건들이 궁금했던 부분은 다시 또 다른 책을 찿아보기도 했다.
책이 책으로 하여금 다른 책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시스템이랄까?
나아가 때로는 다른 시각이나 해석으로 알고 싶은 것들은 여러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 아 저런 시각으로 해석될 수 도 있구나' 하며 더욱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세계지리와 역사적인 정치, 경제 상황 등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국제 뉴스를 듣는 것에도 이해가 매우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방에 있던 지구본은 어느새 내가 책을 읽는 탁자위에 항상 올려져 있었다.
하필이면, 뉴올리언스에 가기 전에 한창 미국의 독립전쟁 시기와, 1차,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 되었던 것 같다.
뮤지엄에 가서 직접 여러 전시를 보고, 매우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보며 더욱 디테일한 이야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쟁 뮤지엄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라는 색다른 경험을 살면서 처음 하게 되었다.
당신이 역사나 전쟁, 혹은 박물관 투어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아주 높은 가능성으로 역사에 무관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른 관점에서 이 전쟁 뮤지엄의 가치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해보겠다.
뜬금없이 들리는 질문이지만, 고전이란 무엇인가? 에서 설명을 시작해 보겠다.
고전(classic)이란,
시대를 초월하여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에 대한 것을 문학, 철학, 음악, 미술 등으로 승화시켜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대를 초월하여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란 무엇인가?
나의 얄팍하고, 좁은 식견으로 분석컨데,
시대를 초월하여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란,
삶과 죽음이다.
그로 인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찰이다.
예를 들면,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읽다 보면 그것이 문학이든 철학이든간에 대체적으로 한 가지 주제, 즉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면밀히 관찰하고, 근원적인 두려움과 고통의 극복을 통한 인간성의 회귀, 사람됨의 가치에 대한 통찰로 귀결된다.
물론 그 하위에 얼마든지 많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윤리나 도덕적( 혹은 선과 악) 딜레마, 인간다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존엄성, 삶의 미학, 삶의 본질… 등. 그러나 결국 이 모든 하위 논의 들은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안에 있다.
나는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가끔은 나처럼 어떤 의미에서든 작고 크건간에 죽음에 대해 여러 측면의 고찰을 하고 얻는 깨달음을 일상을 살아가는 동력 및 에너지로 삼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때 놀랍기도 했다.
심지어 고전 문학들을 읽다 보면, 인류로 하여금 1000년을 읽게 할 고전 문학 및 철학서를 쓰는 작가들은 누구나 매우 깊이 있게 삶과 죽음에 대해 세대를 관통하는 통찰력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날, 병원 중환자실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목도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이 차이라는 것은 안다.
세상에 유일한 진실이 있다면 누구나 죽는다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앎이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갈 때,
마치 책의 책장을 넘기 듯 넘어갈 거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생과 사의 책 한장 사이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보았는가?
물론 아니라고 말 할 수 도 있다.
물론 그 한 장 사이의 이야기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본적이 있다고 말 할 수도 있을테다.
만약 그렇게 나에게 반문한다면 나는 반갑다 생각할 것이다.
그런 당신이라면, 결코 뉴올리언스의 WWII 뮤지엄을 그냥 지나쳐 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전쟁을 기념한 곳도 아니고, 전쟁 물품을 보여주고 전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박물관도 아니다.
연합군이든 추축군이든 전쟁이라는,즉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는 폭력, 학살, 파괴 등 인간 세계에서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에서 죽어간 모든이들의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이었다.
뉴올리언스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즈 리듬에 취해보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수 없이 많은 날들 중 하루쯤은 생각해 보자.
우리의 일상에 매일 존재하지만 무색무취로 감지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주제와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수호할 것이 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인공적인 재앙 중 하나인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불안정 할지언정 우리는 지금 자유와 평화라는 두 디딤돌 위에 발 딛고 살아간다.
이러한 우리의 지금은 지난 역사 속에서 삶을 빼앗기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 당하며 죽음의 경계를 넘었던 누군가의 피로 쓰인 현재라는 말을 듣는 것조차 진부하고 지겹다 느낀다면 이 얼마나 슬픈일 인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모든 색을 쫙 빼고 그저 인간이 전쟁이라는 상황에 놓였을 때 최소한의 인간됨을 부정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자.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주제는 실로 우리일상과 얼마나 가깝게 맞닿아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