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만보 걷기
미묘하게 다르다. 아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기엔 상당히 닮았는데 동일한 것으로 보고 다루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한국과 일본의 채소 얘기다.
배추는 줄기가 두껍고 물이 많아 김치를 담글 때 고생스럽다(고 한다). 대신 전골 요리에 넣으면 시원하고 맛있다. 오이는 한국 오이에 비해 가늘고 색이 진한데 껍질에서 씁쓸한 맛이 진하게 난다. 무도 굵은 부분이 없이 늘씬해서 무다리라는 말이 더욱 가당치 않게 느껴진다. 부추는 넓적하고 두꺼워서 김치 속을 만들거나 전을 부치기 쉽지 않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한국 채소는 (당연하지만) 참으로 한국 음식 만들기에 최적화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특히 김치로 완성되기 위해 진화해 온 것 같다.
일본에 이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생활은 공부와도 여행과도 달라서 일본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 처음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모든 게 생소하고 어려웠다. 칼과 도마를 사러 급히 나갔다가 몇 걸음 못 나가고 멈춰 섰다. 그런데 도마가 일본어로 뭐더라? 어디서 파는 거지?
아직 파파고가 없던 시절이었다. 동네 작은 마트로 장을 보러 갈 때도 긴장됐다.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까? 못 찾으면 오늘 저녁밥은 어떻게 하지?
모처럼 외국에서 살게 되었으니 생소함도 즐기면 좋았을걸 그때는 몸을 작게 웅크리기만 했다. 도전보다는 물러남을 택했다. 아무리 몸을 웅크려도 피할 수 없는 타격을 주는 외국 생활에서 나를, 또 아이를 지킬 안전 기지를 얼른 구축하고 싶었다.
마트에 가도 처음 보내는 식재료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이름표를 못 읽어도 한눈에 무언지 알 수 있는 배추랑 무, 양파랑 감자가 무한히 반가웠다. 그런데 이 녀석들을 사 와서 반찬을 만들면 도무지 기대한 맛이 나지 않는 거다. 김치야 감히 도전도 못했지만, 나물을 무쳐도 국을 끓여도 제 맛이 안 났다. 솜씨가 좋은 사람이면 이 차이를 딛고 넘어 새로운 맛을 창조했을 텐데 요리책과 계량컵 없이는 식사 준비를 할 수 없던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나는 그런 기지를 발휘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서러움이 다 쌓여서 둘째를 임신했을 때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먹으러 한국 식당을 찾았더니 미역국 한 그릇이 몇 천 엔씩 해서 또 서러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있을 법도 한데 없는 식재료도 있었다. 이를 테면 깻잎이 그랬다. 이곳에서 지내는 십여 년 사이 몇 번씩 한류 열풍이 불어 지금은 비교적 쉽게 눈에 띄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트에 깻잎이 뜬 날이면 이웃들에게 문자를 보내 알릴 정도로 귀한 존재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이웃이 “이상한데? 제가 갈 땐 매번 있던데요?” 하면 그 분이 본 것은 십중팔구 오오바다. 오오바도 맛있지만 깻잎 맛은 아니고 닭갈비에도 골뱅이무침에도 넣을 수 없다.
내 요리 솜씨가 극적으로 향상되길 기대하는 것보다 식재료를 개량하는 게 낫겠다. 재미 삼아 구경한 종묘사에서 모종과 씨앗을 보고 눈이 반짝했던 내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테다. 그 무렵 베란다가 넓은 집에 이사 간 것도 작물 재배 욕에 불을 지폈다. 처음에는 채소류는 물론이고 꽃이며 나무며 토마토에 딸기까지 옮겨심기만 하면 당장 먹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분별없이 사들였다. 생명을 키우는 데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세 아이를 키우며 왜 몰랐나 싶다. 몇 해 동안은 살뜰히 돌보지 못해 기르는 것보다 죽이는 게 더 많았다. 내 마음은 혼자 추스러도 이 죽음을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난감해서 아무것도 안 키우고 보내는 해도 있었다.
키움과 죽임을 반복하는 사이 함부로 새 식물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마땅한 것은 무엇인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집 베란다에는 생김새는 보잘 것 없지만 기르기 쉽고 높은 확률로 수확도 가능한 각종 잎채소와 허브류만 남았다.
잎채소 모종이 나오는 것은 아직 공기에 찬 기운이 남아 있는 2월 중순 무렵이다. 이때를 놓치면 늦여름이 될 때까지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종묘사에 부지런히 드나들어야 한다. 올해는 운이 좋게도 첫 방문에서 모종을 얻었다. ‘프릴레터스’, ‘써니레터스’에 더해 ‘상추’까지.
일본에서 만날 수 있는 상추와 상당히 닮은 채소는 ‘レタス(레타스)’라 불리는 종류다. 마트 야채 코너를 잘 보면 가끔 레타스 근처에 대여섯 장이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청상추가 따로 있는데 이름이 다름 아닌 ‘サンチュ(상추)’. 상추라고 하니 상추라면 이게 가장 상추일 텐데 한국에서 먹던 것에 비하면 힘이 없어 물로 헹구고 터는 와중에 모양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추 좀 탈! 탈! 털어라”라는 말을 듣고 자란 내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연약함이다. 결국 이것도 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성하게 퍼진 써니레타스(적상추와 닮았으나 미묘하게 다름)를 쌈채소로 골라왔던 것이다.
집에서 키운 잎채소들은, 바로 따서 먹어서 그럴까 마트에 나와 있는 것보다 힘이 좋고 생기가 돈다. 쌈을 싸 먹어도 좋지만 샐러드로 만들어도 식감이 살아 있다. 잘 키우면 여름이 되어 잎이 녹고 꽃이 피기 전까지 매끼 신선한 채소를 즐길 수 있다.
즐거웠던 작년 식탁을 떠올리며 그날 막 입하된 듯 모종판을 꽉 채운 어린 채소 중 말 그대로 떡잎 푸른 것들을 네 개씩 골랐다. 특히 ‘상추’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빳빳하고 싱그러운 쌈채소로 자라 준다면 식후 물걸레질을 감수하더라도 얼마든지 삼겹살을 구울 용의가 있다.